실패한 타운하우스 개발, 도시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최근 한 타운하우스 단지가 여러 부동산 유튜브 채널에서 연달아 등장했다. 유튜브 매체들이 찾은 곳은 경기도 파주시 야당동의 황룡산 자락에 지어진 타운하우스 단지. 황룡산 경사면을 따라 계단식으로 지어진 독특한 설계 탓에 필자도 익히 알고 있던 현장이었다. 총 4개 단지, 90가구 규모로 계획된 이곳은 2019년 분양을 시작했는데 당시 분양가는 5억원 대였다고 알려져 있다.

신축 단지도 아닌 이곳에 갑자기 부동산 유튜버들이 다녀간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난 10월 일부 세대가 공매로 나왔으나 전부 유찰된 일을 계기로 관심의 대상이 된 것 같다. 해당 현장은 1단지를 준공하고 2단지를 짓던 와중에 시공사 부도로 개발을 멈췄고, 이후 공매 과정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1단지가 준공되었기 때문에 현재 일부 세대의 거주자나 수분양자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저 부동산 개발의 실패 사례라거나 특이 설계의 사례로서만 언급하는 건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그리고 부동산 금융이나 개발 과정, 세부 설계 등 해당 사례에 관한 구체적 내용은 이미 많은 유튜브 채널에서 다룬 바 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이번 사례에 국한된 문제보다는 보다 보편적인 문제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려 한다.

야당동 모 타운하우스 현장(카카오맵 로드뷰)

파주 야당동1은 광주 신현동(구 신현리)과 더불어 수도권 주거 난개발의 대표 사례로 언급되는 곳이다. 꼬불꼬불한 도로와 열악한 주차 사정, 출퇴근 시간대 극악의 교통체증은 익히 알려진 주거 난개발 지역의 공통점이다. 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신도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이라는 점이다. 야당동은 경의중앙선 선로를 사이에 두고 운정 신도시와 마주보고 있고, 신현동은 고개 하나 넘으면 분당으로 진입할 수 있다. 강남 접근성이 좋은 신현동에는 호화 단독주택들이 많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두 동네 모두 초입에는 다세대 주택들이 줄지어 서있다. 장점도 유사하다. 신도시 바로 옆이라 인프라가 나쁘지 않은 반면 주택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그러다보니 이미 포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빈 땅만 나오면 빌라가 올라오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쯤에서 잠깐 ‘난개발’이라는 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난개발은 흔히 ‘무질서한 개발’ 정도로 이해되지만, 정확히 말하면 ‘계획의 공백을 노린 개발’을 뜻한다. 도시계획은 주거지와 유해시설을 분리하고, 도로와 하수도, 공원과 학교 등 인프라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시를 구성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이런 계산 없이 우후죽순 개발이 이뤄지면 피해는 고스란히 그곳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교통 체증, 학교 부족, 하수 처리나 도시가스 도입 문제, 재난 위험까지 모두가 도시계획이 실패했을 때 주민들이 떠안게 되는 비용이다.2

수도권 난개발의 대부분은 ‘비도시지역’에서 발생한다. 겉으로 보기에 구별되지 않더라도 도시계획은 도시지역과 비도시지역을 나눈다. 도시지역은 흔히 알려져있듯 ‘주거-상업-공업-녹지’, 즉 기능으로 구역을 나누지만, 비도시지역은 도시화 가능성을 기준으로 구역을 나눈다. 절대적으로 보존해야할 지역부터 차차 도시화되도록 속도조절하는 지역까지. 이중 도시화될 가능성 혹은 필요가 있는 지역을 ‘관리지역’이라 부른다. 관리지역이 바로 난개발의 진원지, 즉 도시계획의 빈 틈이다.3

지면 상 자세히 다루긴 어려우나, 정부도 관리지역 난개발 문제를 파악하고 있고, 연구자들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마련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관리지역 난개발은 진행 중이다. 만약 최근 주거 난개발이 주춤하다면 그건 부동산 경기 악화 때문이지 효과적인 도시계획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삶의 질을 낮출 정도로 주거가 밀집하거나 유해시설에 인접한다면 도시계획이 역할을 못하고 있단 의미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선 미세한 규제 하나 하나가 아니라 지역 분류와 지역별 규제 수준, 즉 조닝 체계 전반을 돌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한다. 특히 수도권정비법이 따로 있는 것처럼 수도권 난개발 특성을 반영한 섬세한 계획 체계 마련도 고려해볼 만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인허가’에 있다. 행정이 종합적 판단 대신 서류 확인 중심의 수동적 인허가 행정을 펼친다면 이번 사례 같은 개발을 막기 힘들다. 기후위기 시대에 산 사면의 나무를 베어가면서 주거지를 조성하는 계획은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 위험은 개발업자가 아니라 결국 그곳에 사는 주민과 주변 지역, 나아가 지방정부가 감당하게 된다. 인허가는 ‘요건 충족’이 아니라 ‘판단’과 ‘공론’의 영역이어야 한다. 자칫 당연한 말 같지만 인허가를 판단과 공론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건 재산권과 관련한 헌법 가치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일선 공무원의 마인드셋을 바꾸는 걸 넘어 인허가 대상 설정과 도시계획위원회 구성부터 도시계획이 무엇을 위해 복무할 것인지까지 다루는 큰 과제다.

끝으로, 언론의 책임도 짚어봐야 한다. 분양업자들이 홍보 콘텐츠를 쏟아내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공신력 있는 유력 일간지들이 홍보성 짙은 내용을 정식 기사로 내보내는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이번 사례 역시 분양 당시 ‘GTX-A’, ‘고급주택’, ‘신도시 인접’ 같은 장점 중심의 홍보성 기사로 보도된 바 있다. ‘모던’, ‘낭만’ 같은 기사 답지 않은 단어부터 ‘3호선 연장’ 같은 미확정 정보까지, 내가 읽고 있는 게 기사인지 광고인지 재차 확인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이상의 단어들은 진보 언론이라 불리는 곳의 기사에서 그대로 발췌한 것이다. 홍보성 기사들은 친절하게 모델하우스 주소까지 기재하면서도, 정작 지도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산 사면을 깎아 만드는 개발이 괜찮은지에 관해선 일언반구 우려도 담지 않았다.

이번 사례가 아니더라도 언론의 분양 홍보성 기사 문제는 꽤 심각하다. 개발 반대 투쟁을 다루면서 개발의 부적절함을 보도했던 언론이, 한편에선 그 자리에 들어설 신축 분양 건물의 홍보성 기사를 낸다. 위험천만한 지역주택조합 사업지를 홍보하는 기사를 쓸 때는, 구청에 문의만 해도 확인 가능한 ‘토지확보율’ 같은, 사람들에게 정말 중요한 정보는 담지 않는다.

야당동 타운하우스 사례는 단순히 ‘신기한 계단식 설계’나 ‘부동산 개발 실패담’정도로 소비되어선 안 된다. 도시계획이 작동하지 않을 때, 인허가 행정이 판단을 포기할 때, 언론이 감시 대신 홍보를 선택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은 재산권을 최대한 쓸 수 있게 보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약속이어야 하고, 인허가는 절차가 아니라 책임이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언론은 광고판이 아니라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1. 야당동은 운정신도시 일부에 걸쳐있으므로 이 글에서 지칭하는 지역은 운정4동 남부로 칭하는 게 적절할 수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명인 야당동으로 쓴다. ↩︎
  2. 여기에 더해, 다세대 주택을 지을 때 꼭대기층을 이른바 ‘복층빌라’로 만드는 일이 일반화되다시피 한 것도 문제다. ‘다락’이라는 핑계로 도시계획이 정한 층수보다 1개층을 더 올리고, 다락에 화장실과 난방배관을 설치해 사람이 살 수 있게 하는 위법 꼼수로 인해 역시 적정 인구보다 더 많은 인구가 유입될 여지를 만든다. ↩︎
  3. 관리지역은 다시 계획관리, 생산관리, 보전관리지역으로 나눈다. 이중 계획관리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건폐율과 용적률 한도가 높고 건축행위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주거, 개별입지 공장 등 난개발이 벌어지곤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관리지역 제도 자체도 과거 준도시-준농림지역의 난개발 문제 해결을 위해 등장한 계획체계라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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