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 2010년대 새로운 정당 운동의 유산화』를 연재합니다. 본 연재는 2024년 10월 제주에서 ‘다른 정치의 본령'(이하 다정본)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대안정치공간 모색’이 공동 편집하였습니다. 다정본은 녹색당, 정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정당과 정치조직화에 관해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 글에 관한 의견 및 토론은 댓글 또는 teammosaek@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문 게재를 요청하시는 경우 검토 및 편집을 거쳐 게재할 수 있습니다.
참여자 후기
김범일
사회운동을 정당으로 시작했고, 정당으로만 경험중인 원외정당의 오래된 활동당원으로 정당활동을 왜 하냐는 질문에 왜 정당활동을 하지 않냐고 답하곤 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뢰하는 사람들과 정당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눈 경험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다른 이들의 글과 다소 성격이 달라 보이는 글을 쓰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글을 읽고 여러 반론이 떠오른다면 당신 생각이 맞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
김상애
2010년대 아마도 가장 대중화된 사회운동이었던 페미니즘을 통해 정치적 주체로 자각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녹색당원이 되었다. 이 기획의 전신인 다정본 책모임을 할 때부터 2010년대의 사회운동과 정치 조직화에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가 빠질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 워크샵 과정에서 리부트된 페미니즘과 녹색당의 정치를 겹쳐 읽어낼 수 있겠다고 확신했다. 특히 이 운동과 정치에 붙여지는 ‘새로움’이라는 이름표, 그 ‘새로움’의 내용, 그리고 ‘새로움’을 전유하는 어떤 낡은 것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리를 두고 역사화하고픈 대상인 페미니즘 리부트 10년, 아직도 여전히 충분히 내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녹색당의 10년을 함께 놓고 보니 말하고 싶은 것들이 구체화되기 보다는 추상화되었고, 손에 잡히기 보다는 손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기획글 쓰기를 중단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하고 싶은 운동이 정당정치였는가하는 것엔 여전히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녹색당원이고 싶다. 내부토론에서 내가 제기한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도출된 것이다. 우리가 던진 질문과 화두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질문과 다른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글쓰기를 이어가지 못해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내 질문에 대해 성심껏 토론해주어 고맙다.
김우용
현재의 진보정당은 어떤모습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었다. 민주노동당으로 시작되었던 진보정당이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성찰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정의당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녹색당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본질에 더욱 다가갈 수 있던 시간이었고, 우리가 어떤 대안을 갖춰야할지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얻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수 많은 경험과 고민들이 유실되어버리는 순간이 너무 안타까운 시대에 무언가 기록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현재라는 시간만으로는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기록하는 자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가 어제를, 그리고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오늘을 기억하고 하루하루 준비해나갈 수 있길 바란다. 물론 그런 시간도 함께하는 동료가 있을때 가능하다.
김은주
우연히 당원이 되어 10년이 넘도록 당적을 유지하면서 돌연 이것이 관성인지 아닌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전히 이 질문에 답은 구하지 못했지만 다정본 모임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녹색당을 좀 더 선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여전히 어떤 가능성이 녹색당에 있다고 믿으면서, 일상에서의 정치, 지역에서의 정치, 시민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건강한 토론과 실험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김형수
고작 광역 녹색당에서 잠깐 일했다는 이유로 지역 녹색당에 대해 평을 하는 글을 쓴 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되도록 다른 주제를 택하고 싶었는데, 얼마전 지역으로 하방했고, 서는 자리가 달라져 풍경이 바뀌다 보니 이런저런 지역 녹색당의 생각을 두서 없이 풀어 놓았던 것이 빌미가 됐다. 많은 지역에서 쉽지 않은 상황에서 녹색당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안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10년 동안 녹색당을 만들어 온 건 지역이고 지역 당원이라는 점, 풀뿌리 정당으로서 지역 정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만큼 지역 녹색당 자체의 활동과 그 여건에 대해서 진솔하게 되짚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화두로 던지고 싶었다.
지역에서 열심히, 좋은(?) 활동을 하는 건 녹색당 사람들이지만 녹색당 사람들의 활동은 대체로 녹색당으로 조직화되지 않는다. 지역에서 필요한 운동을 하는 것은 같은데, 녹색당은 왜 지역에서 정치조직으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것일까. 혹은 지역 녹색당은 반복되는 선거에서 어떤 정치적 비전과 전략을 가지고 있을까.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누가 일하고, 어떻게 구성되는지부터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녹색당의 평범한 개인들의 정치인-되기라는 정치적 실험은 필요했고, 의미있었지만 어떻게 지속가능할지 함께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보다 적나라한 평가가 병행되어야만 또 다른, 혹은 더 나은 다음이 가능하지 않을까.
부족한 부분과 섣부른 생각은 필자의 능력과 무지 탓이다. 반론을 통한 토론을 통해 녹색당의 정치적 의미를 다시 이어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태영
어떤 난감함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고팠다. 2010년대 내가 경험하고 참여한 사회운동, 정치운동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사실 다 잘 안 됐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 시간들 덕분에 많이 배웠고, 연결된 우리들이 생겼으니 잘 된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사회운동, 정치운동들이 원래 목적한 바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건 목적과 목표가 괴리된 문제였을까? 이런 주제들에 대한 나의 원초적인 감각은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는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과 연결되어, 우리가 느끼는 난감함과 곤경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가 필요했다. 제주에서의 책모임, 그리고 녹색당의 전·현직 당직자들과 연결된 워크숍과 글쓰기 작업은 어쩌면 이런 마음들이 우연적으로 연결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우연적이고 소중한 연결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와 글은 특히 ‘조직’에 대한 고민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 개인화된 세계 속에서 정당이나 정치 조직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모습의 모임이 되어야 할까? 나는 이 주제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주제에 대해, 또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곤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실험하는 작업들을 계속 해보고 싶다.
정유현
녹색당 당직자로 2024 총선까지 치른 후, 오랜 쉼과 정리가 필요했다. 다정본 동료들이 없었다면 한참을 헤맸을 것 같다. 다양한 생각과 배경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이들과 새로운 정치 조직에 대한 고민, 정당과 녹색정치, 사회운동의 한계와 가능성 등.. 이 모든 것의 유산화 과정까지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해보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이 과정은 암흑기 같은 현재의 정치적 냉소시대에서 다시 제대로 정치를 해야 하는 소명을, 혹은 좋은 정치가 필요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고 확신한다.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만큼, 다정본의 동료들과 마치 광장의 ‘응원봉’ 연대처럼 갈 길과 해야만 하는 일을 함께 고민하며 가자고 서로 손 내미는 과정을 걷고 있다. 이 글은 녹색당 당직을 맡으며 경험한 개인의 이야기를 녹여낸 글이지만, 모두의 고민을 함께 연결하고 또 다음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정치적 손 내밀기의 과정이자 제안이다. 연결되기를 주저하지 않고, 어제를 돌아보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길에 작지만 분명한 발자국을 찍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조준희
다정본에서의 글쓰기와 대화는 정리되지 않던 생각을 다소나마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까지 당직자였던 탓에, 또 반대로 현재는 당직을 맡고 있지 않은 탓에 자칫 회의주의에 가까운 비판만 늘어놓는 건 아닐지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함께 대화의 자리에 나와준 동료들 덕분에 비판과 가능성, 희망을 같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이번 작업에 모인 우리는 정당이나 사회에 대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오랜 기간 가깝게 지낸 사람이지만 서로 생각이 달랐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름을 이유로 바로 차단하지 않고 다름을 계속 확인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그 경험이 이 작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이기도 하다. 거창한 전략보다도 ‘좋은 대화’ 그 자체가 정치조직화의 핵심이라는 점을 새삼 새긴다.
현우식
다정본은 2022년 10월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에서의 책모임으로 시작했다. 처음 읽었던 책은 『이재영의 눈으로 본 진보정당의 역사』였다.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도』, 『녹색당과 녹색정치』, 『정당의 발견』, 『책임정당』,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등을 함께 읽었다. 2024년에는 전현직 녹색당 활동가들과 만나게 되면서 이번 공동작업으로 이어졌다. 동시대 정치 조건에서 정당이라는 형식과 범주를 메타적으로 성찰해보자는 문제의식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처음에는 다소 추상적인 논의가 주를 이루었는데, 녹색당의 지난 12년 경험을 주제로 삼으면서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논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겨울은 진보정당 당원들에게 유독 춥고 길다. 이 논의가 진보정당 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여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