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정책으로만 바뀌지 않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어떻게 사업이 되는가

(사진=필자 제공)

숫자로는 성공한 사업, 기억되지 않는 변화

공공에서 진행하는 지역 활성화 사업의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익숙한 문장들이 반복됩니다. 참여 상인의 수는 몇 명이고, 협력한 브랜드는 몇 곳이며, 방문객 수는 전년 대비 얼마나 늘었는지, 만족도는 몇 점인지가 나열됩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사업은 대체로 성공적입니다. 발주처의 평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없어 보이는 결과들입니다.

하지만 같은 지역을 몇 달 뒤 다시 찾았을 때, 이 사업이 무엇이었는지 선뜻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기억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지 묻는 질문에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숫자로는 성공했지만, 현장에는 뚜렷한 기억이나 변화가 남지 않는 사업이 반복되는 이유를 여기서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이 묻는 질문과 현장이 묻는 질문

지역 활성화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공공과 현장이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행정에서는 참여한 상인의 수나 브랜드의 개수, 방문객 규모 같은 지표를 먼저 묻습니다. 예산이 얼마나 집행되었는지, 계획된 프로그램이 몇 회 진행되었는지도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는 다음 보고와 다음 사업을 위한 필수적인 질문들입니다.

반면 현장에서는 다른 질문이 반복됩니다. 이 사업이 실제로 지역이나 상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매출이나 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는 사실이 곧 장사가 잘되고 지역이 활성화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갈등이 누적된 상황에서 사업의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이 두 질문은 각각 틀렸다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의 단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정의 질문이 연 단위의 성과를 기준으로 한다면, 현장의 질문은 그 이후의 삶과 관계를 기준으로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업이 대답하기 쉬운 질문에 맞춰 설계되면서,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비계획과 형식적 의견수렴의 한계

대부분의 공공사업에는 본 사업에 앞서 ‘예비계획’ 단계가 존재합니다. 지역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단계가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정은 촉박하고, 성과에 대한 압박은 큽니다. 그 결과 의견수렴은 형식적인 절차로 축소되기 쉽고, 이미 정해진 계획에 지역의 의견이 덧붙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역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사업의 주체라기보다, 이미 짜인 틀에 참여한 대상이 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설문조사와 간담회는 진행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해석되었고 어떤 선택으로 이어졌는지는 충분히 공유되지 않습니다. 특히 반응이 좋은 사람이나 협조적인 구성원 위주로 의견수렴이 이뤄질 경우, ‘우리끼리만 하는 사업’이라는 인식은 더욱 빠르게 퍼집니다. 이후 어떤 프로그램을 시도하더라도 참여율이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참여했다’와 ‘함께 만들었다’의 차이

주민참여는 단순히 의견을 묻는 과정이 아니라, 이 사업을 ‘우리가 만들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과정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개발이나 주차장처럼 정치적 숙원에 가까운 아젠다들이 질문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논의에서 멀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질문지는 종종 답을 정해놓고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선택지에 포함되지 않은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됩니다. 그 결과, 보고서에는 주민 의견이 반영된 것처럼 기록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재미와 참여의 감각이 사라집니다. 회의 한 번 이후 더 이상 참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지역구성원들과 사업에 대한 그림을 함께 그리는 참여 워크숍, 각 테이블마다 전문가들의 주도 하에 함께 구상된 사업의 방향성들은 지역구성원들의 스스로의 발언을 통해 발표된다.(사진=필자 제공)>

정책은 왜 현장의 시간과 어긋나는가

이러한 문제는 사업 구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역이나 상권에서 어떤 문화와 변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관계가 쌓이고, 시행착오가 반복되며, 그 과정에서 참여의 감각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사업은 1년, 길어야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성과를 요구받습니다.

여기에 공공과 정치권의 책임자가 4~5년 주기로 바뀌는 구조가 더해지면서, 속도는 더욱 빨라집니다.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남기기 위해 큰 축제나 상징적인 프로그램이 선호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항상 현장의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비계획이 몇 달 만에 작성되고, 이미 완성된 계획에 주민 의견이 부록처럼 덧붙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정책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정책이 현장의 시간과 언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PM은 기획자가 아니라 통역자가 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지역 사업을 운영하는 PM(프로젝트 관리자)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기획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사람에 가까워집니다. 같은 날 오전에는 집행률과 중간 성과를 설명하고, 오후에는 이 사업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 운영 주체는 종종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묻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공공의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과, 현장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구조가 만들어졌는지 설명하고 무엇이 가능한 지와 무엇이 불가능한 지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일일 것입니다. 동시에 행정에도 이 사업이 왜 시작되었는지, 이 예산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래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제기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들과도 지역 사업에 대한 방향성을 논의합니다.(사진=필자제공)>

실패해도 다음이 있는 구조를 설계한다는 것

결국 전문가의 역할은 결과물을 대신 만들어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역 구성원들이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는 데 있습니다. 의견수렴 과정이 부담스러운 절차가 아니라 의미 있는 경험이 되도록 만들고, 질문에 답하는 일이 노동이 아니라 참여가 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누구도 계속 걸려오는 여론조사 전화를 받기는 싫어할 테니까요. 

지역 사업의 성과를 방문객 수나 단기 지표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는 목표에 미치지 못했을지라도, 과정 속에서 관계가 남고 신뢰가 쌓였다면 그 사업은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들어진 작은 관계들이 이후의 자발적인 시도와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도시는 정책만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정책은 중요한 도구이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과 감각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지금 성과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성과가 현장에는 어떤 기억으로 남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무리하며

앞으로 1년간 다룰 저의 연재는 특정 정책을 비판하거나 정답을 제시하기 위한 글은 아닙니다. 제가 그동안 도시와 지역, 상권을 다루는 여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해온 장면들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드러난 구조와 질문을 차분히 풀어보기 위한 기록에 가깝습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늘 구체적이지만, 정책과 사업의 언어로 옮겨지는 순간 쉽게 추상화되고 정리됩니다. 이 연재는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맥락과 감각을 다시 붙잡아보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본 연재 뒤에 이어질 열한 편의 글에서는, 현장의 말이 어떻게 콘텐츠와 사업의 형태를 거쳐 정책의 언어로 번역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민참여와 갈등, 관계의 시간, 성과와 실패라는 키워드를 따라가며 지역 사업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하나씩 짚어볼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과 동떨어지지 않은 방식으로 사업을 설계하고 운영하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연재는 현장의 경험을 넘어, 그 배경에 놓인 정책적 흐름에 대한 고찰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참여정부 이후 지역균형발전,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과 로컬 중심 정책, 그리고 현정부인 이재명 정부가 다시 강조하고 있는 지역 주도 성장과 생활 밀착형 정책, 상권 르네상스 사업까지, 한국 사회에서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호명되고 다뤄져 왔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보려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와 정책의 방향이 언제 맞물렸고, 언제 어긋나는 지를 살펴보는 일 역시 이 연재의 중요한 한 축이 될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음 글에서는 상권 활성화와 도시재생 담론에서 자주 반복되는 ‘활성화’의 오해를 살펴보려 합니다. 언론과 보고서, 각종 포럼에서는 어떤 새로운 기능의 건물이 들어섰는지, 유명한 청년 창업가나 따듯한 의미를 지닌 협동조합이 얼마나 등장했는지를 중심으로 변화를 설명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들이 실제로 지역과 상권을 활성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조금 다른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편에서는 물리적 변화나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지역 안에서 어떤 관계가 만들어졌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기준으로 활성화를 다시 정의해보고자 합니다. 건물과 조직은 생겼지만, 관계는 남지 않은 사례들, 반대로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지만 지역의 작동 방식이 달라진 사례들을 통해, 활성화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차분히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서락원
서락원

동반성장·지역 파트너십 기획자 (Community Designer)
도시·지역 현장에서 상권 활성화와 주민참여, 로컬 브랜딩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며 공공(정부·지자체)과 현장(상인·주민·협단체)을 잇는 협력 구조를 설계해왔다. 사업의 성과를 방문객 수와 단기 지표에만 두지 않고, 협업과 자생력, 합의의 과정을 남기는 방식으로 관계 기반의 실행 모델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이해관계자 간 커뮤니케이션과 상생 파트너십 구축, 협의 테이블 논의자료 작성 및 정책 이슈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의 언어를 현장의 언어로 번역하고 현장의 감각을 실행 가능한 구조로 정리하는 일을 지속해오고 있다.

기사 : 3

2개의 댓글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