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왜 토건국가였는가
이 글은 2011년 일본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에서 출간된 『고용연대사회: 탈토건국가의 공공사업(雇用連帯社会:脱土建国家の公共事業)』의 서장 「왜 토건국가였는가(なぜ土建国家だったのか)」(이데 에이사쿠(井手英策) 著)를 저자와 출판사의 정식 허락을 받아 번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이태영(greatyoung22@gmail.com)
토건국가의 한계: 경제, 정치, 사회의 변화
1. “분배를 체감할 수 없는 국가”로
1990년대, 경제의 장기 정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전의 규모로 공공사업이 실시되었다. 다만 주의가 필요하다. 공공투자의 급증이 관찰된 것은 1992~1993년이며, 1994~1996년에 주춤세를 보인 후 감소 추세로 돌아서게 된다(그림 3). 이 시기에는 재정투융자도 꽤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1994년 이후에는 고도경제성장기를 방불케 하는 감세 정책이 부활하게 된다. 말하자면 고도경제성장기의 감세 정책, 1970년대와 1985년 이후를 지탱해 온 공공사업, 그리고 일반회계의 팽창을 억제하면서 이 쌍방을 통제한 재정투융자라는 형태를 통해, 일본의 독자적인 생활보장 네트워크가 전면화되었다.

* 1970~90년까지의 독일 수치는 동독을 제외함 / ** 한글 적용 이미지 변환: Gemini
그러나 토건국가의 대가는 GDP 대비 200%에 달하는 전대미문의 재정 적자로 나타났다. 흔히 공공사업에는 불필요한 낭비가 많고 경기 부양 효과도 미미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만으로는 공공사업과 재정 적자 사이의 관계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적어도 1992년부터 1996년에 걸쳐 발전된 공공사업만으로 버블 붕괴 이후 현재까지 20년간 이어진 재정 적자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림 4>에 일목요연하게 나타나 있듯이, 일본 재정 적자의 원인은 과다한 지출보다는 불충분한 세수에서 찾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대중의 비판은 공공사업에 집중되었다. 2001년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공공사업의 과감한 삭감과 재정투융자의 급격한 축소가 단행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의 사회보장밖에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3>에서 보듯 공공사업마저 다른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만 진행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4년에는 배우자 특별공제가 폐지되었고, 2006년과 2007년에는 정률 감세의 축소 및 폐지가 진행되었다. 또한 2002~2006년에는 국가의 사회보장 지출이 1조 1,000억 엔이나 삭감되었으며, 2007년 이후에도 매년 2,200억 엔씩 삭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처럼 토건국가는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 보장 기능을 상실했고, 감세 조치도 중단되었으며, 사회보장 영역에서도 한층 더 삭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한글 적용 이미지 변환: Gemini
정리해 보자. 토건국가의 핵심은 (1) 재정투융자를 활용하여 조세 부담을 낮추고, (2) 중간층과 중소기업 경영자, 자영업자를 끌어들이는 한편, (3) 공공사업을 통해 경기를 자극하여 저소득층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4) 저소득층을 공공부조의 수급자에서 납세자로 바꾸고, (5) 취업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보험료 납부를 가능하게 해 이들을 사회보험의 테두리 안으로 포섭했다. 이상이 전후의 ‘작은 정부’와 ‘낮은 조세 부담’을 가능하게 한 구조였으며, 그 기초에 있었던 것은 바로 경제성장이었다. 말하자면, (6) 경제성장은 소득을 증가시켰으나 복지나 교육, 주택을 위한 대비, 즉 저축의 필요성을 낳았고, 정부는 재정투융자를 통해 이 저축 자금을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공공사업에 대한 비판이 강해지며, 더욱이 재정 위기로 인해 조세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사회 통합을 실현하기 어렵다. 본래 재정 적자의 원인이 감세라면 증세는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공공사업과 낮은 조세 부담을 통합의 핵심으로 삼아온 국가에서는, 그 쌍방이 중단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증세에 합의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분배를 체감할 수 없는 국가’의 위기다. 그러한 국가에서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해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은 세출 삭감 이외에는 없다. 그러나 공공사업의 축소는 지역 경제의 붕괴를 가져온다. 또 공공사업을 필두로 정부의 불필요한 지출이 적자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세출을 삭감해야 사람들이 증세에 합의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증세할 힘이 없는 국가, 증세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대지진이라는 미증유의 위기, 수많은 귀중한 희생을 계기로 삼아,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은 채 증세를 실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2. 공공사업은 왜 비판받는가?
우리 사회는 분기점에 서 있다. 대지진 속에서 기정사실화하듯 점진적으로 증세를 실시할 것인가, 위기를 방관하며 상처를 걷잡을 수 없이 넓힐 것인가. 이대로라면 그중 하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은 그중 어느 쪽도 아니다. 사람들이 분배를 실감하고, 증세에 대한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공공서비스 본연의 자세를 고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람들의 비판이 가장 거센 한편, 지역 경제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되는 공공사업을 다룬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재정의 본질은 ‘사람들의 공통된 필요’를 ‘사회 전체적으로 충족시켜야 한다’는 재정사회학의 관점에서 출발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공공사업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다. 예를 들면, 사회자본으로서의 편익보다 경기 대책으로서의 수요가 중시되어 불필요한 공공사업이 실시되었다는 견해, 혹은 1990년대에는 공공투자기본계획 아래 대규모 공공사업이 시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가 국가의 시책에 동원되어 결과적으로 지방 재정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점을 문제 삼는 논의, 그리고 공공투자가 한편으로는 지역 간 격차 시정을 중시한 나머지 고용 대책으로서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지적의 시비를 가리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은 아니다. 여기서 확인하고자 하는 바는 왜 이런 종류의 비판이 이토록 거세게 밀려들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공공사업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공공사업을 필요로 하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 근거 자체가 상실되었음을 예리하게 반영한다. 그렇다면 공공사업이 사람들의 합의 형성을 어렵게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공공사업에 의존해 온 국가는 어떻게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는가? 이제 각 장의 논점과 연결 지어 이 점을 생각해 보자.
먼저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도시 지역과 지방 지역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버블기 전후나 1990년대 후반 이후 도시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 ‘1표의 격차(역주: 표의 불평등)’ 문제와 선거제도 개편이 연쇄적으로 맞물리며 도시 지역의 정치적 이해가 반영되기 쉬운 구조가 되었다. 실제로 무당파층의 확대, 민주당의 창당과 약진, 하시모토 내각과 고이즈미 내각의 구조개혁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민당의 정치적 기반, 즉 지방 지역을 타깃으로 삼는 공공사업이 존재해 왔으나, 정작 지방의 정치적 발언권이 약화되고 도시 지역마저 공공사업을 원하지 않게 되면서 공공사업의 필요성은 한순간에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실제로 상하수도 보급률이나 지하철망 정비의 진척을 보면 알 수 있듯, 1990년대 중반에는 대도시의 사회기반시설(인프라) 정비가 상당 수준 완료되어 있었다. 도시재생 정책을 제외하면 도시 중산층(중간층)에게 공공사업의 중요성은 점차 희석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도시에 한정되는 공공사업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공공을 위한 사업’을 유지한다면, 도시 주민도 납득하고 지방에도 실제 요구(니즈)가 있는 방향으로의 사업 전환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삼아, 우선 미래의 건설 비용을 억제한다는 차원에서 도로나 교량 등의 공공사업을 신규 건설 투자로부터 수명 연장이나 내진 공사 등 유지·보수 투자로 신속히 전환해야만 한다(제1장).
앞서 언급한 도시 중산층의 공공사업을 향한 반발은 지방의 이해관계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고이즈미 정권에서 공공사업의 삭감, 공적 부조의 억제, 삼위일체 개혁을 통해 지방으로의 재정 이전 규모를 대폭 축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 노선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 역시, 이러한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선명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개혁의 압박은 지방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렇다면 기존의 도로, 교량, 공공시설물 건설과는 달리,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양립하면서 지역 경제의 자립을 지탱해 줄 공공사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환경 관점을 결합한 삼림관리정책(제2장)이나 교통 정책, 시가지 재활성화, 주택 정책 등이 일체형으로 운영되는 콤팩트시티 같은 것이 좋은 예이다(제3장).
한편 공공사업을 향한 반발이 거세진 배경에는 사회경제 구조의 변화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보다 저출생·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중화학공업에서 지식집약형 산업으로의 구조 전환이 이루어짐에 따라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져 기존의 전업주부를 전제로 한 가족 구성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구조의 변화는 공공사업이라는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한 요구를 감소시켰고, 과거 전업주부가 전담해 온 대인 사회서비스를 정부가 대체해 줄 것을 필요로 하게 만들었으며, 공공사업을 통한 중화학공업용 사회자본 정비에 대한 합의 형성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공공사업을 향한 요구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킨 반면, 사회보장이나 교육 같은 사회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강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공공사업 부문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보육원이나 유치원, 그리고 양로·요양시설 등에 대한 투자 수요를 높여 건설 시에는 물론 완공 후에도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의 관점에서는 건설업의 복지 사업 진입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시설로의 취업 조건 개선, 지역사회의 복지 담당자로서의 건설업의 역할 강화 등 새롭게 검토해야 할 과제가 많아 정책적 보완이 강력하게 요구된다(제4장).
이처럼 이 책의 각 장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대상은 주민들에게 가장 친근한 존재이자 주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공공사업은 중앙집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 핵심은 공공사업이 국고보조사업 체제로 운영되었다는 점에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각 부서 입장에서는 보조금이 할당된 예산을 굳이 삭감할 이유가 없었고, 의회 입장에서는 보조금 확보야말로 자신의 이익 유도 성과를 과시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관계의 균형 속에서 국가는 국고보조금을 매개로 지방 재정의 규모를 자의적으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상의 구조 아래에서는 주민이 공공사업의 의사 결정에 참여하려면 이익집단을 매개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오직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이라는 근본적인 관점에서 해당 결정에 참여할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생활환경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개선되던 전후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의 합의도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회자본이 갖추어진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에 대한 결정 과정에 주민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구조적 모색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공공사업에 대한 합의 형성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두 가지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보조금과 입찰 제도, 공공회계, 주민 참여 등을 통해 공공사업에 대한 주민의 감시 및 결정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효율적인 행·재정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지자체 간의 연계 및 자치단체 지원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즉, 공공사업 개혁은 예산이나 행정의 틀 자체를 바꾸는 개혁이며, 나아가 토건국가의 근간으로부터의 개혁을 포함하는 것이다(제5장, 제6장).
이렇듯 이 책은 일본 토건국가의 역사성을 염두에 두면서 그 한계를 직시하고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대목은 일본이 토건국가에서 탈피하기 위해 과연 어떤 모델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의가 축적되어 왔다. 그 핵심이 되는 사상이 바로 ‘보편주의(유니버셜리즘)’이다. 보편주의를 선도적으로 도입한 곳은 북유럽 국가들이며, 대륙 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에 있어서도 이러한 선진 모델로의 접근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를 공공사업의 주역으로 삼아 ‘토건국가’의 길을 걸어온 일본의 역사를 완전히 배제한 채 보편주의로의 급격한 도약을 이루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책은 바로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서장에서 기록한 일본 재정의 역사적 발자취를 염두에 두면서도, 독자적인 복지국가 모델을 구축해야만 한다. 기존 구조가 지닌 합리성을 감안하면서 그것을 어떻게 개혁하고, 우리가 그리는 이상적인 복지국가상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 책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다는 차원에서 철저한 리얼리즘 위에 서 있다(종장).
앞으로 재난 복구(부흥) 과정에서 종래형의 공공사업이 대대적으로, 굳이 도발적으로 표현하자면 노골적으로 시행될 것이다. 이 책은 ‘포스트 부흥기’의 공공사업이 나아가야 할 형태 ─ 구체적으로는 도시 중산층이 납득하고 지방 경제가 활성화되어 사회보험 제도의 안정화로 이어지며, 무엇보다 고용 보장을 통해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는 정책적 기반으로서의 공공사업 ─ 를 제시하려는 시도이다.
번역: 이태영(greatyoung22@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