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수사학 #4. 유시민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 유시민. 2024.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생각의길.
유시민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그는 공적 자아가 아주 커다란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과 영향력을 공적 목적을 위해서 쓰고 싶은 사람 같다. 문재인 정권 시기 어용지식인을 자처했고, 최근 한 유튜브 방송에서는 자신을 “스스로를 도구로 여기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둘째, 그는 이런 자신의 모습에 적잖이 괴로워하는 것 같다. 한 때 직업정치를 꿈꿨지만 정계에서 은퇴했으며, 이후에도 정치비평을 그만두겠다는 뜻을 여러 번 밝혔다. 최근 민주진보 세력 내에서 여전한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도 “나는 권력자가 아닌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일 뿐”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 찬 복잡한 존재이니, 그런 모습 자체를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다.
다만, 그가 여전히 정치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 중 하나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유시민의 말과 글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알다시피 이미 민주당 내부 권력다툼에 그가 개입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논쟁은 시작되었다. 올해 그가 제시한 소위 ‘ABC론’으로 인해 민주당 내부 갈등이 점화되었고, 그는 반대 세력으로부터 ‘문조털래유’로 대표되는 세력의 상징적인 인물로 비판받았다. 최근 그는 김어준이 진행하는 <다스뵈이다>에 출연하여 작심한 듯 이재명 정부와 ‘뉴이재명’ 세력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원로 지식인이 다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유시민이 이 싸움을 통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모두 그렇다. 나는 이에 간접적으로 답하기 위해 그가 2024년에 펴낸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으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여기서 ‘그’는 윤석열이다. 이 책은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이후 쓰여졌다. 누가 봐도 윤석열의 자진 사퇴 또는 탄핵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진 책이다. 한편으로 그는 이 책이 인상비평에 불과한 ‘정치잡문’이며, (책의 제목이 그러하듯이)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럼 책의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 새로운 저널리즘
책의 1장(그를 보며 깨달은 것)은 윤석열에 대한 인상비평, 2장(여당이 참패한 이유)은 윤석열과 국민의힘 세력이 총선에서 패배한 원인을 다룬다. 인상적인 대목은 3장이다. 3장의 제목은 언론의 몰락이다. 이는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 최근에는 그가 ‘재래식 언론’이라고 부르는 저널리즘의 몰락을 말한다. 그는 “국힘당과 언론은 사실상 한몸”(89)이라고 말한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은 국민의힘에 후보를 공급하고, 국민의힘은 그들을 공천해 국회에 들여 놓는다. “한국의 신문 방송은 대부분 사회의 공론장이 아니라 기득권 집단의 이념을 전파하고 그들의 이익을 수호하는 정보유통 회사가 되었다”(93)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진보언론으로 여겨지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의 독립언론은 보수언론보다는 낫지만, 역시 몰락하고 있다. 유시민은 이들 언론을 ‘기자들의 언론’이라고 부른다. 정치권력이나 광고주에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갖는다는 점은 높이 살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진정한 저널리즘은 독자들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유시민은 이 점에서 진보언론이 보수언론과 같이 “엘리트가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면서 만든 뉴스를 수용자에게 쏘아 보내는”(100), ‘우리가 알던’ 저널리즘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언론 엘리트들을 위한 균형과 자기만족에 머문다.
유시민은 시민들이 이런 낡은 언론을 거부하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저널리즘의 대표 인물은 김어준이다. 김어준은 교통방송 <뉴스공장>을 유튜브 버전으로 전환했으며, 여론조사를 동원한 기성 언론의 대중심리 조작을 막기 위해 <여론조사 꽃>을 세웠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이외에도 그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사례를 명확히 제시한다.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압도적 재미 매불쇼>,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알릴레오 북’s>, <뉴스타파>, <서울의 소리>, <스픽스TV> 등이다. 놀랍게도 그는 “언론개혁은 가능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125)고 공언하기까지 한다. 이미 새로운 저널리즘이 등장했으며, 이를 키우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유시민은 새로운 저널리즘을 키우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뉴스공장>과 <매불쇼>에 주기적으로 출연하며, 시청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는 장으로 삼는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과 같은 책을 쓰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가 언급한 언론들이 새로운 저널리즘의 한 축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 언론이 “재벌 대기업과 한몸이고 국힘당의 전위이며 부패한 권위주의 문화의 수호신”(124)인 재래식 언론이 초래한 불균형을 바로잡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믿는 듯 하다.
그러나 역기능은 없을까? 당연하게도 <뉴스공장>과 <매불쇼> 이외에도 자신들이 기득권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편이며, 기존 언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언론이 되겠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이 얼마든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민주당의 전위를 자처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최근 유시민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재래식 언론이 아닌 새로운 저널리즘으로부터, 국민의힘 세력이 아닌 민주진보 세력 내부로부터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더 이상 보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위치만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쉽게도 유시민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의 ‘코어 지지층’의 대변자를 자처함으로써 이 위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새로운 저널리즘이 기존 언론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고 실제로 그 영역을 키우는 데 일조했지만, 새로운 저널리즘 안에서 벌어지는 저널리즘 규범을 둘러싼 토론의 영역을 넓히지는 못했다. 민주진보 세력 내부에서도 민주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코어 지지층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새로운 지지층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했을 뿐이다. 이것 역시 자신의 이익에 따른 행동,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력만이 민주적이고 정의롭다는 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행동이 아니냐는 것이 지금 그에게 제기되는 비판이다.
이재명, 조국, 민주당
4장(그가 인기 없는 이유)에서 다시 윤석열에 대한 인상비평을 마치고 유시민은 5장(그의 적들)에서 윤석열의 적수들을 다룬다. 여기서 적수들은 이재명, 조국, 민주당을 말한다. 책이 쓰여진 시점에서 이재명은 윤석열이 ‘아직 죽이지 못한 자’이다. 이재명의 입장에서는 ‘아직 죽지 않은 자’다. 이재명을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적, 사법적 공세가 이어졌지만 이재명은 쓰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불운의 구렁텅이에서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몸을 일으켜 민중의 성원을 받으며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광경을 보고 싶다”(214~215)고 말한다. 윤석열의 내란 시도로 인해 그 시기는 예상보다 일찍 앞당겨졌지만, 결국 그의 바람대로 되었다.
두 번째 적인 조국은 ‘죽였는데 살아난 자’다.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의 수장으로 다시 살아났다. 조국에 대한 유시민의 평가는 완강하다. 그는 “조국 부부와 자녀들이 특별히 비난할 만한 반칙을 저질렀는지, 그것이 형법으로 처벌해야 마땅한 행위였는지에 대해서 나는 법원과 의견이 다르다”(40)라고 말한다. 비난할 소지가 없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국을 위선자라고 부르는 것은 프레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는 자신과 자기 가족을 위한 선택을 했으며,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가 지닌 자기중심성을 완전히 벗어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과 조국에 대한 유시민의 평가는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그는 “윤석열의 가장 위험한 적은 이재명이 아니라 조국이다”(220)라고 말한다. 이재명은 아직 죽이지 못한 자이기 때문에 공존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조국은 이미 죽였던 자이기에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에 대한 평가가 대체로 ‘지지자’의 관점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반면, 조국에 대한 평가는 ‘친구’이자 ‘동지’의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최근에 그는 <다스뵈이다>에서 자신이 노무현 정부의 일원, 문재인 정부의 자원봉사자, 이재명 정부의 “꽤 괜찮은 지지자”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는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기를 기원하지만, 검찰개혁을 둘러싼 최근의 행보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그의 지지가 특정한 조건에서 철회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지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이재명과 조국에 대한 평가는 왜 미묘하게 다를까. 아마 최근 그의 행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도 궁금해할 대목이다. 책에서 유시민은 윤석열이 이재명을 죽이려 하는 이유에 대해 ‘전략설’과 ‘감정설’을 제시한다. 전략설은 이재명을 반드시 제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 총선과 대선 승리에 유리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반면 감정설은 윤석열이 이재명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유시민은 윤석열이 전략을 세울 만큼 똑똑하지 않다는 이유로 감정설을 지지한다.
유시민은 분명 윤석열보다는 똑똑한 지식인이며, 이재명과 조국에 대한 평가가 미묘하게 갈리는 이유에 대해서도 전략설이 타당하다고 본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권 재창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설 역시 배제할 수는 없겠다. 이재명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조국에 대한 연민과 동지적 우애를 빼놓고 이를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인상비평이자 개인적인 생각이다. 다만 앞으로의 과정에서 이 미묘한 차이가 어떤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지가 드러날 것이다.
윤석열의 세 번째 적은 민주당이다. 유시민은 양당체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정치학자와 비평가들의 입장과 달리 “그것은 국민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내린 여러 차례의 정치적 선택이 만든 결과”(228)이며, ‘오늘 시점’에서 “국힘당과 민주당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보수정당과 진보정당”(239)이라고 말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지지하지는 않지만 더 나은 보수정당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229)이 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민주당은 보수세력의 유일한 적수이자 협치의 파트너이다. 마거릿 대처의 말을 빌리자면,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조국혁신당에 대한 태도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는 조국혁신당이 제3시대 신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스핀오프 정당이라고 말한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이 공약하기는 어렵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은 갈망하는 검찰독재정권의 조기 종식을 당의 목표로 선포하면서 2024년 총선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민주당의 다수파가 되지 못하는 전투적 자유주의자들이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유시민은 이들이 “노사모, 2002년 개혁당, 2004년 열린우리당, 2010년 국민참여당, 2019년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223)이라고 본다. 알다시피 이 계보는 유시민 자신의 정치적 궤적과도 크게 겹친다. 이를 통해 그가 민주당 내 전투적 자유주의자들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국혁신당의 미래에 대한 유시민의 태도는 명확하다. 하나는 민주당과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각급 선거에 비례대표 후보를 내면서 ‘매운맛 민주당’으로 활동하라는 것이다. 지역구 후보를 내서 민주당과 본선 대결이나 후보 단일화 경쟁을 해서는 안된다. 그가 보기에 민주당과 ‘제로섬 게임’을 벌일 수 있는 정당은 국민의힘 뿐이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민주당과 경쟁하는 것은 아주 힘들뿐더러 이겨도 웃을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실상의 결론은 “진보 정치를 하고 싶으면 민주당에서, 또는 민주당과 함께하는 게 현명하다”(226)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여타의 진보정당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는 잉글랜드 축구 스타 마이클 오언의 말을 빌려야겠다.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
그가 보기에 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짊어진 유일한 정당이다. 여기서 시대정신은 곧 김대중의 시대정신을 말한다. 그 핵심은 ‘중도개혁주의’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다. 서민과 중산층의 복지 향상을 정책의 목표로 삼고,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며, 민주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민족의 평화 공존을 도모한다. 말하자면 이것이 유시민이 생각하는 민주당의 ‘이념’이다. 그가 ‘ABC론’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A, 즉 가치 중심 그룹은 이 이념을 따르는 그룹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증축’을 통한 중도 확장에는 찬성하지만, 기존의 집을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은 반대한다는 그의 입장도 여기에 맞닿아 있다.
말하자면 유시민은 민주당 내의 비주류 전투적 자유주의자들의 대변자였지만, 이제는 민주당의 ‘주류가 되려는 자’이다. 그는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민주당 주류와 긴장하며 신당에 합류하거나 진보정당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행보를 보였지만, 이제는 김대중의 시대정신을 이야기하고 코어 지지층의 대변자를 자처한다. 이재명 정부가 중도보수를 자처하며 오른쪽으로의 외연 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지금, 그는 비어 있는 진보의 자리에 서고자 한다. 아마 그가 지금 시대에 진보정치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앞에서 인용한 두 명언을 합친 것일테다. 대안은 없다.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
청년 세대와 ‘젊은 벗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유시민의 세대론이다. 책의 결론은 ‘젊은 벗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쓰여 있다. 젊은 벗들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이다. 60대인 그는 이들을 젊은 벗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초고령화 시대에 40년은 더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유시민이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젊은, 벗들이다. 그는 이들이 앞으로 40년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주체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6070세대처럼 나이가 들어서 보수화되지 말고, 함께 다음 세대의 존경을 받는 어른이 되자는 것이 유시민이 젊은 벗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2030세대는 선진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에 사는 ‘네이티브 디지털’ 세대다. 생각과 문화의 차이가 뚜렷해서 말을 붙이기 어려운 사람들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라고 한다. 이들은 뭐든 잘해나갈 것이며 4050세대가 2030세대의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 됐든 2030세대는 유시민이 말을 걸고자 하는 대상은 아니다. 생각도 문화도 다른 이들과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보는 듯 하다. 유튜브 방송 등에서 “기성 세대를 믿지 말고 스스로 길을 개척하라”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청년 세대에게 전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한편으로 민주당의 청년정치에 대해서는 날 선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는 민주당의 청년정치인들이 언론이 퍼뜨린 논리를 짜깁기해 민주당의 반성과 성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거나 지도부를 비난하는 SNS 글을 올리는 것은 청년정치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몇 년의 민주당 청년정치는 완전히 망했다”(243)고 단언하기도 한다. 이는 언론이 ‘탈이념’을 부추기고 진영논리를 비판하면서 민주당을 공격하려는 수작에 이들이 말려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청년정치인은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념을 배격하면 정치가 사라진다. “이념을 가리지 않고 청년을 정치에 진출시키는 것은 영업이지 정치가 아니다.”(245)
청년 세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유보적이거나 비판적이다. 4050세대야말로 이념을 가진 세대이자, 진보의 주체, 역사의 주체이다. 유시민이 보기에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수행을 압도적으로 비판한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4050세대를 향한 책이다. 이들은 섣불리 청년 세대를 위해 길을 내어주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더 단단하게 중심이 되어야 한다. 청년 세대 역시 기성 세대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 자신을 비판하는 젊은 평론가들을 ‘촉법 평론가’, ‘용역 평론가’라는 멸칭으로 비판한 그의 행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그는 이제 원로 지식인이지만, 비켜 설 생각은 없다. 자신을 40년 걸려 겨우 만들어진 소중한 존재이며 앞으로 쓰임이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워주는 김어준과 새로운 저널리즘이 있고, 젊은 벗들인 4050세대가 있는 한에서 말이다. 최근 유시민은 김어준의 옆에서 “늙은 건달처럼 물러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의 주류가 되려는 자로서 다시 정치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그에 비하면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글쓴이로서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며 글을 끝내려 한다. 사람의 운명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가 억울한 원로 지식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 속의 유시민 작가라면 지금의 상황에 아마 “에이, 젊은 사람들이 좀 그럴 수도 있죠. 나도 젊을 때 그랬는데?”하고 능글맞게 답변했을 것 같다. 지금의 모습은 다르다. 이미 많이 억울해하고 있고, 가만있지 않겠다는 결의도 느껴진다.
이번 월드컵에서 사람들이 홍명보 감독을 비판했던 이유는 축구협회가 문제가 있어서만도 아니고, 한국 대표팀이 축구를 못해서만도 아니다. 도의적인 사과를 하는 그 순간까지도 끝까지 억울해했기 때문이다. 조국 역시 그랬다.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지만, 사과하기보다는 억울해하기를 택했다. 억울함은 분노의 씨앗이 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나는 그가 억울함을 동력 삼아 정치 영역에 다시금 뛰어들거나 민주당의 주류가 되려고 할 경우에 홍명보, 조국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보다는 존경 받는 작가, 낚시하는 중년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랬으면 좋겠다.
※ 본 연재는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웹진 <인-무브>에 공동게재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