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데 에이사쿠(井手英策)가 편저한 『고용연대사회: 탈토건국가의 공공사업(雇用連帯社会:脱土建国家の公共事業)』의 서장 「왜 토건국가였는가(なぜ土建国家だったのか)」를 번역하여 소개한 작업을 갈무리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한국에서 전개된 토건국가와 관련된 논의들도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10년도 더 된 일본 토건국가 논의를 소개하는 작업에 뒤따를 수 있는 질문, ‘지금, 왜, 토건국가 논의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답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토건국가’에 대해
‘토건국가’의 ‘토건’은 ‘토목과 건축’의 약자이다. 토목공사는 상하수도, 도로, 댐 등 물리적 하부구조를 건설하는 것을 뜻하고, 건축은 건물을 짓는 행위를 말하며, 이를 포괄하는 용어로는 건설(construction)이 사용되기도 한다. ‘토건’과 ‘국가’를 결합시킨 ‘토건국가’ 개념은 1980년대 초부터 전후 일본 사회의 특정한 정치경제적 현상을 문제화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 등 연구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에서 토건국가 개념은 주로 사회운동 진영에서 개발주의와 유사한 의미로 활용하거나 난개발을 비판하는 차원에서 폭넓게 사용되어 왔으며, 이와 동시에 이를 한국 사회의 구조적 특성을 포착하기 위한 분석적 개념으로 규정하려는 학술적 시도들도 이어졌다. 학계에서 이뤄진 몇몇 논의들은 다음과 같다.
조명래(2003)는 토건국가를 건설업 및 토건업이 비대하게 팽창하면서 형성된 먹이사슬(건설 마피아)이 정치권력을 형성하고 국가 성격 자체를 이에 맞추어 변형시킨 국가 유형으로 규정한다. 이 구조에서는 건설 관련 정부 부처가 공사를 발주하면 기업이 공사비의 일부를 정치인과 관료에게 상납하고, 정치인은 이 거래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유착, 가격 조작, 뇌물 제공의 사슬 구조가 작동한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군수산업 확장을 위해 전쟁을 유도하듯, 건설 마피아는 조직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지속해서 대규모 건설사업을 기획하고 생산한다. 특히, 조명래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역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과 건설업체 및 종사자 수가 증가하는 등 토건국가적 구조가 강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비효율적인 재정 지출과 국토 환경 파괴를 수반한다고 진단한다.
홍성태(2004)는 토건국가를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소모하고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국가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이 개념은 전후 일본 사회의 정·관·재계 유착 카르텔과 이익 분배 체계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한국 사회에도 적용된다. 특히, 정치권, 민간 토건업체, 그리고 토지나 주택 개발을 담당하는 개발공사의 ‘삼자동맹’이 토건국가를 지탱하는 기본 구조를 형성한다. 이 동맹은 공공의 자원을 동원하여 토건 사업을 벌임으로써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개발독재의 구조적 유산을 지속시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박배균(2009)은 토건국가를 특정 정권의 일시적 파행이나 부도덕성에 기인한 현상이 아닌, 국가를 매개로 작동하는 사회세력 간의 경합과 상호작용의 결과물로서 ‘국가의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성’에 기반을 둔 체제로 파악한다. 저자는 기존의 정·관·재계 중심의 토건동맹 개념에 ‘장소 기반적(place-based)’ 성격을 결합하여 논의를 구체화한다. 이는 자본주의 공간경제의 불안정성 속에서 자기 지역의 장소의존적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외부 자본을 유치하려는 국지적 개발정치와 영역화 과정이 결합된 국가 체제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경쟁과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수익성과 경쟁력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신개발주의)’로 이행하였다. 이러한 성향의 강화 배경에는 지역 정당정치의 균열구조, 계급정치 및 풀뿌리 민주주의의 미성숙, 그리고 ‘중앙-지방’ 프레임 중심의 담론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
강진연(2015)은 한국의 토건국가성이 중앙정부의 독자적인 기획에 의해서만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이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지역 간 불균형 성장, 취약한 재정구조, 지역주의 정치문화라는 공간적 구조 속에서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 성장연합이 합법적인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해 온 역사적·공간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다.
이들 앞선 접근들의 공통점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토건국가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데 있다. 특히 지역 중심의 균열 구조나 신개발주의 등 당시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문제의식을 토건국가라는 개념을 매개로 설명하려 한 시도들이었다. 이 글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과 분석의 축적된 성과를 딛고 작성되고 있다.
특히 이 글에서 나는 토건국가를 단순히 대규모 건설사업이 남발되는 국가 상태를 지칭하거나 난개발을 비판하는 규범적 용어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 국가의 자본 축적 전략, 공간 정치, 그리고 재정 및 금융 전략의 복합적 결합을 분석하기 위한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논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토건국가라는 렌즈를 통해서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한국 사회 고유의 구조적 현상과 경로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토건국가에 대한 이해가 철 지난 분석이라는 인식에 대해: 가설과 문제의식
일각에서는 토건국가가 과거 고도성장기나 권위주의 개발 독재 시기를 설명하는 개념일 뿐, 서비스 산업화와 정보화가 진척된 오늘날의 한국 자본주의 국가를 분석하는 데에는 유효성을 상실했다고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이 글이 제기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토건국가 개념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 국가를 분석하는데 여전히 유효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나아가 토건국가 개념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독특한 경로와 방식을 통해 이식되고 전개되었는가를 규명하는 데 유용한 단서를 제공한다.
한국에서 택지와 주택 공급, 그리고 물리적 인프라 개발에 있어 국가의 계획 중심성과 직접적 개입이 제도적으로 안착한 시점은 1980년대 이후이다. 1980년에 제정된 「택지개발촉진법」은 국가와 공기업(한국토지공사 등)이 대규모 사유지를 강제 수용하여 독점적으로 택지를 공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어 1989년에는 휘발유 특별소비세를 재원으로 하는 도로 관련 특별회계가 도입되었으며, 1994년에는 「사회간접자본시설에대한민간투자촉진법(민자유치촉진법)」의 제정으로 인프라 건설 부문에 민간 자본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편, 같은 해 기존의 도로 관련 특별회계는 도로 외 교통시설까지 대상을 넓혀 교통시설특별회계로 확대되었고, 목적세(도입 당시 교통세)와 고정적으로 연계된 이 재정 구조는 현재까지도 한국 인프라 투자의 골격을 유지하는 축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제도적 정비가 진행된 이후인 1997년, 외환위기가 도래하였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일본의 자산 버블 붕괴와 달리 부동산 위기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외환 보유고 부족에 따른 ‘단기 유동성 위기’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에 따라 국가가 위기 이후 실물 경기 회복을 위해 동원한 가장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수단은 바로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였다.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여신 제한이 완화되었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시장은 전통적인 기업 대출 중심에서 주택담보대출과 부동산 금융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었다. 특히, 1999년 도입된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제도는 장기적으로는 민간 자본이 인프라 개발에 참여할 때 발생하는 운영 적자를 국가가 세금으로 직접 보전해 주는 제도였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재정 여건을 악화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었으나, 민간 자본을 활용한 단기적인 건설업 팽창에는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추이는 한국 자본주의 국가가 생산과 축적을 이해하고 조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모했음을 시사한다. 1960~70년대 발전국가 시기의 국가가 수출주도 산업화와 제조업 육성에 한정된 자본을 동원·배분하였다면, 1980년대 이후의 한국 국가는 주택, 도시 공간 개발, 부동산 시장 자체를 매개로 삼아 새로운 자본 축적 경로를 개척하고 이를 고도화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주택과 도시, 그리고 사회 인프라는 복지 증진이나 사회서비스 제공이라는 목적을 넘어, 국가의 유의미한 경제 생산 전략이자 자본 축적의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거시적 흐름, 즉 공간 개발과 금융의 결합을 국가가 직접 조직하는 체제를 한국 토건국가의 성립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과거 가계의 저축을 장려해 산업 자본으로 유입시키던 국가는 이제 부동산 대출을 장려하는 주체가 되었고, 부동산 금융은 한국 가계가 자산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사회적 기제로 정착하였다. 국가는 부동산 경기 부양을 국가 경제 성장의 보루로 삼아 도시 용지의 수요를 전국 단위로 확장시켰으며, 신도시 건설, 전국망 도로, 대규모 신항만과 신공항 건설을 축으로 하는 지역 발전의 청사진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왔다. 노무현 정부 이후 추진된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대대적인 국가 균형발전 전략 역시 이와 같은 공간 개발 중심의 축적 흐름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전 국토를 대상으로 공간 개발과 부동산 시장을 광범위하게 확장하고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장치로 기능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국토 공간의 개발과 부동산 시장을 전면에서 적극적으로 조직하고 고도로 금융화하는 일련의 과정과 분리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 흐름을 포착하기 위해 토건국가 개념은 여전히 분석적 유용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현재적인 질문은 토건국가라는 관점이 198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거시적 변화는 물론, 최근 전개되는 초대형 메가 프로젝트와 산업 재편 구상을 정합적으로 설명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보기에 토건국가라는 관점은 한국에서 관철된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변화, 그리고 균형발전 전략을 장기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3. 일본 토건국가 연구 소개
일본 학계에서 토건국가 개념은 단순히 비효율적인 건설 위주의 예산 낭비를 폭로하고 비판하기 위한 일반적인 정치 수사로 소모되지 않고, 일본의 독특한 복지체제와 국가의 전략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분석적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
일본의 토건국가를 복지국가의 제도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미야모토 타로(2011)는 일본의 복지체제를 사회보장(social security)과 고용보장(employment security)이라는 두 개의 유기적인 축으로 구성된 통합적인 생활보장 체계로 파악하고, 일본의 복지정치를 정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용보장 정책의 역사를 연계하여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전형적인 복지체제는 서구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상이한 형태를 띤다. 즉, GDP 대비 사회보장 지출이 낮고, 직역별로 파편화된 사회보험 체계를 고수하며,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의존하고 있어 에스핑 앤더슨(Esping-Andersen)의 전형적인 복지체제 3유형(자유주의, 보수주의, 사민주의) 어디에도 쉽게 부합하지 않는다. 미야모토 타로는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의 복지제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회정책으로 성립한 복지체제뿐만 아니라 고용레짐을 통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며, 이 국가들에서는 ‘경제성장과 고용보장’ 자체가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실질적인 ‘대체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의 고용보장 체계는 고생산성 부문과 저생산성 부문으로 분절되어 작동해 왔다. 대기업 중심의 장기고용 관행과 기업이 제공하는 복지 혜택이 고생산성 부문의 안정적인 고용레짐을 형성한 반면, 저생산성 지방 부문의 고용보장을 실질적으로 담당한 핵심 기제가 바로 ‘토건국가 전략’이었다. 井手英策(2011)도 설명했듯이, 전후 일본의 장기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 정부는 지방의 영세 건설업체와 자영업자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민당 정부는 공공사업 예산을 대규모로 편성하여 지방에 배분함으로써 지방 경제를 순환시키고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재분배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일본의 토건국가는 비합리적인 개발 광풍의 결과물이 아니라,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 보장과 경제성장을 매개로 삼아 ‘낮은 조세 부담’과 ‘작은 정부’라는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복지대체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토건국가 개념이 일본 사회과학계에서 분석적 유용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개념이 지닌 이러한 제도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포착해 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데 에이사쿠(井手英策, 2011)는 토건국가의 동학을 국가 재정 전략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일본 토건국가의 핵심적 작동 원리는 일반 조세 재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우체국 저금 등으로 축적된 민간의 거대한 유동성을 국가가 통제하는 ‘재정투융자’ 체계를 통해 공공사업에 대규모로 투입하는 독특한 재정 금융 메커니즘에 있었다. 이를 통해 국가는 국민들의 직접적인 조세 부담률을 낮게 유지하는 동시에, 대규모 공공사업을 매개로 경기를 부양하고, 저소득층과 영세 부문을 노동시장과 사회보험 체계 내부로 포섭하는 안정적 재생산 구조를 정비할 수 있었다. 고도 경제성장과 가계 저축의 비약적 확대는 이 재정투융자 시스템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고, 공공 토건사업은 낮은 조세 부담과 작은 정부라는 보수적 국가 기조를 유지하게 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일본의 토건국가는 단순히 토목 건설 세력의 정경유착과 예산 낭비라는 예외적인 일탈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 복지체제, 지방 고용보장 정책, 국가 재정 전략, 국토 계획, 그리고 주류 정당의 정치적 지지 기반 구축에 관한 이해관계가 정교하게 결합된 것이었다. 일본의 토건국가 연구가 지니는 이론적 가치는 이처럼 토건국가를 일반론적인 문제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게 하면서 특정한 역사적 시기의 국가 형태를 규명하는 비판적 분석 틀로 활용했다는 점에 있다.
4. 한국 토건국가 연구의 진전을 위해 고려해야 할 논점들
1) 복지제도로서 토건국가
일본 토건국가 연구를 참조하여 한국의 토건국가 역시 복지제도라는 논의의 범주 안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복지체제 역시 공적 사회보장지출이 억제되고 보편적 사회보험 도입에도 불구하고 급여와 소득 격차가 큰 특징을 나타낸다. 이러한 저복지 구조 속에서 사회정책은 장기간 보완적 역할에 그쳤으며, 복지의 공백은 다양한 ‘복지대체수단’에 의해 메꿔졌다. 김도균(2018)은 이를 자산기반복지의 형성 경로로 설명한 바 있다.
김도균(2019)은 구체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복지체제 발달에 관한 비교 연구를 통해, 두 국가 모두 공적 복지보다는 재정복지, 저축기반복지, 그리고 토건국가를 통한 인위적 고용창출이라는 세 가지 복지대체수단을 중심으로 진화해 왔음을 규명한다. 그에 따르면, 발전국가는 조세 수입을 통해 공식적 복지 제도를 확충하는 대신, 국가의 금융통제 역량을 발휘하여 가계 저축을 동원하고 이를 정책금융과 재정투융자로 연계하는 우회 경로를 선택하였다. 재원 조달 측면에서 국가는 직접세 과세를 최소화하는 대신 소득공제 혜택(재정복지)을 부여하고 저축 세제 혜택(저축기반복지)을 통해 가계 자금을 금융기관으로 유입시켰다. 지출 측면에서는 일반회계 예산 지출을 억제하는 대신, 동원된 저축 자금을 정책금융 및 공공 투융자의 형식으로 건설·토목 사업에 배분하였다. 서구 복지국가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실업과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한국과 일본은 이처럼 대규모 토건 사업을 일으켜 저생산성 부문과 낙후 지역에 인위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창출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토건국가는 조세 수입화 없이도 고용 유지와 소득 분배라는 복지 정책적 목적을 수행하는 실질적인 생활보장 체계의 기둥으로 기능해 왔다.
이러한 분석은 한국의 토건국가 역시 물리적 공간 개발 전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가의 ‘복지대체수단’으로 기능해 왔음을 역설한다. 특히 주목할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팽창한 부동산 금융과 가계의 주택 자산 형성의 결합 구조가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노후 및 생활보장 체계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되어 작동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건국가 체제를 국가 복지체제의 인과적 구성요소로서 분석하는 기획은, 토건국가 연구를 고도화하기 위해 경유해야 할 비판적 논점 중 하나이다.
2) 재정 전략과 토건국가
일본의 토건국가 연구가 규명해 낸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토건국가의 성립과 지속이 국가의 고유한 ‘재정 전략’과 인과적인 관계로 엮여 있다는 점이다. 이데 에이사쿠(井手英策, 2011)가 입증한 바와 같이, 일본은 재정투융자 제도를 활용하여 일반 국민들의 조세 부담을 낮게 통제하는 동시에 대규모 공공 토목 예산을 통해 지역의 고용과 거시 성장을 방어하는 재정 구조를 고안해 냈다. 한국의 토건국가 역시 유사하게 국가 재정 전략의 흐름 안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후 순차적으로 도입된 「택지개발촉진법」, 「교통시설특별회계」, 그리고 공공-민간 파트너십에 기반한 민간투자제도 등은 국가가 일반 조세 저항을 회피하면서 대규모 공간 개발을 지속하기 위해 정비해 온 제도적 경로였다. 이 제도들은 일반회계 예산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독자적인 ‘특별회계’와 ‘목적세’, 그리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및 한국도로공사 등 거대 개발 공기업의 부채 동원 방식, 마지막으로 민간 금융 자본의 직접 투자를 적극 유치하는 방식을 구조화함으로써, 조세 부담의 급격한 인상 없이도 거대한 공간 개발 사업을 기획하고 관철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한국 토건국가를 이해하는 데 주목해야 할 역사적 현상은, 한국 국가가 보편적 조세 확대를 통한 복지국가의 형성 경로를 억제하는 대신 부동산 개발 시장의 인위적 부양과 공간 자산 가치의 상승을 유도하여 경제성장률을 떠받쳐 왔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토건국가가 한국 국가의 세입·세출 구조 및 금융 시장의 메커니즘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은 토건국가 분석의 중요한 과제이다.
3) 한국 신자유주의의 전개와 토건국가
이 글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하고 있듯이, 나는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 토건국가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변화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공간 개발과 인프라 구축은 수출주도 중화학공업 육성이라는 거시 산업 전략의 하위 범주이자 물류 비용 절감을 위한 도구적 수단이었다. 당시의 국토종합개발계획 역시 국가 전체의 제조업 경제성장을 공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적 지리 기획으로 기능했을 뿐이다(이주영, 2015).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전개된 공간 정치는 이와 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국가는 수출주도의 제조업에만 의존하는 성장의 한계를 직시했고, 동시에 대규모 택지 공급과 신도시 개발, 광역 기반시설 건설을 자치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부동산 경기 부양과 부동산 금융의 고도화를 경제성장의 가장 주도적인 전략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이러한 구조적 전환은 과거 발전국가 개발주의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국가가 자본축적을 위해 국토 공간 자체를 가치증식의 대상이자 핵심 상품으로 활용하는 방식의 질적 전환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일국 중심의 금융 통제가 약화되고 자본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도모되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토건국가적 전략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국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는 이 질문과 연계하여 다루어져야 한다.
이에 더해 주목해야 할 현재적 논점은 최근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초대형 ‘메가 프로젝트’들이다. 국가가 직접 특정 지역을 첨단 성장의 거점으로 공표하고 산업 재편을 밀어붙인다는 점에서는 일견 과거 1960~70년대 발전국가의 전략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의 자금 조달 메커니즘과 실행 과정을 들여다보면, 지난 30~40년간 한국 토건국가가 고도화해 온 특별회계 재정 구조, 공기업의 부채 동원, 민자 파트너십 금융 경로와 분리될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최근의 메가 프로젝트들이 한국 국가의 진정한 ‘미래 산업 전략’인지, 아니면 한계에 다다른 토건국가 전략을 유지하고자 하는 변형인지 규명하는 것은 사회운동과 비판적 사회과학이 직면해야 하는 과제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은, 한국 자본주의 국가와 다수의 시민 사회가 지난 40년에 걸쳐 개인의 자산 형성과 국가 경제 성장의 보루를 부동산과 공간 개발에 저당 잡힌 채 지내왔다는 역사적 경로 의존성에 있다. 수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은 가계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택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주택담보대출과 부동산 금융의 거대한 거미줄에 촘촘히 얽혀 있다. 지방의 지역사회 역시 개발사업 유치와 건설 경기 부양만을 유일한 생존 및 성장 전략으로 인식하는 관성의 영향력 안에 있다. 이같은 역사적 경로는, 국가가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첨단 산업 정책과 메가 프로젝트를 제시하더라도 그 과정이 결국 기존의 토건국가의 제도적 영향력에 포섭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경고한다.
5. 나가며: 토건국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다시 한번 제안하며
이 글을 통해 나는 토건국가라는 개념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한 부동산 문제, 가계 부채, 복지 공백, 지방 소멸 담론, 그리고 지속 불가능한 생태 파괴라는 총체적 위기를 관통하는 분석 도구일 수 있음을 설득하고자 했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한국의 여러 경제적 기획들이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귀결되거나 부동산 문제로 인해 왜곡되는 과정을 경험해 왔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개념이 등장했고, ‘토건국가’ 역시 그중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토건국가 개념이 단순히 특정 정권이나 개발 관료의 도덕적 타락과 비합리성을 비판하는 도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두에 밝혔듯이 나는 이 개념을 특정 시기 공간을 가치 증식의 도구로 삼아 온 한국 국가의 거시적 재정 전략, 금융화 메커니즘, 그리고 지방의 개발정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학술적·실천적 논의로 확장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데 에이사쿠(井手英策) 선생의 글과 그 글을 소개하는 일을 마무리하며 적은 시론적 성격의 이 글이 한국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 변화를 분석하고 미래 경로를 재기획하는 과정에서, 토건국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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