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 2010년대 새로운 정당 운동의 유산화』를 연재합니다. 본 연재는 2024년 10월 제주에서 ‘다른 정치의 본령'(이하 다정본)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대안정치공간 모색’이 공동 편집하였습니다. 다정본은 녹색당, 정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정당과 정치조직화에 관해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 글에 관한 의견 및 토론은 댓글 또는 teammosaek@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문 게재를 요청하시는 경우 검토 및 편집을 거쳐 게재할 수 있습니다.
2부. 녹색당 12년 돌아보기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이 향하는 곳
조준희
녹색당원. 서울녹색당 정책위원, 서울녹색당 정책팀장, 녹색당 전국사무처 조직팀장, 서울녹색당 사무처장으로 재직했다.
녹색당이 걸어온 12년이라는 시간은 막연히 낭만적으로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수도 없는 복합적인 시간이다. 의사결정 구조와 조직 문화, 정당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 등 녹색당의 관점과 시도들은 녹색당원이 아니더라도 대안적인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곱씹어볼 만하다. 그중에서도 기존 진보정당의 분파가 아닌 새로운 정당의 길을 선택한 만큼, 녹색당이 지향하는 사회상과 그 사회상을 바탕으로 한 정치조직화 시도는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주제다. 이 글은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과 정치조직화에 관한 간략한 소회를 담고 있다.
정당의 사회상
정당의 사회상이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정당의 사회상을 그 정당이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 그 사회에서 작동하는 규범을 포괄하는 추상적 개념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즉 정당의 사회상은 그 정당의 개별 정책 총합 그 이상의 것이다. 사회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세울 때 아주 정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당이 지향하는 사회상에 기반한 입장을 세우기 마련이다. 시민들은 주요 현안에 대한 정당의 입장을 때때로 목격하고, 그 경험이 축적되면서 각 당이 지향하는 사회상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인지할 수 있다.
정당의 사회상을 가장 명시적으로 잘 나타낸 문건이 바로 강령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진보신당 정책위의장 등을 지냈던 이재영은 강령에 관하여 아래와 같이 쓴 바 있다.1
“강령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논하는 학술 문서도 아니고, 대한민국 헌법처럼 좋은 말을 모아 놓은 문집도 아니다. 당원에게는 전투 지도이고, 국민에게는 사회의 설계도인 것이 강령이다.”
“강령은 이론적 자기 고백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기록이 아니다. 정당의 행동 규범이자 재생산 도구인 강령은 아래 세 요소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첫째, 정치 행위에 의한 미래상, 둘째, 구성원 및 구성집단의 합의, 셋째, 구체적 정치 행위와 정책의 경향성.”
강령이 정당의 사회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문서인 만큼 이재영의 서술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정당의 사회상은 독립된 단어로서의 ‘사회상’과 명확히 구분된다. 단순히 어떤 미래 시점의 사회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인 경합 지점과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판단기준이 무엇인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
녹색당은 강령에서 ‘녹색전환’을 실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녹색전환이 어떤 것인지 강령 외 문건까지 살펴보면, ‘녹색사회’(창당선언문), ‘녹색전환’(2022년 지선), 생태적 평등사회(2024년 총선) 등 사회상이 하나의 개념 용어로서 호명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성장지상주의, 성장을 강요하는 시스템으로부터의 탈피를 공통된 인식으로 삼고 있다.
강령이나 선거 기조는 그 정당이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등 ‘주체’에 대한 규정도 담기 마련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정당은 자신들의 사회 비전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고 서술하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갈등과 욕구를 조직하는 정당에는 특정 정치적 주체가 존재한다. 녹색당은 소위 ‘소외된’ 주체들을 지속적으로 호명해 왔다. “지역과 여성, 청년, 청소년, 소수자, 비정규직 그리고 모든 평범한 사람들”(창당선언문), “배제되었던 시민들, 새로운 정치적 주체들과 함께 … (중략) … 다양한 가족, 비인간 동물,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지역, 농민, 무주택자, 불안정노동자, 청년과 청소년, 이주민, 자연”(2020 정책대회 선언문) 등이다.
결국 녹색당의 사회상은 기존 정치 문법에서 배제된 주체를 조직하여 성장 강요 체제에서 벗어나는 사회로 정리할 수 있고 그 사회의 구체적 모습과 규범은 강령의 ‘생태적 지혜’, ‘사회정의’, ‘직접·참여·풀뿌리민주주의’, ‘비폭력 평화’, ‘지속가능성’, ‘다양성 옹호’, ‘지구적 행동과 국제연대’라는 소제목 아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성장 강요 체제에서 벗어난다는 인식은 녹색당이 기존 진보 정치세력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발행된 정책기조문에서 녹색당이 지향하는 사회가 진보정당을 포함한 기존 정치세력의 그것과 어떤 지점에서 다른지 단호하게 밝히고 있다.2
“한국의 모든 정치 세력은 경제성장을 당연시하면서 저성장을 막아낼 방안을 두고 경쟁”
“생산력 주의에 빠진 기존 정치는 한계 없는 성장을 전제한 경제적 부의 분배 몫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전선에 발이 묶여 있다면, 녹색당은 성장의 한계를 인정한 속에서 어떻게 경제적 부를 형평성 있게 나눌 것인가를 두고 모든 정당들과 경쟁”
한편, 녹색당의 사회상은 읽는 이에 따라 앞서 이재영이 지적한 “좋은 말을 모아 놓은 문집”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기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노동당), “정의로운 복지국가”(정의당), “진정한 복지국가인 제7공화국”(조국혁신당), “자주국가, 평등사회, 통일세상”(진보당) 등 꽤 익숙한 개념어로 정의되는 사회상과 달리 ‘녹색전환’이라는 낯설고, 해석의 여지가 큰 목표를 설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녹색당은 창당 당시부터 기존 진보정당 운동의 맥락에서 다소 비껴난 자리에 있었기에 사회주의나 복지국가와 같이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립된 개념의 사회상이나 조직된 지지 주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녹색당이 추구했던 사회상을 기반으로 한 정치조직화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보정당 운동이 깊은 내홍을 겪었던 2010년대 초반 녹색당 창당 당시에도 그랬고, 소위 진보정당 2기의 종식이라 평가받는 2024년 바로 지금도 녹색당의 가능성은 이 부분에서 열려 있다.
녹색당의 사회상과 정치조직화의 실패
‘당의 사회상과 주체 설정이 실제로 중요한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당의 사회상을 좀 더 명확히 하고자 시도했던 <2024 녹색당 기후정치대회>를 준비하면서 여러 번 마주한 비판이다. 당연히 사회상, 주체가 문건으로만 규정되어 있다면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하다. 정당의 목표는 정치조직화다. 선거에서의 당선이든, 사회 변혁을 이끄는 주도 세력으로의 부상이든 정치조직화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정교한 사회상을 내세운 정당이더라도 그 결실로서 정치조직화를 이루지 못하면 실패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녹색당이 사회상을 정치조직화로 이어가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여러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시민들이 정치와 만나는 경로나 방식이 변했다거나 거대 양당 중심 정치체제가 공고해졌다거나 하는 외부적 원인도 분명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녹색당이 겪은 어려움의 원인으로 당내 토론 부족, 사회운동과의 조응 부족, 그리고 사회상 그 자체의 경합성 부족이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돌아보려고 한다. 당내 토론과 사회운동과의 조응 부족이 구체적인 수단과 경로에 관한 회고라면, 마지막으로 다룰 사회상의 경합성 부족은 새로운 주체로 새로운 사회상을 그리려 하는 녹색당의 정치 그 자체에 관한 회고다.
➀ 당내 토론의 부족
토론이 부족했다는 회고는 가장 의아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어 서술할 다른 원인과 달리 구체적인 원인이며 그나마 개선이 용이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나이, 성별, 지식, 경험 등을 내세우는 것을 명확히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었고 전면 추첨 대의원 제도 등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고민도 깊었던 조직이다. 달리 말하면 당내 토론 문화가 정착하기에 적합한 토양이었다. 하지만 개별 정책이나 사회 현안, 나아가 추상적인 사회상에 관한 토론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부족했다. 더불어, 수치 근거 없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몇 차례 당내 갈등을 겪은 이후에는 당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화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당원들이 늘어났다.
당의 사회상은 고상한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당원들에게 일상적으로 내재하는 관점이나 세계관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책, 현안, 사회상에 대한 당내 토론의 일상화가 중요하다. 이미 정해진 내용을 학습하는 것을 넘어, 토론에 참여하거나 토론을 청취하는 것을 통해 당의 사회상을 다듬고 합의 수준을 높여 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사회상을 토대로 사회 현안을 해석하는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곧 당의 사회상을 일상적으로 내재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본소득 당론 채택, 탈원전 공론화위원회, 탄소중립위원회 등 거버넌스 참여 등 기억에 남는 공개적 정책토론이 있었다. 부문별 위원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토론이 분명 존재했지만 축적되지 않고 휘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풀뿌리 지향 정당으로서 당의 사회상 역시 기초 조직에서부터 이야기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지역당 회의나 모임에서 당대 녹색당이 고민하던 현안을 토론해 본 경험도 흔치 않다. 지역당 회의 안건은 주로 당무에 국한되었고 간혹 짧게 이뤄지는 정책 토론도 지역 이슈로 제한되었던 경험이 있다.
➁ 사회운동과의 조응 부족
녹색당의 사회상이 정치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한 두 번째 원인은 사회운동과의 조응 부족으로 꼽을 수 있다. 탈핵, 기본소득, 페미니즘, 기후정의 등 창당 이후 녹색당의 주요 메시지로 등장한 키워드에는 그 키워드를 다루는 사회운동 조직이나 지지 시민그룹이 존재한다. 사회운동의 흐름에 당이 호응한 것이든, 당이 주도적으로 의제를 던진 것이든 그 여부에 관계없이, 당이 받아든 의제를 당의 사회상 속에 배치하기 위해 당원 교육이나 토론을 진행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해당 운동의 지지 시민그룹을 지지자, 당원으로 조직화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왜 함께 운동했음에도 외부의 힘을 당으로 끌어오지 못했을까? 장기적 관점, 전략에 기반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사회운동의 경향을 좇는 당의 임기응변식 운동, 당원 조직화까지 가지 못하는 허약한 정책적, 조직적 역량 탓이 클 것이다. 물론, 당장 원내에서의 영향력이 필요한 사회운동의 경우 당의 역량과 무관하게 녹색당보다는 민주당계 정당과의 협업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런 외부적 요인 외에도 앞서 언급한 당내 토론의 부족, 뒤이어 이야기할 경합성 기획의 부족이라는 내부적 요인도 녹색당이 연대활동에 집중하면서도 당세를 뚜렷하게 확장하지 못한 원인이다.3
당의 자원이 한정적인 상황에서, 당연히 모든 연대활동에 참여할 수 없다. 당위적으로만 접근하거나 임기응변식으로 접근한다면 일정이 맞는 한 모든 연대에 함께 한다는 결론밖에 없다. 어떤 연대에 집중할 것인지 정하는 단계부터 당의 사회상에 그 의제를 배치해보고, 단순 ‘참석’을 넘어 당의 기획으로 엮어갈 수 있는 여지를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➂ 사회상의 경합성 기획의 부족
녹색당의 사회상이 정치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한 마지막 원인은 사회상 그 자체의 경합성 부족이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원인과 달리, 경합성 기획의 부족은 녹색당이라는 독자적인 정치세력이 풀어야 할 사회상 그 자체에 관한 숙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녹색당의 정치가 갖는 의미는, 기존 정치에서 배제된 주체가 성장을 전제하는 기존 정치경제 시스템을 거부하는 대안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새롭고 유효한 경합을 만들어내는 미션을 안고 출발한 정치다. 지난 12년, 녹색당은 국지적으로 분명히 새롭고 유효한 경합들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지만 그런 경합들이 총체적인 정책 프로그램이나 정치조직화 기획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론의 여지 없는 녹색당의 핵심의제인 기후위기 대응을 두고 돌아보자. 언젠가부터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기후 유권자에 관한 여론조사가 발표된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기후위기 해결에 앞장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38.8%를 기록했다.3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조사에서도 “기후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평소 정치적 견해와 달라도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응답이 62.5%에 달해, 기존 지지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24.6%)을 2배 이상 웃돌았다.4 이 같은 결과는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상당히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녹색당은 지난 12년 동안 지속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집중해왔고, 녹색당이라는 명칭의 상징성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실제 투표 결과는 이러한 기대와 크게 어긋났다. 기후위기에 관한 일반적 인식은 높아졌으나, 이를 중심으로 한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은 여전히 유의미한 정치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세적으로나 당 내부적으로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에 입각한 정치적 전선을 명확히 그리지 못한 점 역시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모두가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명확한 전선, 높은 경합성이 필요하다. 녹색당은 누구의 무엇을 위해 누구 혹은 무엇과 싸우는 정치세력인가. 기존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며 대안을 이야기하는 대안 정당이라면 대적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본 강령과 정책기조에서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은 기존 정치세력과 분명히 구별되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성장주의를 넘어선 생태적 전환을 강조하는 녹색당의 사회상은 기득권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경합성을 만드는 기획은 쉽지 않다. 가령 기후위기라는 자칫 정치중립적으로 해석되기 쉬운 위기를 정치경제적으로 재해석하여 경합성을 드러내는 일은 많은 부연 설명을 동반하기 십상이다. 더불어 녹색당의 대안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타자와의 정치적 적대, 경합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의 통념이나 상식, 영유하던 편리와도 어느 정도 경합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어렵지만, 녹색당의 등장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숙제다. 꼭 장기적인 비전을 토론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정치 기획을 수립할 때부터 의식적으로 경합의 구도를 설정해보는 시도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시도해봐야 한다.
있으면 좋은 당, 있어야 하는 당
녹색당에서 마주하는 논쟁 중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논쟁이 더러 있다. 특히 정책기조, 정치노선과 관련하여 깃발을 던지는, 즉 궁극적인 사회의 상을 그리는 일이 더 중요하냐, 당장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 현안에 대응하는 실질적 정책이 더 중요하냐는 논쟁이 그렇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지만, 결국 두 가지는 같이 가야 한다. 사회상이 있어야 그걸 기준 삼아 현재 상황에 대한 당의 입장을 만들 수 있다. 사회상이 흐릿해도 현안에 대한 입장을 낼 수 있지만, 파편적인 메시지들만 남거나 주류 사회운동의 입장에 이름 하나 더 올리는 기여에 그치고 만다. 그것만으로도 녹색당은 ‘있으면 좋은 당’일 수 있지만, 정치적 지지를 이끌어 내는 수준으로 넘어가기에는 부족하다. 당장 원내 활동을 못하는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마음 먹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강령에서 천명한 것처럼 녹색당의 정치는 기존 정당과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정당으로서 녹색당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지지 세력을 엮어 나가는 정치조직화라는 점에서 만큼은 다른 정당과 같다고 생각한다.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 그 사회상에 입각한 정치조직화는 한국정치에서 새롭고, 필요한 시도였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지금까지의 노력에서 한 발 더 나갈 수 있다면 그 길은 더욱 경합성 높은 곳에 녹색당의 전선을 그어보는 일이다. 이를 위한 토론은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고, 경합한다는 것은 지역이나 내가 활동하는 부문에서 직접 대면하는 누군가와 척질 수 있는 실질적인 부담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와 싸우는지, 어떤 대안 사회의 맥락 위에서 싸우는지 명확하지 않을 때 녹색당은 ‘있으면 좋은 당’으로 남을 것 같다. 밀양에서, 2018년 지방선거에서, 그리고 지난 12년 동안 빛났던 몇몇 순간에서 녹색당이 분명 ‘있어야 하는 당’이었던 순간에 우리는 어떤 전선을 그었는지 상기하면서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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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이재영. 2013.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 레디앙.
- 녹색당. 2016. 「녹색당 2016년 제20대 총선 정책공약집: 성장 중독 탈출 행복이 우선이다」
- 이오성, 김다은. “2022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를 공개합니다”, 시사인, 제747호
- 기후정치바람(준). 2024.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