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나누어줌으로써 동료가 되고, 그럼으로써 동료가 마침 우연히 소유한 자원을 계속 나누어주는 시스템이 넓은 네트워크로 실현된다면 어떨까. 이에 따라 딱히 뛰어나지 않고 때로는 불성실하다 해도 누군가의 변덕 덕에 반드시 살아갈 수 있는 분배경제의 유토피아가 구축되어가는 것을 몽상해본다. – 285쪽
청킹맨션을 아시나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통해 익숙한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금성무와 임청하가 등장하는 장소, 그곳이 바로 홍콩의 주상복합 건물 청킹맨션입니다. 당시 임청하가 맡은 역할은 마약상(!)이었죠. 그만큼 청킹맨션은 행정력이 닿지 않는, 범죄가 만연한, 어둡고 좁고 축축한 그런 이미지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공포 체험이나 위험하거나 불결한 장소 체험 컨셉의 여행 유튜버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으니, 최근의 인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거대한 슬럼, 위험한 범죄 소굴이나 도시재개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은 청킹맨션 안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경제·생활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오가와 사야카의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2025)1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인류학 연구자인 저자가 홍콩 청킹맨션에서 만난 자칭 청킹맨션의 ‘보스’ 카라마와 교류하며 경험한 탄자니아인 공동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우리가 공동체를 생각할 때 흔히 떠올리는 이른바 ‘선한 시민’들의 연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청킹맨션에서는 배신, 속임수, 불법적 요소들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보스’ 카라마도 공동체를 이끄는 가치지향적 리더의 전형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거들먹거리면서 기행을 일삼는 중고차 거래 브로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주민이라는 특성상 제도에 온전히 기대를 걸 수도 없고 언제든 누군가 날 속일 수 있다는 신용 결핍의 상황에서 그 결핍들을 메우는 관계망, 그것도 제대로 작동하는 관계망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관계망은 사망한 동료 주민의 운구 비용 모금부터 상거래 시 신용 보증의 역할, 자고 먹고 입을 것의 공유에 이르기까지 제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풀어냅니다.
이 관계망의 중요한 특징은 엄밀한 설계와 규칙보다는 ‘애매함’을 택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회의를 하며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다가도 최종적으로는 ‘여러 사정이 있으니 세세하게 따지지 말자’는 결론에 이르곤 하는데요. 저자는 그 배경에, 타자가 조언을 구하기 전까지는 타자의 행위에 끼어들지 않는 문화, 문제 상황을 타자에 대한 평가(‘노력이 부족하다’ 등)와 연결 짓지 않는 인간관, 난민과 단기체류자 등이 섞여있는 특성 상 멤버쉽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관행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구성원과도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에서 이상적인 도시 공동체를 기대한 사람은 관심을 거둘 수도 있겠지만, 결국 커뮤니티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는 이런 문화와 태도들이 결핍과 불확실성 가득한 도시에서 커먼즈를 유지해나가는 데 핵심적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세계는 읽는 이에게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범죄, 성매매, 사기와 배신 같은 이야기들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런 문제 상황이나 구조적 원인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모습에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홍콩의 이주민 네트워크를 관찰하는 이들이,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대부분 1세계 연구자라는 점도 독서를 잠깐씩 멈추게도 합니다. 다만 이 책은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 공동체를 낭만화하거나, 반대로 범죄 소굴로 프레이밍하는 책은 아니고, 또 거시적 관점에서 구조를 이야기하려는 책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뒤 탄자니아인 공동체 그 이면의 도시 구조가 궁금하다면 이 책과 함께 거시적 관점에서 이주를 다룬 책이나 도시 내/도시 간 불평등을 설명하는 세계도시론 관련 자료를 함께 읽으면 생각의 지평을 더 넓힐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답 없는 이 시대에 대안을 모색하다보면 그럴싸한 가치, 이상적 개념어, 비판 받지 않을 완벽한 논리에 매달리곤 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거기에 매몰되면 흠결 가득한 우리 일상에 이미 숨어 있던 대안의 단초를 놓치게 되기도 합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는 그런 점에서 (저를 포함한)대안을 찾다가 붕 떠버린 사람에게 같이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저로서도, 어느새 큰 고민 없이 입버릇처럼 내뱉고 있는 ‘공동체’, ‘커먼즈’라는 대안들이 숭고한 이상향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는 일상적 처방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기는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도시라는 불확실성의 공간, 서로 조금씩의 익명성을 보장 받길 원하는 공간에서 커먼즈 혹은 네트워크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 호수성2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생생한 논픽션으로서 도시에서 대안의 단초를 찾는 분들께도 일독을 권합니다. 무엇보다, 그냥 정말 재밌는 책이니까요.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커먼즈란 무엇인가(2024). 한디디. 빨간소금
- 사스키아 사센의 세계경제와 도시(2016). 사스키아 사센(남기범 등 옮김). 푸른길
- 유체도시를 구축하라(2012). 이와사부로 코소(서울리다리티 옮김). 갈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