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서장’은 어떻게 남천동에 살 수 있었을까? 부산 난개발과 도시정치: 『도시는 정치다』

엘시티 공사 여부에 대해서 부산시민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 … . 부산시민이 가지고 있는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엘시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해운대 해수욕장은 시민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 144쪽

오늘은 부산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저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추억이 많은 장소입니다. 동시에, 부산은 도시계획과 부동산 그리고 도시정치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문제적 면모를 보여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산과 바다가 조화로운 도시, 곧 3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최대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무역항을 가진 도시, 가장 오랜 기간 우승하지 못한 야구팀을 가진 도시 등, 부산은 여전히 상징이 많은 도시이며 시민들의 자부심도 높은 도시입니다. 그런데, 왜 문제적일까요?

얼마 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서 부산의 인구 재앙을 우려하는 기사를 보도해서 화제가 되었지요. ‘인구 재앙’, ‘지역 소멸’이란 정의에 대한 비판적 수용은 이 글에서 잠시 접어두더라도, 실제로 부산은 광역시 중 유일하게 ‘초고령사회’(만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돌입한 도시이며, 1인당 지역총생산(GRDP)에서도 광역지자체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등 저성장과 인구유출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추세’와는 다르게 엘시티, 마린시티 등 해안가의 초고층·초고가 아파트가 보여주는 ‘장면’은 이 도시의 지속가능성과 공공성에 물음표를 그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엘시티 게이트의 상흔이 여전한 지금에도, 북항 재개발과 삼익비치타운 재건축 등 부산의 문제적 ‘장면’들은 계속 생산되고 있습니다. 부산의 미래가 달렸다던 북항 재개발 사업에선 여지 없이 비리 문제가 터져 최근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범죄와의 전쟁 中)로 더 유명해진 남천동 삼익비치타운 아파트는 원래도 부촌이었지만 최근 99층 초호화 재건축 조감도를 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죠.

<삼익비치 재건축 아파트(그랑자이 더 비치) 조감도>

부산의 도시개발 사건·사고를 살펴보면 각종 비리뿐 아니라 ‘도시개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악화일로를 걷는 지역들에서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쓰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 뒤에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은 누구인지, 자각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를 빼앗기고 있는 집단은 누구인지 판단하는 중요한 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부산의 각종 개발사업의 문제를 예견하고 비판했던 故 윤일성 교수의 유고집인 『도시는 정치다』입니다. 2018년 발간된 이 책은 도시정치, 도시재생, 도시문화라는 세 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부산의 각종 난개발 사업을 ‘도시정치’라는 틀로 바라보는 1부는 특히 큰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저자는 부산의 난개발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토건주의적 성장연합론”을 제시합니다. 토건주의적 성장연합론은 정치계, 경제계, 관계, 언론계, 학계의 엘리트 집단이 여러 네트워크를 통해 공동의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그 이해관계가 토건사업, 즉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이라는 장에서 펼쳐진다는 관점입니다. 저자는 도시정부, 정계, 학계, 금융계, 언론계 등 도시의 주요 행위자 네트워크의 존재로 인해 도시가 ‘성장’ 지향을 내재하게 된다는 성장기제론(Growth machine), 그리고 성장기제론과 유사하지만 도시정부와 민간 자본 간의 연합을 중심으로 도시의 통치체제를 분석하는 도시체제론, 그리고 한국을 토건국가로 규정한 홍성태의 토건국가론 논의를 참고하며 이를 통해 부산의 난개발을 이끄는 것이 ‘토건주의적 성장연합’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저자가 제시한 ‘부산시 난개발의 구조와 동학’이라는 도식입니다. 정치계와 언론계는 제외되어 있는 점, 또 특정 개발사업에 국한되지 않은 추상화된 도식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사적 이익으로 점철된 도시정치에 저항하는 투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부산시 난개발의 구조와 동학 – 35쪽>

사실 성장기제론은 오래되고 유명한 이론이고, 도시정치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겐 도시 엘리트들의 네트워크와 행위를 분석해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쉽지도 않고 흔치도 않습니다. 저자는 엘시티와 북항 재개발 같은 사례에서 주요 플레이어들의 동기와 행위를 분석했고 그 내용이 이 책의 1부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엘시티 게이트’가 터지며 그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일각이 실제로 드러나기도 했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시 개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민과 연구자에게 단순히 이론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추적과 끈기에 관해 일깨움을 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사회학자였습니다. 그런 저자의 사회학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의리의 사회학’이라는 용어라고 합니다. 책의 해제에서 장세훈 교수가 말했듯이, 의리란 용어는 학술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앞서 이야기한 도시 엘리트 간의 부패로 가득 찬 그런 관계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故 윤일성 교수의 의리의 사회학에서 ‘의리’는 그런 전근대적인 사적 관계가 아니라 공적 의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풀어 설명하면, 의리는 시민공공성을 뜻하는 ‘정의’, 법제도와 윤리를 지키는 ‘도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의리의 사회학 다음 단계는 도시가 공공의 자산임을 분명히 하는 폭로와 실천의 사회학이라고 하니, 저자가 분석하고 고발한 부산 난개발 사례들이 더욱 결연하게 다가옵니다.

부산의 이야기로 시작했고, 부산의 난개발을 다룬 책을 소개해봤습니다. 하지만 비단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당장 서울에서는 서울혁신파크, 용산정비창, DDP 일대 정비사업, 잠실 마이스 단지 등 그야말로 ‘삐까뻔쩍’한 개발 계획과 조감도가 넘쳐납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거주하는 도시에도 ‘지역경제 활성화’ 같은 이름표를 붙인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일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도시에서 ‘삐까뻔쩍’한 프로젝트들이 벌어질 때, 혹은 삐까뻔쩍하지 않더라도 도시기본계획 등이 알게 모르게 수정되려 할 때, 우리는 저자가 보여줬던 비판적 감각을 예민하게 발동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를 위한 높이 규제 완화일까?’, ‘누구를 위한 용도변경일까?’, ‘누가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일까?’, ‘초고층의 그것은 누가 누리는 조망일까?’, 그리고 ‘이 개발의 뒤에는 어떤 동기와 이익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을까?’. 그런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말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황금도시-장소의 정치경제학(2013). John R. Logan, Harvey Molotch(김준우 옮김). 전남대학교출판부
*성장기제론을 제시한 존 로건, 하비 몰로치의 Urban Fortuens 번역서입니다.

Challenging the growth machine(1996). Babara Ferman. University press of Kansas

The City Builders(2001). Susan S. Fainstein. University press of Kansas 

누구를 위한 높이인가(2017). 박현찬, 정상혁. 서울연구원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기사 : 26

댓글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