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답 부동산 문제,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 – 『땅과 집값의 경제학 』

땅이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여러 세기가 걸렸다. 토지경제에 대한 새로운 개입 역시 추동력을 얻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체계가 필요하다. (중략) 역사에 비춰보면 여러 가지 소유형태와 지대 및 땅의 문제를 다루는 다양한 수단들은 공존할 수 있고 또 공존해야만 한다. -287쪽

100억, 55억, 31억… 무슨 금액일까요? 프로야구 선수들의 FA 계약 금액이 아닙니다. 아파트 실거래 가격 이야기입니다. 올해 들어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54㎡는 100억, 반포 원베일리 전용 84㎡는 55억에 거래되었었죠. 2월 한 달 간 서초구의 국평 아파트(전용 84㎡ 내외) 평균 거래 가격은 31억이었습니다. 특히 2월 중순, 잠실· 삼성· 대치· 청담동 일대를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에서 해제한 서울시의 결정은 서울 집값을 어마어마하게 자극했죠. 그리고 결국 오늘(3월 19일), 토허제 해제 한 달여 만에 강남, 서초, 송파, 용산구 소재 아파트를 다시 토허제 대상으로 하겠다 발표하는 촌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이버 머니로도 구경하기 어려운 금액으로 누군가 집을 사고팔고 있다는 것도, 관료집단이 그저 책상에 앉아 딸깍 정책을 바꿔준 덕분에 누군가 보름 만에 수십억을 벌었다는 것도, 그리고 이제 와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토허제를 재지정하는 것도 모두 실소를 자아냅니다.

다들 “끝났다”고 했던 부동산 시장을 다시 비트코인처럼 널뛰기를 하게 만든 정책의 동학은 무엇일까요? 왜 인구는 줄어드는 데 특정 지역의 집값은 계속 오르는 걸까요? 왜 한 쪽에서는 이른바 ‘국민’ 평형이 수십억에 거래되는데 다른 쪽에서는 전세 사기와 비적정 주거로 고통받으며 국민으로서의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걸까요? 무엇보다, 주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고 다들 말하면서도, 왜 대표적인 ‘투자 상품’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오늘 소개할 책은 『땅과 집값의 경제학』입니다. 영국의 경제 정책 연구자, 주거문제 활동가인 조시 라이언-콜린스, 토비 로이드, 로리 맥팔렌이 함께 집필한 이 책은 땅이 언제부터 개인의 ‘재산’으로 여겨졌고, 현대 부동산 시장의 구조와 금융화된 시스템이 어떻게 땅과 집을 ‘투기적 자산’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불평등을 강화하는지 이야기합니다.

땅을 사세요. 땅은 더 이상 새로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11쪽

마크 트웨인의 이 유명한 말은 부동산 시장이 왜 다른 자산과 다른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경제 이론에서는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안정되거나 하락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땅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그런 땅이 자본주의 경제에서 단순한 생산요소 중 하나가 아니라 고정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특수성을 가진 자산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런 땅의 특수성에 더해, 땅을 불평등의 원인이자 강화 요소로 만드는 중요 개념인 지대(rent)와 금융화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책의 중반부는 경제학과 정부 정책이 지대 문제를 어떻게 다뤄왔는지에 관한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대는 희소한 생산요소(이를테면 땅)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얻게 되는 불로소득을 의미합니다. 이런 지대는 인간의 생산활동에 기여하지 않기 때문에 물가상승이나 중위소득과 보조를 맞춰 움직이지도 않고, 생산에 재투자되지도 않습니다.

이 책이 중요하게 지적하는 문제이면서, 독자 입장에서 가장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주택의 금융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금융화란, “금융시장, 금융동기, 금융제도, 금융 엘리트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어 국가, 경제, 사회의 새로운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하고, 주택의 금융화는 주택이 생활 공간이 아니라 자본이득을 목적으로 보유, 거래되는 걸 의미합니다.1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설명이지만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 중후반 이후 은행이 기업 대상 대출이 아니라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확대하면서 주택 가격이 소득 상승보다 빠르게 올랐고, 높아진 주택 가격으로 가계 부채가 증가하는 악순환이 만들어졌습니다. 저금리와 금융 규제 완화는 부동산 시장을 더욱 투기적으로 만들었고, 주택담보대출 증가가 집값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구조를 강화해 온 것이죠. 이 과정에서 집값 거품이 발생하고,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도 정책적 대응은 대체로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 가격 상승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금융화된 주택 시장은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주택 소유 여부가 자산 격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요점입니다. 즉, 주택의 금융화는 단지 ‘금융화’되었다는 그 사실이 아니라 금융화로 인해 필연적으로 불평등이 재생산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은행 입장에서 환영하는 담보물이 된 주택, 그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더 많은 지대를 노리는 주택 소유자들, 그 여파로 계속 상승하는 주택 가격, 그리고 그 가격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 비극에 관해 저자는 다양한 데이터와 사례를 가져와 설명합니다. “그 때 내가 강남 과수원 땅만 안 팔았어도”로 시작하는 80년대 이후 한국 부동산 상황을 떠올려보면, 주택담보대출에 더해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를 가진 한국은 자산 불평등까지 ‘압축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은 정말 어렵다고들 하죠. 평등을 강화하려는 정책임에도 의도와 다른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집을 시장에서 구출하려는 시도는 소유자 집단에 의해 저지되거나 왜곡되기 십상입니다.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주택 금융화의 고리를 끊어내는 시도도 마찬가지의 어려움을 마주할 것입니다. 저자 역시 신통한 ‘한 방’은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이런저런 실험을 거친 정책 대안 몇가지를 제시합니다. 대안적인 주택 모델을 고민할 때 나올법한 대부분의 도구들이 등장합니다. 공동체토지신탁(CLT) 등 비시장적인 소유 방식 다양화, 대출 규제나 공공 금융 도입을 통한 금융 개혁, 공공임대 주택 공급 확대, 토지가치세 도입 등입니다(각각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 소개를 핑계 삼아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을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급진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며, 또 누군가는 미세조정이고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상반된 평을 내릴 수도 있겠습니다. 지면 상의 어려움이지만, 이 책은 주택담보대출 외의 건설, 정비사업 자금 등 세부적인 부동산 금융까지 깊이 들어가지 않고, 지역 간 불균형, 고령화, 연금 제도 등 부동산 정책을 고민할 때 다뤄야 할 다른 부문을 함께 다루지 않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이 놓치고 있는 땅의 특수성과 사유재산화 과정, 대안적인 부동산 정책의 선결과제인 금융화 문제를 이해하고자 할 때 먼저 꺼내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저자가 제안하는 정책들을 비롯하여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적 구상들의 공통적인 전제이자 목표는 개인이 땅을 독점 소유한다는 개념에 대한 재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땅을 사고팔 수 있고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상품’처럼 여기는 데 익숙합니다. 가끔은 익숙함을 넘어 그 명제를 신성시하는 장면도 목격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요? 땅은 내돈내산 아이폰과 같은 상품도 아니고, 땅을 독점 소유한다는 생각은 천부인권마냥 당연한 개념도 아닙니다. 오늘 소개한 책의 원제는 <Rethinking the Economics of Land and Housing>, 직역하자면 “땅과 주택의 경제학을 다시 생각하기”입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통념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답 없는 부동산 문제의 해답을 모색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1. 주택의 금융화 동학에 관해서는 책 184쪽 또는 신경제재단의 아티클을 통해 더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땅과 집값의 경제학 – 10점
조시 라이언-콜린스.토비 로이드.로리 맥팔렌 지음, 김아영 옮김/사이

썸네일 사진: Unsplash의WooSang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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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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