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금융’은 가능할까? – 『자본의 바깥』책 소개

“당신의 주거래 은행은 어디인가요?”

살다 보면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취업 직후에, 대출이 필요할 때, 심지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무슨 은행’을 쓰는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그럼, 각자 주거래 은행을 정하게 된 계기는 뭘까? 집 주변에 지점이 있어서, 망할 것 같지 않은 이미지라서, 학생증과 연계된 은행이어서, ‘나라사랑카드’를 쓰다 보니, 첫 직장에서 권장한 은행이라서.
학생증에 시중 은행 계좌가 연결되는 것이 너무 당연해진 것처럼, 금융은 이미 정해진 삶의 밑그림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밑그림들은 애시당초 문제로 여겨지지 않거나, 문제로 여기더라도 너무나 거대한 것이어서 손 댈 수 없는 영역이 되곤 한다.

『자본의 바깥』(김지음, 빈고 지음)은 ‘커먼즈은행 빈고’의 경험을 통해, 개인-사회-국가를 자본주의적으로 묶어주는 핵심 매개체 ‘금융’을 탈자본화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다. 끊임없는 자본의 투입과 축적으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이윤 발생의 핵심 요소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인 동시에, 금융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투자자가 된다. 달리 말하면 은행을 통해 모든 사회구성원은 자본주의라는 한 배에 타게 된다. 배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임금노동과 금융 생활 자체를 폐기하고 독자적으로 살아가면 되겠지만, 그런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원과 관계망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빈고는 ‘금융 생활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금융 생활을 만들어나가는 시도다.

책은 당연히 빈고가 만들어진 과정과 작동하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특징이자 미덕은, 빈고의 탄생과 운영 과정에서 고민했던 점들을 ‘이론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별도 정리 해두었다는 점이다. 각각의 챕터는 [생활]과 [탐구]로 구성되는데, [생활]은 빈집과 빈고의 경험을, [탐구]는 그 경험에서 고민했던 이론적인 내용들을 소개하는 식이다. [생활] 파트가 대안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가능성과 영감을 준다면, [탐구] 파트는 보다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대안 사회 구성의 힌트를 고민할 수 있게 해준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1부는 친구들과의 동거를 넘어 손님을 환대할 수 있는 공동체를 지향하며 출발한 해방촌 ‘빈집’의 탄생을 소개한다. 이어서 2부에서는 빈집이 빈마을로 커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빈집의 경험과 연결되는 [탐구] 파트에서 주거와 자본수익의 관계부터 공동체의 규모나 탈자본 구상 속 ‘노동자’의 의미를 다룬다.

3부부터 커먼즈은행 빈고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은 빈집의 보증금 운용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해 커먼즈 금융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 전환 과정 자체가 마치 작은 은행의 시작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물론, 빈고는 시중 자본 은행과는 다르다. 3부부터는 그런 빈고의 작동 원리부터 출자금, 대출, 거주가 어떻게 커먼즈의 확장으로 이어지는지 구체적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핵심은 ‘자본이익'(이자)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사양한 자본이익은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쓰일 수 있다.
이어지는 [탐구] 파트는 가라타니 고진의 교환양식론에서 출발하여 자본주의 금융과 커먼즈 금융의 차이로 확장되는 논리를 다룬다. 다소 어렵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다가도 순차적으로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저자들의 경로를 따라 걷다보면 탈자본 대안금융에 대한 시야가 조금은 트이는 부분이었다.

모든 내용을 소개할 순 없지만, 이 책은 전반적으로 하나의 완결된 모델이나 지향점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금융을 통해 대안적인 삶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시도들,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풀기 위한 이론적 사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더 큰 규모의 대안금융은 어떤 모습일까’, ‘이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와 같이 이어지는 물음들에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혹자는, 결국 더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 구조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실험 아니냐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안 금융에 관한 만능 열쇠라며 성과를 내밀기보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고민을 이론적, 추상적 수준으로 한 번 더 옮겨쓰는 작업을 통해 이어서 고민할 사람을 초대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빈고의 여정을 담는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빈고 밖의 대안 금융, 커먼즈에 관해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빈고의 이야기가, 저자들이 에필로그에 밝혔듯이,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척하는 ‘연극’일 수 있지만, 다음 연기자가 계속 등장하는 무대를 마련한 것이라면 그걸 무의미하다 할 수 있을까.

작년까지 코인의 시대였다면 올해는 주식의 시대로 느껴진다. 코인과 주식을 사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엄청난 투사라서 ‘투자자’가 될까? 아닐 것이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가 대단한 자본주의 지지자라서 자본의 은행과 거래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사회, 특히 금융은 시민을 ‘투자자’의 위치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은행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가 아니라 ‘시민을 무엇으로 호명할 것인가(혹은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에 닿아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질문을 일상으로 끌어내려 실천으로 옮겼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함께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드린다.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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