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낙수(落水)]는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온라인 대화모임입니다. 아래는 2월 3일(화) 진행한 모임의 기록이며, 편집자가 재구성한 것으로서 발언자의 취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트럼프식 ‘미국’의 균열
ICE(이민세관단속국)에 대한 시민 저항은 전국적인 반트럼프 정서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공화당은 보수 강세 지역인 텍사스 선거에서 패배했고, 트럼프 진영 내부의 균열 징조도 포착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이른바 트럼프식 정치는 미국 내는 물론 유럽, 한국에서의 혼란을 계속 야기 중입니다. 이번 낙수에서는 개별 사안에 집중하기보다는 트럼프식 정치와 미국의 균열 양상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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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낙수에서도 나눈 대화지만, 트럼프식 정치에 유럽이나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윤리적 우위 또는 헤게모니 구조에 균열이 있을 수 있다. 특히 EU를 국제정치 맥락에서 자유주의 질서의 얼마 남지 않은 유산이라고 본다면, 지금 트럼프와 서유럽의 대립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와 트럼프식 극단적 현실주의 간 싸움으로 볼 수도 있다.
- 윤리적 측면에서의 정치 선진국 포지션 싸움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그런 정치블럭이 없어서 대응이 제각각인 것 같다.
-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일본 주도로 아시아통화기금(AMF)을 만들려고 했지만 미국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 트럼프의 정치를 단순히 ‘광인의 정치’로만 볼 건 아니다. 사실 영미식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가 발흥한 80년대에 이미 그 전성기가 끝났고, 아시아가 그 다음 헤게모니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 헤게모니는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있다. 앞에 언급한 AMF 출현을 막았던 것도 그렇고, 원유 시장 거래 화폐가 유로화로 대체되는 흐름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그렇고 자본력과 군사력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로서 헤게모니 상실을 막아내고 있는 것 같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본인 스스로와 본인의 정치를 희화화하는 트럼프로 인해 지금 트럼프가 하는 일들이 진지하게 해석되기 보다 예외적 상황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미국의 헤게모니 방어라는 맥락에서도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 [장기 20세기]로 대표되는 세계체제론자들의 분석에서도 미국의 헤게모니가 무너지고 아시아 헤게모니가 등장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았는데, 그게 미국의 방어로 ‘유예’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헤게모니 이동에 필요한 근본 변화가 오기엔 이른 것인지 궁금하다.
- 이런 대화를 나누다보면 “‘미국’이, ‘중국’이…” 같은 발언을 자주 하는데 여기서 ‘미국’이라 함은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것인가? 트럼프 정부를 의미하는 것인지.
- 지금 헤게모니와 관련된 대화, 세계체제론적 맥락에서의 ‘미국’은 미국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약해졌다고 한다면, 미국 자본주의를 대체할 다음이 출현해야 하는데 20세기 후반 학자들은 그런 맥락에서 일본이나 중국을 주목한 것.
- 헤게모니란 게 결국 지배적 사고이기 때문에 가령 미국 자본주의라는 강한 헤게모니가 작동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말그대로 미국 자본주의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클린턴이든 오바마든 부시든 중요하지 않다. 체제전환이라고 하면 결국 거기에 균열을 내거나, 균열을 파고들어야 하는 일인 것이고.
- 그런데 ‘한국’은 ‘한국 자본주의’라 부를 만한 특징적인 형태나 세력이 없는 것 같다.
- 국가나 공기업이 핵심 행위자로 개발, 발전을 주도해버리는 양상은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LH에서 농지 등 싼 땅을 매입해서 택지로 바꿔서 민간기업에 파는 방식, 노태우 200만호 공급이나 대장동 개발 모두 비슷한 구조다. 재건축 재개발도 결국 국가 입장에서 ‘손 안대고 코풀기’라는 측면에선 동일하다. 가난한 국가 입장에서 국가재정 적자 없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
- 계속 언급되고 있는 장기 20세기와 같은 분석은 그 단위 기간이 수 백년이다. 인간에게는 무의미하다 싶을 정도로 긴 기간일 수 있다. 그래서 조금 더 축소해서 중단기적인 정책 담론 측면에서는 오버톤 윈도우라는 개념이 있었다. 지금 지배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아무튼 간단히 말하면 이 개념은 특정 시기에 그 사회의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만이 사회의 주된 논의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안에서 창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창 밖에는 엄청 많은 이야기 주제들이 있지만 말이다. 헤게모니적 층위와는 달리, 단기적으로 그 창문을 어떻게 옮길 것이냐, 창문 안의 주제로 어떻게 진입할 것이냐 등 보다 기술적인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 헤게모니 분석처럼 총체적으로 보는 관점과 단기적, 전술적으로 읽는 관점 모두 각각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봉쇄조항 폐지와 진보정치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득표율 3%를 넘긴 정당들을 대상으로만 의석을 배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조항, 소위 3% 봉쇄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낙수에서는 해당 결정 자체에 관해 환영할 결정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었기에, 봉쇄조항 소멸 이후 진보정치에 대한 대화가 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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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하고 환영할 결정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 같다. 전광훈 정당 등 극우세력의 원내입성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는데, 그게 사회의 모습이라면 받아들여야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제도 내에서 소화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 단, 봉쇄조항과 별개로 현재 비례의석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자연적인 봉쇄선이 2%대에서는 있을 듯 하다. 그래서 봉쇄조항 폐지의 효과가 아주 드라마틱하지는 않을 수 있다.
-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진보정치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지?
- 이미 녹색정의당이란 형태로 불완전한 형태지만 연합 시도를 해봤고 그 결과 수치가 2%대라는 걸 확인했다. 이 상황에 조금 더 확장해서 몇몇 당이 더 붙는다고 해서 그게 드라마틱한 결과를 낳는다고 보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각 정당의 지지율을 더하는 식의 산술적 연합이 아니라 새판짜기의 각오가 필요하다.
- 사실 2020년에 비례위성정당이라는 이상한 판이 깔렸을 때 진보정당들이 연합했다면 그게 가장 좋았을 타이밍이었다고 본다. 사실, 진보정치는 정당과 관련한 각종 자유를 지향해왔는데 위성 정당 사태에서 정당 간 연합이 합법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게 아니라 위성정당이라는 행태 자체 비판에 몰입하다보니 전략전술적으로는 어려운 위치에 처한 부분도 있다.
- 하지만 지금 늦었다고 아무 것도 안하는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새로 기획을 해봐야 한다. 산술적 연합이 아니라 파격이 필요하다. 정치적 파격은 보통 뭔가와 절연하거나, 뭔가와 합치거나 두 가지 중 하나다. 근데 보통 뭔가와 합치는 것이 역사적으로 힘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가령 스웨덴 사민당은 농민당과 타협을 했고 선거 승리로 이어졌다. 물론 원칙 지향적인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한국에서 그렇게 합쳐볼 만한 정치세력, 주체가 있을까?
- 자영업자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세입자, 대중교통 이용자, ‘도서관 정당’ 이야기도 있다. 정의당에서 과거 전세사기 피해자 조직을 한 것도 그런 느낌이다.
- 가령, 시애틀 시장 당선된 케이티 윌슨도 대중교통 이용자 조직 리더였다. 한국에서도 요금인상 대응 국면에서 일련의 성과가 있었지만, 사람들 입장에서 지하철이나 버스요금 1~200원 인상되는 여부가 생존 자체에 엄청난 영향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정치세력화하긴 쉽지 않다. 그래서 기존 진보정당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 각 정당들의 지향에 관해 계급적으로 다른 이해가 있는 조직을 연결해야 한단 의미다.
-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을 조직하기’가 결국 우리에겐 숙명 같은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