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성화’의 오해, 돈보다 관계의 문제
: 사람을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사람이 남는 구조
한 해 만에 성공한 활성화
“올해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결과보고회에서 자주 듣는 문장입니다. 슬라이드에는 전년 대비 방문객 수가 30% 증가했다는 그래프가 등장하고, 언론 보도 건수와 SNS 해시태그 수가 차례로 나열됩니다. 신규 입점 브랜드가 몇 곳이고, 청년 창업팀이 몇 팀 유치되었으며, 주민 만족도는 몇 점인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사업은 분명히 성공입니다.
발표 자료를 보면 예산은 집행되었고, 행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으며, 사진 속 골목은 붐빕니다. 지역으로 큰 예산이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주민과 상인들도 그 순간에는 기대를 품습니다. “이제 우리 동네도 달라지겠구나.”
하지만 몇 달 뒤 다시 그 지역을 찾아가면, 보고서와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곤 합니다. 방문객은 여전히 많지만 기존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신규 입점했던 매장 몇 곳은 이미 문을 닫았고, 상인회 회의는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사업이 끝나자마자 연락이 끊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사업이 무엇을 남겼는지, 그 이후에도 무엇이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업은 정말 성공한 것일까요? 활성화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활성화를 가로막는 세 가지 착각
상권 활성화나 도시재생 사업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세 가지 착각에 기반합니다. 이 착각들은 활성화를 단순한 숫자들의 증가로 정의하는 순간, 우리가 구조를 놓치게 만듭니다.
첫째는 유동 인구의 함정입니다.
공공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지표는 방문객 수입니다. 사업비를 투입해 축제와 프로그램을 만들면 사람은 모입니다. 지역의 역사와 자연 자원을 엮어 스토리를 만들고, 무대를 세우고, 홍보를 하면 일정한 규모의 인파는 형성됩니다.
어떤 골목이 SNS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주말마다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줄을 서고, 몇몇 카페는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언론은 이곳을 ‘핫플레이스’로 소개했고, 지자체는 성공 사례로 홍보했습니다.
그러나 그 골목에서 오래 가게를 운영해온 상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말엔 사람이 엄청 많아요. 그런데 우리 가게는 그냥 지나가요.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이니까요.”
그 방문이 곧 매출로 이어지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지역 상인이 판매하는 상품과 축제의 콘텐츠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 방문객은 사진을 찍고 경험을 소비한 뒤 떠납니다. 더 마음에 드는 카페나 음식점을 찾아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한 지역을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방문객이 늘어났지만 매출은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임대료만 오르면서 오래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새로 들어온 가게들은 유행을 따라 빠르게 바뀌었고, 동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방문객 수는 증가했지만, 지역을 지탱하던 관계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뜨내기 손님 1만 명보다 매일 인사를 나누는 단골 10명이 지역의 자생력을 만든다는 사실은 종종 무시됩니다.
둘째는 청년과 ‘힙함’의 오해입니다.
청년 창업 지원은 많은 지역 사업에서 중요한 전략으로 채택됩니다. 공공 주도로 조성된 청년몰이나 로컬 크리에이터 거점 공간에는 감면된 임대료와 창업 지원금이 제공됩니다. 보고서에는 입주한 청년 창업팀의 수와 그들이 기획한 프로그램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됩니다.
정책은 세련된 청년 창업가들을 ‘이식’하면 지역이 바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멋진 공간은 조용해지고, 청년 창업 지원이 끝난 매장들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처음 몇 주간은 호기심에 찾아온 사람들로 붐볐지만, 이내 일상적으로 찾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공간을 채울 프로그램은 계획되어 있지 않거나, 있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기엔 문턱이 높습니다.
1~3년의 지원 기간이 끝나면, 절반 이상의 매장이 철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청년 창업자들도 결국 지속 가능한 장사를 해야 하는데, 지원이 끝난 뒤의 구조는 설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패턴은 반복됩니다. 1년 차에는 호기심 방문이 이어지고 언론 보도가 집중됩니다. 2년 차에는 방문객이 감소하고, 지원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매장의 철수가 시작됩니다. 3년 차가 되면 공실이 늘어나고, 공간은 다시 새로운 사업을 기다리는 상태가 됩니다. 문제는 창업자의 역량이 아니라, 지원 종료 이후를 전제로 설계되지 않은 구조에 있습니다.기존 상권과의 연결도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청년몰은 청년몰대로, 기존 상권은 기존 상권대로 따로 움직입니다.
기존 주민·상인과의 관계 설계가 빠진 청년 몰이나 거점 시설은 지역 안에서 외로운 ‘섬’이 되곤 합니다. 동네 주민들은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고, 청년들은 지원금이 끊기면 미련 없이 떠날 준비를 합니다.
셋째는 하드웨어 맹신입니다.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통해 각 지역에는 앵커 시설이라 불리는 복합문화공간들이 들어섰습니다. 수십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지어진 공간은 외관도 세련되고, 내부 시설도 훌륭합니다. 준공식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언론도 이를 긍정적으로 보도합니다.
그러나 수십 억을 들여 번듯한 앵커 시설을 지으면 커뮤니티가 생겨날 것이라 기대하지만, 공간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년이면 충분한 반면, 그 공간을 채울 관계를 만드는 데는 5년, 10년이 걸립니다. 우리는 항상 1년짜리 공간만 만들고, 그 이후를 준비하지 않습니다.


브랜드처럼 운영되지 않는 지역
저는 지역과 상권을 하나의 브랜드 운영 과정에 비유합니다. 어떤 브랜드가 한 해에 히트 상품을 만들어 큰 반응을 얻었다고 해서, 같은 전략을 반복하지는 않습니다. 매년, 매일, 더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무엇을 팔 것인지, 어떻게 확장할 것인지, 고객이 왜 반응했는지를 분석합니다.
하지만 많은 지역 사업은 공공 프로젝트가 끝나는 순간 동력을 잃습니다. 주민과 상인이 그것을 ‘우리의 사업’이 아니라 ‘공공이 도와주는 행사’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내년 사업비는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이 반복되는 구조라면, 활성화는 자생력이 아니라 보조금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업비가 끊기는 순간 회의는 멈추고, 모임은 흩어집니다.
활성화라는 만능어의 위험
‘활성화’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상권 침체, 인구 감소, 공동체 붕괴, 공실 증가, 청년 유출, 갈등 문제까지 서로 다른 원인과 맥락을 가진 현상들이 하나의 목표 아래 묶입니다.
마치 하나의 사업으로 지역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활성화는 목적이 아니라 상태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활성화하려는 것인지, 매출인지 관계인지, 인구 유입인지 자생력인지가 먼저 정의되어야 합니다. 문제 설정이 명확하지 않으면 사업은 과도하게 많은 과업을 떠안게 되고, 결과적으로 어느 하나도 깊이 있게 해결하지 못합니다.
지역의 변화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갈등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 마케팅을 시도하고,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브랜드를 만들려 하면, 구조는 버티지 못합니다. 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우는 순간, 우리는 종종 구체적 문제를 흐릿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사업은 슈퍼맨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지역은 영웅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움직입니다.
활성화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명확한 문제 정의와 단계적 설계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활성화는 관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상태
그렇다면 진짜 활성화는 무엇일까요? 방문객 수로 증명되지 않고, 신규 브랜드나 청년 창업팀의 개수로도 측정되지 않으며, 투입된 예산 규모로도 설명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활성화를 판단해야 할까요?
저는 활성화를 ‘사람이 많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이 연결되기 시작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활성화란 지역 주체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결망이 형성된 상태입니다.
많은 사업이 예산 규모로 평가됩니다. 몇십 억 원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은 사업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지표가 됩니다. 그러나 돈이 투입되었다고 해서 지역이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권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네트워크입니다. 사람과 사람, 상인과 주민, 상인과 행정, 상인과 상인 사이의 연결망입니다. 이 네트워크가 작동하지 않으면 돈은 단기 이벤트를 만들 뿐 구조를 만들지 못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예산 규모는 작았지만, 상인들이 스스로 회의를 이어가며 다음 단계를 논의했습니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큰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사업이 끝나자마자 모임이 사라지고 연락도 끊겼습니다. 활성화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돈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특히 단년도 집행 구조는 관계 형성과 잘 맞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공공사업은 1년 안에 집행률을 맞춰야 하고, 연말로 갈수록 예산 소진 압박은 더 커집니다. 그 결과 프로그램은 하반기에 몰리고, 사업 종료 이후를 위한 설계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는 3년, 5년의 시간이 필요한데 예산은 12개월 안에 소진되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속도와 집행률을 관계보다 우선하게 됩니다. 예산은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그 기회를 지속시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연결입니다. 돈은 마중물이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우리가 바꿔야 한다”는 감각을 남겨야 합니다. 일정 부분의 자부담과 책임을 포함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돈이 들어가야, 우리의 사업이 됩니다.


<서촌 상권활성화 사업 중에 진행되었던 “서촌담소” 프로그램, 큰 문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작은 대화를 통해 상인 간의 관계와 가능성이 남습니다. 사진=필자 제공>
관계가 남는 순간
어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목표 참여 인원은 50명이었는데, 실제로는 15명만 참여했습니다. 그 15명 중에는 오랫동안 서로 말을 섞지 않던 상인 두 명도 있었습니다. 첫 회의는 불만과 회의적인 발언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의 모임을 거치며 서로의 상황을 알게 되었고, 이후에는 공동 할인 행사와 간단한 홍보물을 함께 제작해보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참여 인원은 적었지만, 이후 사업이 시작될 때 이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습니다. 행정의 기준으로 보면 이 프로그램은 실패입니다. 참여율이 3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15명은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모임을 이어갔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으며, 다음 사업이 시작될 때 핵심 주체가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상인들을 설득해 공동 마케팅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첫해 효과는 미미했고, 참여율도 낮았습니다. 일부 상인들은 “이거 해봐야 소용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몇몇 상인들은 그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사업이 끝난 뒤에도 자체적으로 협의체를 만들어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 사례들은 숫자로 보면 실패입니다. 그러나 관계로 보면 성공입니다. 상인들이 서로의 이름을 알고, 작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함께 실험하는 순간.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고 말하는 장면. 이런 변화는 보고서의 숫자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후의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됩니다.
활성화는 사람이 많아지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이 연결되는 상태입니다. 관계가 쌓이면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생기면 자발성이 나타나며, 자발성이 지속을 만듭니다. 진짜 활성화 지표는 방문객 수가 아니라 ‘관계의 밀도’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의 밀도란 단순히 사람들이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감각을 뜻하지 않습니다. 상인 간 공동 기획이 몇 번 시도되었는지, 사업 종료 이후에도 자발적인 모임이 이어지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를 선택하는 구조가 남아 있는지와 같은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공동 마케팅을 한 차례라도 스스로 기획해보았는지, 누군가 빠졌을 때 “우리끼리라도 해보자”는 말이 나오는지, 이런 작은 시도들이 반복되는 상태가 곧 관계의 밀도입니다.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이 생겨도 대화가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행정의 지원이 멈춰도 “우리끼리라도 다음 주에 다시 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활성화는 “다음이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업이 끝나도 남는 것, 예산이 사라져도 이어지는 것, 숫자로 증명되지 않지만 현장에는 분명히 남는 것. 그것이 진짜 활성화입니다. 관계가 남으면 다음이 있습니다. 관계가 남지 않으면, 사업은 행사로 끝납니다.


<서촌담소를 통해 관계를 맺기 시작한 공방 상인들은 각자의 공예품들을 가지고 나와 작은 플리마켓을 열게되었습니다. 사진=필자 제공>
왜 정책은 숫자를 선호하는가
그렇다면 왜 정책은 계속해서 숫자를 요구하는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숫자는 평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만들고, 상부 보고와 예산 확보 논리로 활용되기 쉽습니다. 언론 대응에도 유리합니다. 방문객 수와 참여자 수는 표로 정리할 수 있지만, 신뢰와 연결은 같은 방식으로 정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계는 종종 ‘부록’이 되고, 숫자는 ‘본론’이 됩니다. 방문객 수, 참여자 수, 만족도 점수는 명확한 수치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 기록하기도 쉽고, 상부에 보고하기도 편합니다.
반면 관계는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신뢰가 쌓였다’는 것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다음을 상상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을 어떤 지표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평가 체계가 숫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활성화는 자연스럽게 숫자로 환원되고, 관계는 부록이 됩니다.
이 구조 안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은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오전에는 “집행률이 얼마나 되나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고, 오후에는 “이 사업이 왜 필요한가요?”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숫자를 채우는 일과 의미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문제는, 많은 사업이 대답하기 쉬운 질문에 맞춰 설계되면서 점점 본질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정책이 나빠서가 아니라, 정책이 현장의 시간과 언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정책의 언어에 ‘시간’과 ‘과정’을 담아야 합니다
활성화의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방문객 수가 아니라 ‘관계망이 형성되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단기 매출이 아니라 ‘3년 뒤에도 남아 있을 사람이 있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프로그램의 횟수가 아니라 ‘참여자들이 다음을 상상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사업 구조도 달라져야 합니다. 1년 짜리 사업으로는 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3년 뒤 사업이 끝나도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실패해도 다음이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관계는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시행착오를 통해 형성됩니다. 행정 역시 기다림을 배워야 합니다. 단년도의 성과가 사업의 성공 여부를 모두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지역과 상권은 더 긴 시간의 단위 위에서 움직입니다.
전문가의 역할 역시 달라져야 합니다. 결과물을 대신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의 아이디어가 나오도록 돕고 그것을 실행 가능한 구조로 다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하고 그 과정을 정책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성과지표도 방문객 수와 집행률만이 아니라, 사업 이후에도 이어진 모임과 협업의 횟수 같은 지표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마무리하며
도시는 정책만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정책은 중요한 도구이지만, 변화의 속도와 방향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과 감각에 의해 결정됩니다. 활성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지역을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관계만이 지역을 지속시킵니다.
우리가 지금 성과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성과가 현장에는 어떤 기억으로 남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커다란 예산과 건물이 들어설 때, 우리는 그만큼의 논의와 합의가 있었는지 묻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활성화는 사람이 몰리는 상태가 아니라, 사람이 남는 상태입니다. 빠른 성과보다 긴 호흡의 자생력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두가 인식해야 할 시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다면 관계를 중심에 둔 사업을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행정의 언어와 현장의 언어가 어떻게 다르고, 그 간극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공공에서 요구하는 ‘집행률, 참여자 수, 만족도’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신뢰, 시간, 여유’는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전혀 다른 의미로 작동하곤 합니다. 그 언어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지역 사업을 다르게 설계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행정이 말하는 ‘주민참여’와 현장이 경험하는 ‘주민참여’ 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