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낙수(落水)]는 정치사회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온라인 대화모임입니다. 아래는 3월 2일(월) 진행한 모임의 기록이며, 편집자가 재구성한 것으로서 발언자의 취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트럼프 이란 침공과 한국 사회
지난 토요일(2/28),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선제 공격을 가했고, 이란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뒤이어 이란이 주변국을 공격하고, 트럼프는 이란에 대한 추가 공격을 선언하는 등 전쟁은 확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낙수에서는 이번 전쟁과 한국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습니다.
관련기사: 트럼프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사망…이번 주 폭격 계속”/ 한겨레 / 2026.03.01
- 국제법 위반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한국 사회 반응을 보자면 국내 언론의 보도 방식은 아쉬움이 남는다.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번 모두 독재자 축출이란 측면만 부각해서 보도하는 언론사들이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전쟁 중계를 넘어 트럼프식 전쟁 정치를 총체적으로 분석, 해설해주는 언론을 찾기가 어려웠다.
- 트럼프라는 개인의 전쟁광적 면모보다 국제적인 에너지 패권 경쟁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 국가적 차원에서 주식에 투자하라고 종용하는 분위기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전쟁이 터졌을 때, 언론이나 커뮤니티에서 주식 전망, 수혜주 예측하는 글들을 자주 본다. 자산을 투자한 개인들을 욕할 부분은 분명 아니지만, 대다수 시민이 ‘투자자’의 정체성을 가질 때 개개인의 선의 여부와는 별개로 비인간적 면모가 드러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 주주의 윤리적 책임은 어디까지 일까. 가령 방산주를 산 주주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 주식은 기업 행위를 수백만개로 나눠 분산 투자한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책임 측면에서도 무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 비윤리적이라거나, 기후위기를 앞당기는 등 막아야 할 기업 행위는 존재한다. 몇몇 국가 펀드 차원에서는 비윤리적 투자를 제약하는 것처럼, 이른바 ‘주식 투자 사회’에서 어떤 윤리가 필요할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청소년 언론과 정치사회 운동
청소년 언론 ‘이음’이 정근식 교육감에 축사를 보냈는데, 해당 언론의 편집장은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운영위원이었습니다. 이에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연대 단위인 청소년녹색당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고,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근식 교육감은 성폭력 사건 공익제보자인 지혜복 교사 부당전보, 해임 조치의 책임자이자, 농성장 참여자를 폭력 연행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 인사에 축사를 보낸 것은 잘못이라는 의견,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일임에도 정당이 문제 삼는 것이 잘못이라는 의견이 모두 존재합니다. 선을 넘은 조롱과 비난도 있습니다. 낙수에서도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관련기사: “교육감 축사로 모든 것 부정당해” 어느 청소년 언론에서 벌어진 일 / 미디어오늘 / 2026.02.17
관련기사: 토끼풀코너:어른들은 화나면 논리오류를 즐겨찾음 / XSFM / 2026.02.26
- 정당이 혹은 우리 사회가 ‘언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한 고민이 들었다. 이번 사안만을 두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라 언젠가부터 언론은 당연히 특정 정치운동의 채널로서 이해되고 있다. 이른바 유튜버 권력들이 주도한 경향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치운동, 사회운동을 하듯이 언론도 언론 자유와 저널리즘 윤리, 퀄리티를 위한 또 다른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종속시키고, 종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 이 문제를 두고 청소년 언론 편집장에 대한 선을 넘은 비판, 낙인 찍기가 이어지는 걸 보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자칫 청소년을 미완적 존재로 본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사안은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의 학습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나.
- 정당이 언론에 토론을 제안한 것과 관련하여, 그 자체로 무조건 불가한 것이란 생각은 안든다. 같이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 수 있고, 언론도 비판이나 토론 제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맥락에 따라서 언론의 편집 방향에 개입하겠단 해석이 된다면 문제적이다.
- 언론을 시민사회단체로 여기는 게 아니라면 토론을 제안하는 건 이상한 부분이 있다.
- 운동과 언론의 경계, 정당 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의 경계 모두 흐릿해져 가는 시대적 배경도 생각해볼 만 하다.
- 출입 기관, 주 독자층 등 언론은 관계하는 주체들과 종종 긴장하는 위치에 선다. 그런 긴장을 컨트롤하는 것도 언론에게는 일상일 수 있겠다.
- 교육감 축사를 했다고 모든 걸 부정당했다는 기사 제목을 보면서, 언젠가부터 운동에서 하나의 행위만으로 당사자의 전체를 판단하는, 달리 말하자면 윤리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전인적인 인간상을 상정하는 경향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 오늘 대화도 조심스러움이 많이 느껴졌는데, 이렇게 운동 과정에 다양한 의견을 내는 것만 단편적으로 포착해 어떤 사람, 조직에 대한 총체적 규정을 내리는 경향을 알고 있기에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 언론도, 정당도 각자의 직업 윤리와 운동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변화가 많은 시대인만큼, 서로 대화도 필요하지만 각자 성찰도 필요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