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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가 일상 생활로 번지고 있죠. 이런 맥락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출퇴근 시간에 노인들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을 제한하는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주문했는데요. 여당은 곧바로 검토하겠단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가 취지였다고 하더라도, 공론장은 이미 대중교통 활성화나 자가용 이용 감축이 아니라, 노인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제한 여부로 좁혀진 것 같습니다. 그저 정치 진영에 따라 ‘일단 찬성’, ‘일단 반대’하고 보는 혼란한(?) 상황은 덤입니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실제 탑승 데이터와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노인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제한이 피크타임 혼잡도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며, 자가용 이용자의 통행 수단 전환 동기를 오인한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이밖에도 노인 지하철 무료 이용이 노인의 사회생활을 촉진하면서 3,600억 원 규모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죠. 이처럼 그 편익도 크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는 노인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제한 카드를, 정치권은 왜 매번 꺼내는 걸까요?
대중교통, 공공임대주택, 공공 의료 등 공적인 사회서비스는 대부분 한정된 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누군가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이용이 제한되는 특성을 갖습니다. 이런 공적 사회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에서 즉각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는 가장 쉬운 정치 전략은 서비스 이용자들 간 경합과 배제를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준석을 위시로 한 많은 정치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선택이기도 하죠. 반대로, 더 편한 대중교통, 더 많은 공공임대주택 등 서비스의 공급 측면을 강화하자거나, 기존 이용자 내부가 아니라 서비스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을 조정하자는 입장은 잘 주목 받지 못합니다.
매일 아침 지옥철 안에서 마주치는 다른 이용자가 없어진다는 상상은 직관적입니다. 심지어 ‘유료’, ‘무료’라는 명백한 기준으로 배제 대상을 구분할 수 있기에 합리화하기 쉽다는 점, 세대, 젠더, 인종 등 1차원적 편가르기가 횡행하는 정치 풍토의 영향도 있겠습니다. 반면, 고속도로도 아닌데 자가용 통행료를 낸다거나, 모두가 주 5일 8시에 출근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건 낯설죠. 노인 무료 승차가 불가능한 노선인 GTX-A 열차의 노약자석이 비어있는 사진을 공유하면서, 마치 노인 무료 이용 여부가 대중교통 이용률 문제의 핵심 키인 것마냥 다루는 소셜미디어와 커뮤니티 게시물들은 정치권에서 매번 이 문제를 호출하는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시 이 대통령 발언으로 돌아가봅시다. 대통령 발언의 취지는 ‘돈을 내지 않으면 이용을 제한해야 한다’가 아니라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을 늘려야 한다에 방점이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게 맞다면, 대통령이 던져야 할 화두는 노인 무료 이용 제한이 아니라 대중교통의 더 촘촘한 배차, 더 많은 대중교통 할인이어야 하고, 자가용에 대한 일시적 혼잡통행료나 더 강력한 ‘N부제’ 시행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가용 이용이 불편한 사회를 만들고, 서울 집중을 줄이고, 재택 근무와 원격 근무를 적극 활성화하는 등 ‘이동’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 또 다시 정치권이 호출한 건 노인 무료 승차였습니다. 다소 즉흥적으로 보이는 발언을 던진 대통령에게도, ‘대중교통 이용률 확대’라는 발언의 취지는 싹둑 자르고 노인 이용 제한을 검토하겠다며 단편적으로 반응하는 여당에게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석유 이후’의 세계를 종종 상상해봅니다. ‘이동’을 총체적 학문으로 끌어올린 존 어리는, 말년에 출판한 팜플렛 『석유 이후』에서 석유 고갈 이후의 세계를 ① 새로운 에너지원(수소)으로 석유를 대체한 사회, ② 만남과 생산을 디지털화한 사회, ③ 더 지역화된 삶을 사는 탈 자동차 사회, ④ 영화 매드맥스처럼 소수의 군벌이 지배하는 사회까지, 네 가지 시나리오로 상상합니다. 어리는 ‘노답’이라고 결론을 내리면서도, 다가올 파국에 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석유 이후’의 사회가 매드맥스 풍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준비는 무엇일까요?
대통령 지지율이 높습니다. 대통령 발언 하나에 공론장의 주제와 크기, 방향이 휙휙 바뀝니다. 이번 대통령의 발언이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 대중교통 이용률을 확대하는, 더 나아가 고갈이든 전쟁이든 늘 불안정했던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가는, 석유 이후의 사회를 내다보는 토론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길 바라봅니다.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노인에게 얼마를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석유와 자동차에 기대어 온 사회를 그대로 둘 것인가’여야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