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장래희망이 정당 활동가였을까
장래희망이 ‘정당 활동가’, ‘당직자’인 사람이 있을까? 아마 많지 않을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정당 활동가를 내 직업 경로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의 나는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고 당에 대한 소속감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당 운동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걸 직업으로 삼는 게 어떤 것인지 그때 미리 알았다면 어쩌면 내 장래희망이 정당 활동가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현실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정당 소속감도 없었던 사람이 정당 활동가가 되는 데에는 당연하지만 계기가 필요하다.
내가 직업으로서 정당과 엮인 건 선거캠프에 함께 했던 2014년부터였다. 당비만 내던 당원이었던 나는, “이번 선거 같이 해볼래?”라는 제안에 “해보자”라고 답했다. 거창한 사명이나 무협지 같은 만남은 없었다. 함께 하자는 제안을 던진 후보에 대한 신뢰, 마침 풀타임 노동이 가능했던 내 상황이 적절히 맞아 떨어진 것에 가깝다. 2014년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내 인생 경로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후보를 만났고 좋은 캠프원들과 일한 덕분에 정당 운동, 정치 실무에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고, 정당 활동가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선거캠프는 그렇게 정당 활동가를 키워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글에서는 선거캠프에 함께 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n가지 방법
“선거캠프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물론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다.)
2014년 이후 여러 번의 공직선거를 지나왔지만 그 중 정말 ‘캠프’라 할 수 있는, 즉 지역구 후보자의 캠프에서의 경험으로 한정해서 돌이켜봤다. 2014년에는 당시 반상근으로 몸담고 있던 단체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출마하면서 캠프 결합을 제안했었고, 그 외에는 모두 선거를 앞두고 당으로부터 제안이 오거나, 이미 당직을 맡고 있던 가운데 치러진 선거 당시 일종의 파견을 나간 경우들이었다.
정당마다 다르고, 같은 정당이라도 캠프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캠프라는 것의 채용 구조는 그런 것 같다. 이른바 공채라는 절차를 본 적은 없고, 다양한 경로에서 알음알음 캠프로 모여든다. 캠프 노동이라는 게 길면 6개월, 짧으면 1~3개월 가량의 임시적 노동이기도 하고, 특히 그나마 길게 결합하는 경우는 선거의 전략 수립부터 함께 하는 역할이라서 당이나 후보와의 신뢰 수준이 높아야 한다. 공개모집이 아니라 알음알음 사람을 구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알음알음에도 주된 경로들은 있다. 2014년의 나처럼 후보와 같은 조직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결합하기도 하고, 당과 무관한 후보의 인적 네트워크 안에서 만나기도 한다. 또는 그 당의 지역위원회(당원협의회)의 활동을 활발히 하다보면 제안을 받기도 하고, 이미 당에서 당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결합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캠프는 이 경로들 안에서 구성되었다. 그 밖에도, 특히 기초의회 선거처럼 규모가 작은 선거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경우도 자주 목격하고 지역의 마당발 인사나 유명한 전략가를 모셔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진보정당 캠프의 경우 지역 내 진보 운동단체 활동가들이 결합해주면 참 좋겠지만, 소속 단체가 이른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이유를 내세운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캠프 구성에 정답은 있을까
지금 당장 선거캠프의 보편적 조직도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릴 수 있다. 선거라는 과정 속에는 기획과 홍보, 선거사무와 회계, 유권자 조직과 후보 수행 등 일반적인 직무들이 있기도 하거니와 후보자, 선거사무장, 회계책임자 그리고 선거사무원이라는 공직선거법상 규정된 직책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캠프의 사정을 따라가다보면 그 세부내용에는 정답이라 부를 만한 게 사라진다.
캠프의 사정을 보자면, 국회의원, 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 어떤 규모의 선거인지, 가용 예산은 얼마인지, 소속 정당에서의 인적 지원은 어느 수준인지, 캠프의 선거 전략이 무엇인지에 따라 캠프의 조직도는 달라진다. 캠프의 사정을 반영한 구상을 마쳤더라도 잠재적 캠프 구성원 각자의 사정에 따라 조직도는 한 번 더 틀어진다. 풀타임 노동이 가능한지, 소속된 회사나 단체가 법적으로나 내규 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그 구성원의 정치 활동을 규제하는지, 하다못해 캠프에 이미 합류한 다른 누군가와 불편한 관계에 있진 않은지 등 변수는 많다. 결국, 담대한 계획을 세운 것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캠프는 선거사무장과 회계책임자라는 필수적인 동료 두 명을 채우는 일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첫 선거캠프부터 선거사무장이라는 부담스러운 직함을 달았다. 당초 계획은 지역을 잘 알면서 후보와의 신뢰가 있는 지역 주민을 사무장으로 모시는 것이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무산되었고, 결국 풀타임 노동이 가능했던 내가 맡게 된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선거를 경험해 본 적도 없을 뿐더러 풀타임 직장을 가져본 적도 없고, 그 동네에 살지도 않는 사람을 사무장으로 두고 선거를 무사히 치러낸 후보와 회계책임자 그리고 다른 캠프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모든 캠프가 2014년의 기억과 같지는 않았다.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만나 하는 일이라는 게 그렇듯 신뢰 관계 형성에 실패하거나, 핵심 역할을 맡은 구성원의 생각지 못한 이탈 같은 문제들이 터지기도 한다. 나도, 나의 소속 정당도 선거에 꽤나 익숙해진 뒤에도 그런 문제는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경험이 쌓여서 선거를 조망할 수 있게 되자 그럴싸한 조직도를 그릴 수 있었고, 그 그림에 집착해 캠프의 사정과 구성원의 역량에 업무를 맞추는 게 아니라 조직도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일이 늘어갔다. 그러다 보면 기계처럼 일이 돌아가리라는 기대와 달리, 일은 일대로 안 돌아가고 서로 간의 신뢰도 점점 낮아지기 일쑤였다.
또, 당이나 캠프가 커지다보면, 정작 많은 수가 필요한 건 실무와 운동 인원인데 전략과 기획에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관여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경우도 생기곤 한다. 그 경우에도 캠프의 운동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걸 종종 경험하고, 목격한다.
‘일잘’들로 구성된 캠프
캠프 구성에 변수가 많다고 해도 결국 각자 맡은 바를 해내고, 과로의 연속인 선거 과정에서 서로 부담을 덜어주는 사람들이 모인다면 좋은 캠프, 좋은 선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나도 꽤 오랜 세월 오해했던 게 있다. 일을 잘 하는 사람들, 이른바 일잘러들을 잔뜩 모아 캠프를 꾸리면 만사형통이란 생각이다.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선거캠프에서의 ‘일’이라는 게 애초에 엄청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거의 없다.
물론 맡은 업무에 따라 최소한의 PC 사용 능력, 선관위나 타 캠프, 소속 정당과의 소통 능력, 그리고 홍보물을 직접 제작하는 캠프의 경우에는 디자인 능력도 요구된다. 하지만 그 말이 곧 코딩을 할 수 있을 수준의 PC 사용 능력, 타 캠프와 고난도 정치 협상을 벌일 정도의 소통 능력, 역사에 길이 남을 선거 홍보물을 만들 디자인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술적인 역량은, 다소 모호한 표현이지만, 그저 진행에 무리가 없을 정도여도 괜찮다. 오래 회자되는 홍보물 디자인이나 실수가 1도 없는 회계장부 정리, 논리적으로든 학술적으로든 완벽한 정책 공약 등 역량이 높으면 당연히 좋은 일이며, 그렇게 각자 가진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상황에 맞게 최선을 뽑아내는 건 모든 일에 적용되는 기본이니까. 문제는, 캠프를 구성할 때 기술적인 역량이 최우선 조건이 아니란 점이다.
중요한 건 기술적 역량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선이 다른 사람들과 공통의 목표를 두고 적대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성품,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맡은 역할을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책임감이다. 교과서적인 말일 수도 있고, 그게 결국 ‘일잘’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 이 두 가지는 능력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여서 ‘일잘’의 정의와는 다소 다르다. 또, 실제로 사고가 터지거나 선거 뒤가 개운치 못한 캠프들을 목격한 바, 구성원들의 업무 역량이 떨어져서라기 보다 저 두 가지로 인한 것이 많았다. 어쩌면 나도 어떤 캠프에서는 저 두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인물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모으냐고? 그게 후보의 역량이 아닐까. 후보가 어렵다면 후보와 함께 선거를 준비한 후보의 참모, 일반적으로는 선거사무장의 필요 역량일 수도 있다. 그리고 완벽한 인간이 없듯이 힘든 선거 과정 속에 있다보면 누구나 소통하려는 태도와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걸 감지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것도 결국 후보와 참모의 역량이다. 앞서 고백했듯 참모로든 사무장으로든 내가 잘 해내지 못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한 번은 캠프원의 사정으로 법적으로 해야할 실무에 문제가 터졌고, 결국 실무 책임자였던 내가 선관위에 찾아가 말그대로 거의 ‘도게자를 박아가며’ 몇 주에 걸쳐 사고를 수습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일을 수습하면서 그 캠프원을 책망하는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캠프를 구성할 때 그리고 캠프 운영 중 불안 요소가 발견되었을 때, 이렇게 문제를 바로 잡을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놓친 참모의 잘못도 큰 것 같다.
선거캠프, ‘동지 찾기’의 출발점
전통적인 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치 연구자 조디 딘은 『Comrade』(‘동지’라는 뜻) 라는 책에서, 동지가 연대자(Ally) 혹은 동료와 어떻게 다른지, 왜 지난 시대의 키워드인 동지를 복권해야 하는지 설파한다. 좋은 태도라든가 친소 관계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같은 편에 서서 책임과 신뢰를 공유하며 함께 싸우는 정치적 관계가 바로 ‘동지’이며 그런 관계를 다시 조직해야 한다는, 꽤 올드해 보이는 그의 주장에, 나도 90%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특히, 중요한 일들이 개인 간 은원과 친소에 의해 왜곡되는 일들을 볼 때마다 조디 딘이 말하는 ‘동지’의 필요성을 되새기곤 한다. 사적인 관계를 쌓는 데 서툰 내 개인적 성향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나머지 10%의 의구심은 이런 것이다. 과거와 같이 교범처럼 학습된 정치 교리도 없고, 지향하는 사회상도 더 많이 분화된/흐릿해진 오늘날, 공동의 정치적 방향만을 내세워 함께 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그 10%의 자리에는 ‘좋은 태도’ 같은 요소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공동의 정치적 방향이 모호한 시대에 동지를 찾고 싶다면 결국 그 모호한 정치적 방향을 선명하게 하거나 확장시켜 나가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태도 등 개인적인 요소들은 중요해진다.
선거캠프의 인적 구성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동지 이야기를 꺼낸 건, 정당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정당 활동을 ‘동지를 찾는 일’이라고 스스로 정의해왔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체성이나 실무가 덜 중요하단 의미 보다는, 정치적 동지를 찾으면서 임금 노동자로서 실무를 해낸다는 게 내가 생각하는 정당 노동의 기묘한 특성이라는 의미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선거캠프는 동지 찾기의 출발점이란 생각을 한다. 선거캠프에 사람을 모을 때, 소통과 책임을 향한 의지가 기술적 역량보다 중요하다는 생각도 넓게 보면 동지 찾기를 위한 기준이다. 과로가 기본값에, 긴장도가 높은 환경을 버텨야 하는 선거캠프에서는 각자의 지향과 태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한다. 그런 과정을 몇 번 거치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 정치를 하고 싶은지, 할 수 있는지 그리게 된다.
지금 동지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얼굴들은 조디 딘의 말처럼 나와 정치적 방향이 일치하는 사람들만은 아니다. 운동에도 여러 운동이 있겠지만, 정당 운동에서 내가 떠올리는 건 조금씩 다른 방향 속에서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고 그 합의된 변혁을 구현해 나갈 의지가 있는 사람들, 생각만 해도 고구마 먹은 것 같고, 바닥에 내내 짓눌리는 듯한 여정에서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다.
거창하게 썼지만 정당 활동가가 된다는 것 혹은 동지를 만난다는 것이 만화책이나 무협지 주인공들처럼 우연과 감동이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멋진 정치적 비전 따위 없었던 옛날의 나와 같이, 그저 적절한 시기에 선거라는 계기를 만나 여정을 시작하기도 한다. 인제 재보궐에 나선 김대중이 마침 인제에서 한약방을 하던 엄창록과 만난 건 그 자체로 영화 같지만, 결국 선거라는 상황이 서로를 만나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듯, 정치적 이상과 현실, 서로의 역량과 태도가 적나라하게 쏟아져 나오고, 그걸 지지고 볶으면서 완성해가는 선거캠프라는 공간이 어쩌면 현실 속 동지 찾기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의 변(명)
1화 연재가 많이 늦었습니다. 정당에서의 일상적인 실무 이야기로 시작하려다가, 개인의 경험을 담은 연재인만큼 그 출발점이었던 계기에 대해 먼저 쓰는 게 맞겠다 싶어서 기존 원고를 갈아 엎었던 탓에.
마침 지방선거도 다가오고 있고, 정당 실무의 많은 부분이 선거와 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1화를 비롯 향후 몇 회차는 선거 실무 이야기를 다뤄보겠습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선거 실무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다음 회차부터는 많이 늦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