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벽에 매달린 선거 정치: 선거사무소 임장기

지방선거 = 대목

선거철이 되면 바빠지는 업종들이 있다. 후보 1인이 1만 장은 우습게 쓰는 명함부터 공보, 벽보, 현수막을 만드는 홍보물 제작 업체가 대표적이다. 단체복, 선거송, 유세 트럭, 사무집기 렌탈, 여론조사, 선거 컨설팅까지 더하면 선거를 둘러싼 산업은 생각보다 넓다. 그리고 이런 선거 비즈니스(?)에서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대목이다. 대통령 선거 후보는 많아야 10명 남짓이지만, 지방선거 후보는 7천 명을 훌쩍 넘는다. 예비후보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더 커진다.

어쩌면 부동산도 이런 선거 비즈니스 체인에 낄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선거사무소’라고 통칭하지만 펼쳐놓고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후보자의 선거사무소뿐 아니라 규모가 큰 선거에서 ‘지점’ 역할을 하는 선거연락소도 있고, 후보자 선거사무소와 별개로 후보자 후원회의 사무소도 차릴 수 있다.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선거구도 많으니 지역마다 수요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선거철이 되면 전국 곳곳에서 3개월짜리 오피스 임대 시장이 열린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두 달 채 남지 않은 지금이 바로 그 대목이다. 이미 동네 대로변이나 사거리에는 대형 현수막을 두른 선거사무소들이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에게는 대목을 맞은 임대 상품이고, 누군가에게는 각오를 다지는 베이스캠프이며, 또 수많은 누군가에게는 보기 싫거나 별 관심 없는 풍경일 선거사무소라는 공간. 이번 글에서는 정당 실무자로서 여러 번 마주했던, 이 애증의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것도 나름 팝업인데

뜬금 없지만 상업 부동산 이야기로 시작해보자면, 2020년대 이후 상업 부동산 시장의 키워드는 ‘팝업’이었다. 말 그대로 브랜드 홍보를 주목적으로 단기간 운영하는 매장들인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성수동처럼 팝업이 많이 유치되는 곳일 수록 힙한, 잘 나가는 상권으로 평가한다. 실상은 주변 임대료를 뻥튀기 시키는 문제적 존재이긴 하지만 어쨌든 부동산 시장에서는 환영 받는 임차인이다. 그렇다면 팝업 매장처럼 길어야 5개월, 짧으면 1개월 남짓 운영하는 선거사무소도 환영 받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선거사무소 시장은 극단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이다. 특히 후보자가 많이 나오는 지방선거에서는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선거사무소로 쓸 수 있는 입지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선거사무소의 핵심 목적 중 하나는 외벽 현수막을 걸어 후보자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골목 안쪽에 있는 사무실은 선호도가 떨어진다. 대로변, 사거리 등 좋은 입지라도 임대인이 외벽 현수막 게시를 불허하는 건물도 있고, 대형 오피스나 지식산업센터처럼 호실별로 소유자가 구분되어 있어 현수막을 크게 걸기 어려운 건물도 있다. 입지나 현수막 문제가 아니더라도 임대인이 정치 그 자체 혹은 특정 정당을 극도로 싫어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은 확 줄어든다.

그렇다면 선거사무소는 어떻게 구할까. 지역의 건물주나 공인중개사들과 네트워크가 잘 구축된 후보라면 조금 수월할 수 있다. 실제로 선거사무소를 구하다 보면 건물주로부터 “○○당의 김 아무개를 아느냐”, “○○당 박 아무개 의원과 친분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내 경험은 대체로 그런 세계와 거리가 멀었다. 결국 네이버부동산을 뒤지고, 동네를 걷고, 지난 선거 때 선거사무소로 쓰였던 건물들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 어느 동네나 선거철만 되면 반복해서 선거사무소로 쓰이는 건물들이 있고, 그런 건물의 임대인은 적어도 선거사무소라는 용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캠프 입장에서는 후보지를 몇 곳 추린 뒤 예산, 입지, 동선, 현수막 게시 가능 여부를 차분히 따져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여유롭지 않다. 다른 예비후보자들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조건의 공간을 찾는다.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공인중개사의 단골 멘트, “이 물건은 금방 나가요”라는 말이 선거를 앞둔 실무자에게는 피를 말리는 경고처럼 들린다. 결국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도 입지, 임대료, 현수막 게시 가능 여부 같은 핵심 조건만 맞으면 곧장 계약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선거사무소의 꽃? 분쟁의 원인? 외벽 현수막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유선 상으로는 외벽 현수막 게시도 가능하고, 입구 표지도 가능하고, 터가 좋아서 당선자도 많이 배출한 건물이라며 적극적으로 나서던 임대인이 막상 계약을 위해 마주 앉으면 태도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내 건물 외벽에 구멍을 뚫어야 할 수도 있고, 다른 세입자의 창문을 가릴 수도 있고, 선거철 내내 사람 드나드는 일이 잦을 것이다. 게다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정당에서 쓴다고 하니 더 주저했을 수도 있다. 건물주 마음을 누가 다 알겠냐만은.

일반 부동산 계약이 그렇듯이 선거사무소 계약 시에도 특약사항을 따로 적는 경우가 많다. 유세차량 주차 문제, 입구 표지 부착, 외벽 현수막 설치 동의 여부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현수막은 특약에 적어 놓아도 끝이 아니다. 막상 설치일이 다가왔을 때 “이렇게 크게 가리는 줄 몰랐다”, “벽에 구멍을 뚫는 건 줄 몰랐다”, “다른 세입자가 민원을 넣을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머리가 하얘진다.

한 번은, 계약 당시부터 임대인의 걱정이 느껴졌고, 그 자리에서 로드뷰 사진을 출력해 다른 세입자의 창문이 없는 벽면 2곳 정도에 게시 위치를 표시하고, 그 내용을 특약으로 하여 계약을 맺은 적이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은 왜 늘 현실이 되는지, 현수막 설치가 임박한 시점에 임대인이 난색을 표했다. 구멍을 뚫는 건 안된다는 것이었다. 외벽 현수막도 시공 현장에 따라 구멍을 뚫지 않고 건물 구조물에 로프를 걸거나 부착식으로 게시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피스(나사못)와 로프를 함께 사용한다.

따지고 보면, 특약사항에도 현수막을 설치한다고만 했지 어떤 ‘공법’으로 설치한다고 명시한 것은 아니니 임대인을 탓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무자 입장에선 퍽 난감한 경험이었다. 설치 업체와는 이미 일정을 잡아두었고, 캠프에서는 그날 현수막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계약서를 다시 뒤지며 어디까지 조율할 수 있을지 계산해야만 했다. 선거운동은 늘 시간이 부족한데, 이런 문제는 꼭 가장 시간이 부족할 때 터진다.

우여곡절 끝에 현수막은 설치됐다. 하지만 지금 돌아봐도 선거사무소와 관련한 기억 중 가장 끔찍한 경험 중 하나다. 사실 그 임대인과는 현수막뿐 아니라 다른 사안을 두고도 문제가 생겼고, 결국 꽤 언성을 높이며 언쟁을 벌였다. 선거사무소는 선거구 안에 있는 것이고, 임대인은 대부분 유권자이기 때문에 납작 엎드리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그래왔다. 하지만 언쟁 당시에는 계약 사항을 이행하지 않는 임대인의 억지와 나이를 들먹이며 뭉개려는 태도, 어떻게든 캠프에서 기획한 일은 해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평정심을 조금 잃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정신수양이 부족한 탓도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애초에 선거사무소와 외벽 현수막을 위해 경쟁하도록 만드는 선거운동 제도와 문화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

선거의 베이스캠프

그렇다고 선거사무소가 ‘현수막 거치대’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왕 비싼 돈 주고 구했으니 살뜰하게 써야 한다. 회의를 하고, 선거운동 일정을 짜고, 전화 홍보를 하고, 명함과 홍보물을 쌓아두고,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누구는 밥을 먹고, 누구는 의자를 나르고, 누구는 갑자기 부족해진 물품을 사 오러 뛰어 나간다. 유세 일정에 지친 후보나 운동원들은 파티션으로 가린 공간에서 쪽잠을 취하기도 한다. 그렇게 선거사무소는 업무공간이자 창고이고, 휴식공간이자 대기실이며, 선거운동의 베이스캠프가 된다.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전략과 기획은 선거 6개월 전부터도 논의하고 준비하지만, 선거 3, 4개월 전 선거사무소에 입주를 하면 그제서야 비로소 선거가 시작된다는 실감을 한다. 회의록과 일정표 속에 있던 선거가 갑자기 책상, 의자, 프린터, 박스, 커피믹스, 멀티탭 같은 구체적인 사물들로 변한다. 추상적인 계획이 현실의 공간을 얻는 순간이다.

선거가 끝난 뒤의 기억은 더 선명하다. 짐을 빼고, 현수막을 내리고,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고 나면 사무소는 금세 3개월 전과 같이 빈방이 된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인데, 집기가 빠져나가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공간처럼 보인다. 그동안 치른 선거들의 결과가 모두 낙선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문자 그대로 너무 지쳐서 였는지는 모르겠다. 짐을 빼는 날이면 나는 늘 잠깐 멍하게 앉아 있곤 했다. 방금 전까지 선거였던 것이 갑자기 부동산 계약서의 지번으로 돌아오는 순간. 그 허탈한 전환은 오래 남는다.

커다란 벽에 매달린 선거 정치

여기까지 읽은 분 중에서는 사무소 입지와 외벽 현수막에 집착하는 선거 캠프가 진상 임차인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사실 선거사무소가 꼭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나도 자신 있게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선거사무소는 그 자체로 비싸다. 특히 군소정당이나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후보에게 선거사무소는 큰 부담이다. 여기에 외벽 현수막을 설치하려면 대형 현수막 제작비, 크레인 등 장비 비용에 설치 인건비까지 붙는다. 200만 원은 쉽게 넘어 간다. ‘예비’후보에서 ‘예비’ 자를 뗀 본 후보가 되거나 최종 기호가 결정되면 기존 현수막을 전체 교체하든 부분 수정 하든 또 장비를 불러야 한다. 결국, 더 좋은 입지, 더 넓은 공간, 더 큰 외벽을 점유할 돈이 있는 후보가 유권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노출된다.

문제는 돈만이 아니다. 외벽 현수막은 경우에 따라 도시 경관을 해치고, 다른 세입자의 창문을 가리기도 한다. 불이 나면 대피와 진화에 방해가 될 수 있고, 강풍이 부는 날에는 보행자 안전도 걱정된다. 그런데도 내가 당장 다시 선거 실무자로 돌아간다면 아마 또 선거사무소를 구하고, 외벽 현수막을 설치할 것 같다. 물론 위치와 크기는 안전과 비용을 고려해 조정하겠지만, 후보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작은 정당의 후보, 정치 신인일수록 현수막 같은 물리적 홍보 수단에 더 매달리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선거사무소와 외벽 현수막이 필요하냐 아니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 같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후보의 자금력에 따라 벽의 크기가 달라지고, 안전 위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경쟁하는 지금의 방식이 과연 괜찮은가. 메시지와 정책이 경쟁력이어야 할 선거에서, 후보가 빌린 벽의 크기가 경쟁력이 되는 장면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사무소’라는 부동산 상품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지 않은가?

대안을 생각해보는 일은 쉽지 않다. 군소정당이나 정치 신인일수록 더 많은 홍보 창구가 필요하고, 선거사무소에서는 실제로 많은 선거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에 무작정 없애기도 어렵다. 다만 외벽 현수막의 규모와 설치 방식은 안전 기준에 맞춰 더 엄격히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예비후보 기간까지 포함해도 길어야 3~4개월에 집중되는 선거운동 방식을 바꿔, 정치 신인들이 더 긴 시간 동안 일상적으로 자신의 정치를 알릴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짧은 기간에 비용 지출과 물리적 노출 경쟁을 몰아넣는 방식이 정말 괜찮은지 돌아보는 것이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선거사무소. 머리로는 비판하다가도, 막상 입주를 마치고 외벽에 현수막이 걸리면 마음 한구석이 들뜨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준비한 선거가 드디어 거리에 내걸렸다는 감각. 내가, 우리가 그려온 정치를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는 설렘. 그런 감정까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설렘이 더 큰 벽을 빌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유리한 방식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비용과 안전의 문제를 낭만으로 덮지 않으면서도, 지역 주민들에게 정치를 알리는 순간의 설렘은 지킬 수 있는 방법. 선거사무소라는 이상한 공간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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