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실무는 ‘덜어내기’의 연속?
선거 실무에서 ‘정책’의 위상은 어떨까? 정책과 관련한 실무는 슬프게도 ‘덜어내기’와 엮일 때가 많았다. 선거법상 크기가 제한된 피켓에 어떤 정책을 최대한 간결한 문장으로 넣을 것인지, 역시 페이지 수 제한이 있는 공보물에는 몇 페이지나 정책에 할애할 것인지. 이런 고민은 명함, 온라인 홍보, 선거운동원의 인사말 스크립트 등 거의 모든 실무 과정에서 발생한다. 문자 그대로 유권자와의 약속을 담은 문건인 정책 공약집 작업은 뒷전으로 밀리거나, 아예 작성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선거법상 의무사항이 아니고, 공들여 만들어도 유권자에게 전달할 방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을 덜어내는 실무가 있다는 건, 본격적인 선거 정국에 돌입하기 전 정책을 어느 정도 마련해둔 캠프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미 바구니에 든 게 많으니 덜어내는 것이다. 정당의 이름, 자신을 밀어주는 유명 정치인, 지역 연고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캠프라면, 정책의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에 당 정체성이나 유명 정치인과의 인연, 지역에 얽힌 추억거리를 하나라도 더 넣는 결정은 애초에 고민 대상이 아니다.
결국, 어떤 동네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보다 ‘○○식당 둘째 아들’ 같은 키워드를 우선하는 캠프가 더 많은 게 한국 선거의 현실이다. 참고로 ‘○○식당 둘째 아들’은 필자의 거주 지역 재선 의원이 실제로 내걸었던 서브 슬로건이다. 동네에서 정치는 추상적인 노선보다 관계를 통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이 우리 동네를 아는 사람인가”, “나와 비슷한 공간적, 사회적 환경을 경험한 사람인가” 같은 감각은 무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요소들을 정책 선거보다 질 낮은 정치라고 비웃는 데서 끝내는 건, 적어도 선거 실무자에게 있어서 좋은 태도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식당 둘째 아들’이라는 말은 후보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려주지만, 그가 어디로 가려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후보의 배경을 설명해줄 수 있지만, 그가 어떤 도시를 만들고 싶은지, 어떤 사람들의 편에 설 것인지, 어떤 예산을 바꾸고 어떤 조례를 만들 것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정책이 중요하다는 말은,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져야 할 설명의 책임이 그 안에 담겨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책을 짜다가 서운해지는 순간들
진보정당은 상대적으로 정책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특히 지역구 선거에서는 그런 차이가 꽤 두드러진다. 정책 선거라는 지향점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체로 정당 인지도와 지역 조직 기반에서 밀리니 정책을 더욱 강조하게 되는 면도 있다. 정책은 진보정당의 핵심 무기라는 이해 때문인지, 진보정당 선거의 정책 실무는 은근히 치열하고, 잡음도 더러 발생한다.
특히 중앙과 지역의 온도차가 가장 큰 영역이 바로 정책이다. 중앙당의 정책은 대체로 “방향”의 언어로 쓰인다. 기후위기 대응, 돌봄의 사회적 책임, 공공교통 확대, 주거권 보장 같은 말들이다. 전국 공통 공약과 핵심 정책 부문을 다루는 것이니 당연히 개별 지역의 사정에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반면 지역 캠프가 마주하는 질문은 훨씬 구체적이다. 이 도로는 어떻게 할 건지, 저 재개발은 찬성인지 반대인지, 버스 노선은 늘릴 수 있는지, 우리 동네 공원은 왜 이렇게 방치되는지. 중앙의 정책이 “우리 정당은 어떤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에 답한다면, 지역의 정책은 “이 동네에서 이 후보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에 답해야 한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 보니, 가끔은 서로 서운해지는 순간이 온다. 중앙에서 만든 정책기조에 대해 지역에서는 “지금 우리 선거에 바로 쓰기 어렵다”, “가뜩이나 바쁜데 이것까지 하기는 어렵다”는 불만이 나온다. 중앙에서는 지역 캠프가 당의 핵심 메시지를 충분히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중앙-지역이란 표현을 쓰긴 했지만, 중앙 정책이라고 해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합의해서 만든다. 이런 긴장은 제작 주체의 문제라기보다 선거를 바라보는 위치에 관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서로의 입장이 모두 이해된다. 충분히 조율이 가능한 문제다. 문제는 이 차이를 정체성의 문제로 너무 빨리 번역해버릴 때 생긴다. 지역의 언어를 고민하는 일을 곧바로 후퇴나 타협으로 읽어버리면, 선거가 끝난 뒤에도 함께 남아야 할 사람들 사이에 불필요한 상처가 남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노선의 배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의 질문을 붙들고 있는 데서 생기는 간극이다.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겠다는 결심을 한 ‘정당’이라면 피하기 어려운 고민이기도 하다.
물론 이 간극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지역의 언어만 좇다 보면 정당이 왜 이 선거에 나왔는지가 흐려지고, 중앙의 언어만 앞세우면 후보가 왜 이 지역에 출마했는지가 흐려진다. 좋은 선거 정책은 둘 사이를 ‘잘’ 번역하는 데서 나온다. 당의 방향이 지역의 언어를 만나고, 지역의 요구가 당의 세계관 안에서 다시 정리될 때 비로소 선거에서 말할 만한 정책이 된다. 문제는 선거 현장에서 이 번역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리고 때로는 선명한 정책 언어와 지역의 정치 언어 사이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지역의 언어를 곧바로 후퇴나 타협으로 읽어버리는 태도도 이 간극을 더 키운다.
정책을 기다려주지 않는 선거
정책이 뒤로 밀리는 이유를 캠프의 준비 부족이나 정당 내부 조율의 실패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정책을 차분히 다루기에 그리 친절한 환경이 아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3일로 굉장히 짧고, 유권자가 후보들의 정책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는 통로는 좁다. 거의 유일한 통로는 공보물과 토론회인데, 캠프에 쌓아둔 좋은 정책이 많아도 돈이 없으면 공보물 페이지를 줄여야만 하고, 기초의원 선거 규모에서는 토론회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정치구도는 더 큰 문제다. 양당구도가 강한 선거에서 정책은 자주 진영 대결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유권자는 후보의 공약보다 어느 당 후보인지, 누구를 막을 수 있는지, 어느 쪽이 이길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본다. 작은 정당의 후보는 정책을 말할수록 “좋은 말인 건 알겠는데 당선 가능하냐”는 질문 앞에 선다. 선거가 끝나고 남는 건 낙선자의 훌륭한 정책이 아니라 “너네 때문에 ○○당이 떨어졌다”는 비상식적인 비난이다. 정책이 현실성을 얻으려면 권력이 필요하지만,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정책은 다시 비현실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정책이 선거의 중심이 되는 건 쉽지 않다.
미디어 환경도 정책에 우호적이지 않다. 지역 언론은 줄었고, 후보별 정책을 꼼꼼히 비교해주는 콘텐츠는 드물다. 전국 단위 언론은 지방선거를 대체로 대선의 연장전이나 정권 심판 구도로 다룬다. 온라인에서는 더 짧고 강한 말이 유리하다. 후보의 공약을 설명하는 긴 글보다, 상대 후보의 실언이나 자극적인 장면이 더 쉽게 퍼진다. 정책은 설명이 필요한데, 선거의 공론장은 설명을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선거에서 정책이 뒤로 밀리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예정된 일이다. 짧은 기간, 제한된 홍보 수단, 양당 중심 정치구도, 유튜브화된 공론장. 이 조건 속에서 정책이 선거의 중심에 서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거대정당이 포괄정당화되면서 이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옳은 말과 닿는 말
정책이 저절로 서지 못하는 환경이라면, 적어도 누군가는 계속 정책이 설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선거판에서 정책이 안 뜬다고 선거법과 정치 구도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책이 뒤로 밀리는 외부 조건은 분명하지만, 그 조건 속에서도 정책 언어를 정치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결국 캠프와 정당의 몫이다.
좋은 정책을 갖고 있다는 것과 좋은 선거 메시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르다. 정책 문서가 아무리 훌륭해도 유권자에게 닿는 문장으로 바뀌지 않으면 선거에서는 힘을 갖기 어렵다. 더 정확한 진단, 더 급진적인 대안, 더 촘촘한 제도 설계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선거에서 정책은 짧은 약속문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약속은 논리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말투로, 어떤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정책 언어가 정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말은 내용을 얕게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피부에 와닿는, 책임이 담긴, 기대를 품게 하는 언어로 바꾸자는 뜻에 가깝다.
예컨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지방정부 전환 계획”이라는 말은 “폭염과 폭우에 안전한 동네를 만들겠습니다”로 번역되어야 할 수도 있다. 지역에 따라 에너지 전환, 탈핵 같은 이야기는 부수적으로 다뤄지고 방재 이야기가 전면에 드러날 수도 있단 의미다. 후보가 보수적이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지역 유권자에게 와닿는 언어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결정이다. 이런 번역 과정이 없으면 정책은 옳지만 멀고, 선명하지만 혼자 떠 있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 번역은 단순한 홍보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의 핵심에 가깝다. 정치는 복잡한 문제를 사람들이 함께 다룰 수 있는 말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을 짧게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맥락이 사라지고, 과장이 생기고, 세부 내용이 뭉개질 수 있다. 하지만 짧게 만들지 않으면 애초에 도착하지 못하는 말도 있다. 왜곡을 줄이면서도 와닿는 선거 정책을 만드려면, 선거가 시작된 뒤에야 정책을 급히 채워 넣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선거 전부터 후보와 정당이 지역의 문제를 만나고,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 경험을 자기 언어로 쌓아두어야 한다. 공보물 마감을 앞두고 우리 캠프의 정책이 비어 보인다면, 그것은 공보물 기획의 문제보다는 선거 전 정치의 문제일 확률이 높다.
정책 실무는 ‘번역하기’의 과정
정책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는 없다. 쉽게 폄하되곤 하는 후보의 관계망, 성실함, 지역에서 쌓은 시간도 모두 정치의 일부다. 하지만 정책 없이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책은 후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어떤 문제를 먼저 보는지, 어떤 사람들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불편을 당연한 것으로 넘기지 않는지 보여준다. 정책은 후보의 진심을 대신하지 않지만, 그 진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확인하게 해준다. 당연한 말 같지만 곧 배달될 공보물에서 이런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해보면 꽤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정책이 선거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선거 이후의 정치를 계속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당선자에게든, 낙선자에게든 공통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말을 남길지 고르는 일,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임질 수 있는 문장으로 만드는 일. 선거에서 정책 실무라는 건 어쩌면 바로 그런 일이다. 공들여 만든 정책 패키지가 공보물 종이 한 장으로 줄어드는 순간에도, 그 종이 안에 끝내 남겨야 할 방향을 고르는 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