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녹색당의 실험: 추첨제 대의원제와 여성과반제 | 김범일


『녹색당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 2010년대 새로운 정당 운동의 유산화』를 연재합니다. 본 연재는 2024년 10월 제주에서 ‘다른 정치의 본령'(이하 다정본)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대안정치공간 모색’이 공동 편집하였습니다. 다정본은 녹색당, 정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정당과 정치조직화에 관해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 글에 관한 의견 및 토론은 댓글 또는 teammosaek@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문 게재를 요청하시는 경우 검토 및 편집을 거쳐 게재할 수 있습니다.


2부. 녹색당 12년 돌아보기

녹색당의 실험: 추첨제대의원과 여성과반제

김범일

녹색당원. 지역당 사무처장, 중앙당 당직자, 교육위원장, 지방선거 선거사무장 등 출마를 제외하고 원외정당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당직을 경험했다.


녹색당 당헌 전문에는 녹색당이 추구하는 정당의 모습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 ‘직접민주주의와 추첨제 등 다양한 민주적 원리들이 살아 숨 쉬는 정당’, ‘여성·청년·장애인·이주민·소수자 등 기존 정치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당’이라는 구절이 있다. 녹색당은 민주적 원리를 살아 숨 쉬게 하고,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정당을 만들기 위해 ‘추첨제 대의원’과 ‘여성 과반제’를 도입했다. 한국의 정당조직에서 보기 힘들었던 이 실험적인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려 한다.

추첨제 대의원

당헌 제10조(당 대의원대회)

③ 대의원은 추첨제 대의원, 전국위원 및 부문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구성됩니다. 추첨제 대의원은 당원 중에서 지역․성별․연령을 고려하여 추첨으로 선정하되, 추첨대의원의 10% 이내의 범위 내에서 소수자에게 별도로 대의원 정원을 배정합니다. 단, 전국위원 및 부문별위원회 위원장은 전체 대의원 총수의 절반 미만이 되도록 구성합니다.1

녹색당의 대표 실험, 추첨제 대의원

녹색당은 대의원을 추첨으로 뽑는다. 현재는 대의원의 일부만 추첨으로 뽑지만, 2023년 당헌 개정 이전에는 100% 전면 추첨으로 대의원을 구성했다. 추첨제 대의원 제도는 ‘가장 보통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녹색당의 주요한 홍보 사안이기도 했다. 2013년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추첨(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으로의 녹색당을 긍정적으로 다루는 칼럼 및 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당원들의 자부심이었던 추첨 대의원 제도를 구현하는 실제의 과정을 나열하면서 그 한계를 진솔하게 드러내도록 하자. 

추첨된 당원이 대의원을 승낙하는 과정: ‘3월 9일, 토요일 용산 철도회관에 오실 수 있으신가요?’

녹색당에서 대의원을 추첨하는 과정은 이렇다. 당비 납부 등 일정 자격을 갖춘 당권자 전체 명단을 지역, 성별, 나이 등의 구간으로 나눈다. 그리고 해당 대의원 전체 수(당권자 100명당 1인)를 구간 비율에 맞춰 할당한다. 예를 들어 경기 지역에 할당된 대의원이 총 9명이라면, 그 중 ‘50세 이상 여성’에 해당하는 구간에 2명의 대의원을 추첨해야 하는 식이다. 그러면 사무처 담당자는 해당 구간에서 2명의 3배수인 6명을 추첨한다. 추첨한 당원에게 순서대로 전화를 걸어 대의원에 추첨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대의원을 맡을지 의사를 물어본다. 즉, 추첨되었다고 바로 대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당원의 승낙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당해 대의원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지 여부다.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올 수 없는 경우, 당원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음 순번으로 넘어간다. 대의원대회는 매번 주말에 개최하기에 주말 노동을 하거나 당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 당원은 추첨이 되어도 대의원이 될 수 없다.  

승낙 의사를 물어보는 작업 이전에, 우선 무작위로 추첨된 당원들은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추첨된 당원 순서대로 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받지 않는 당원의 연락을 기다려야 된다. 전화를 받지 않았던 당원의 전화 회신을 기다리지 않고 다음 순번 당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뒤늦게 앞 순번 당원의 연락이 와서, 대의원을 수락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당원들은 대의원직을 고사한다. 녹색당의 당원들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삶으로 구현하고자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대부분 평범한 사회인이다. 당비 납부를 통해 녹색 가치를 지지하더라도 당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활동 의사를 밝히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창당 초기에는 대의원 수락 전화 작업을 위한 매뉴얼에 추첨 인원을 3배수 정도로 제안했다. 1명의 대의원 승낙을 받으려면면 3명까지 후보군으로 추첨해두라는 의미다. 하지만, 대부분 3배수 안에는 승낙 전화를 받지 못해 재추첨이 진행되었고, 언젠가부터는 처음부터 넉넉하게 6배수의 후보군을 추첨하시라 지역사무처에 권한다. 그렇게 6배수의 추첨을 해도 승낙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10명 이상이 거절하고, 11번째에 가서야 겨우 대의원 승낙을 받아냈다는, 지역당 담당자의 고충도 듣게 된다. 대부분의 당원이 대의원을 고사하여 재추첨을 반복하다 보니 추첨의 의미가 옅어진다. 해당 구간의 거의 모든 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읍소하듯이 대의원을 선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되면 추첨 민주주의의 의미는 사실상 사라지고, 활동 의지가 있거나 시간 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당원이 대의원이 되는 경향이 확고해진다. 형식적으로는 추첨직 대의원이지만 실제 구성 상으로는 활동 당원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거수기 대의원이라는 비난: 역량의 부족

대의원대회에 온 대의원들은 의결해야 할 내용에 압도된다. 방대한 양(11차 대의원대회 자료집은 226 페이지다)도 양이지만, 낯선 회계 용어나 행간에 숨어있는 정치적 맥락 등을 따라가기에는 시간과 사전 정보가 부족하다. 대부분의 대의원은 논의 시간에 당직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부족한 정보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보통 큰 이견 없이 원안대로 의결하는 경우가 많다. 안건에 관한 수정논의 등 깊은 토의가 잘 되지 않는 이유에는 정보 부족뿐 아니라 한정된 회의 시간이라는 제약도 있다. 전국에서 모인 대의원들은 대부분 귀가 시 교통편을 예약하고 참석한다. 그러다 보니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으면 의결이 무산된다는 강박에, 대의원대회 실무를 주관하는 사무처에서는 먼저 이석하려는 대의원을 붙잡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 경기녹색당의 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부족으로 무산된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정보와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대의원대회를 할 때마다 소위 ‘거수기’ 논란이 반복된다. 직접 민주주의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시간에 쫓겨 거수기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다.  이런 비판에는 반나절 남짓 진행하는 대의원대회를 숙박까지 포함하는 1박 2일로 진행하자는 대안이 따른다.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며 시간을 갖고 숙의를 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대부분의 당원은 주말 중 하루를 써야하는 대의원대회 일정을 맞추기도 쉽지 않다. 대의원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역에서 이동하는 당원은 이른 새벽 출발하여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가게 된다. 대의원대회 당일 하루를 빼달라는 요청을 받아줄 당원을 찾으려면 6배수~10배수의 추첨이 필요한데, 1박 2일의 대의원대회를 승낙할 당원을 찾으려면 얼마나 긴 작업이 필요할까. 녹색당이 추첨제 대의원 제도를 구현하는 것은 당원들의 자부심이지만, 내가 직접 그 대의원이 되어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추첨제 민주주의를 하고 싶다면

추첨제 대의원제도를 유지하면서 밀도 높은 논의를 하려면, 대의원의 수를 줄이거나 추첨 대의원의 비중을 줄이고 당연직/선출직 대의원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당의 한해 예산안이나 사업안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려면 방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참여를 조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각자 생업이 있는 당원 스스로 정보의 균형을 맞추고 참여 의지를 높이길 기대하는 것은 막연한 일이다. 이 선행 작업을 도와줄 당직자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지 않는다면, 대의원의 수를 줄이는 방법이 남게 된다. 그 이후에, 대의원대회를 숙박형이나 다회차로 진행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실무에 투입되는 역량과 비용에 대한 고려 없이, 추첨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구현하자는 주장은 공허할 수 있다. 

그리고 대의원대회 행사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추첨 대의원들의 지속적인 활동이다. 평당원들이 당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활동을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 추첨제도의 목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의원은 대의원대회에 참여한 뒤에도 당비 납부만 하는 당원으로 돌아간다. 지역당 사무처와 운영위원회가 대의원들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지역당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거나, 전국 차원의 의제 모임, 세대 모임 등 다른 유형의 활동으로 대의원들의 연결을 시도해야만 추첨 대의원들의 활동을 보장할 수 있다.

여성과반제

당헌 제6조(평등의 원칙) ① 실질적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하여, 원칙적으로 당의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 시에 여성비율이 50% 이상이 되도록 합니다.2

2024년 10월 8일 녹색당 선거관리위원회는 <녹색당 제7기 공동대표 선출선거 공고>를 종료했다.3 2023년 5월 31일에도 선출선거 공고를 종료했다. 두 경우 모두 여성 당 대표 후보가 없어서 선거가 무산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 중 여성 후보가 없어서 대표 선거를 무산시키는 정당은 녹색당이 유일하지 않을까. 2022년에는 선출직 당무위원 선거가 여성 후보 부족으로 무산된 적이 있다. 당의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 시 여성 비율 50%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가치는 당 대표 선거, 당무위원회 선거를 종료시킬 정도로 강력한 조항이다.

현실적 어려움: 여성과반이 충족되지 않는 경우

이 조항에 따라 지역당과 부문위원회의 여성 운영위원장의 비율은 매우 높다. 원칙적으로 지역당이나 부문위원회에서도 여성 후보가 없으면 운영위원장 선출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지역당의 운영위원장, 부문위원회 위원장 두 명이 모두 여성인 경우도 있다. 2024년 10월 기준 23명의 녹색당 전국위원 중 여성은 15명으로 과반이 넘는다.4 

하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23명의 전국위원 중, 8명의 비여성 전국위원을 파견하는 단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녹색당의 지역당은 총회나 총투표를 통해서 운영위원장을 선출한다. 그런데 지역당의 활동이 둔화되면서 총회를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에는 임시 운영위원장을 세우거나 비대위원회를 구성한다. 이런 단위에서 비여성 1인이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2024년 10월 기준, 녹색당 전국위원회를 구성하는 여러 단위 중, 4개의 단위에서 비여성 1인이 비대위원장 또는 임시 운영위원장이 활동 중이다.5 이런 경우, 여성 후보가 없어 당대표 선거를 무산시키는 것처럼 지역당이나 해당 단위의 운영위원회를 정지시켜야 할까.

녹색당은 최근 2년 간 여성 후보가 없어 대표 선거를 하지 못했고, 비여성 1인이 임시대표로 활동했다. 원칙적으로 당헌 제6조를 위배한다는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일부 당원들의 문제 제기도 있었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는 있었다. 2016년 녹색당 4기 당직선거를 통해 두 명의 공동정책위원장이 당선되었다. 당시 녹색당의 정책위원장은 선출직으로, 당대표와 동등한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임기 중 여성 정책위원장이 중도 사퇴했고,6 남성 정책위원장이 홀로 1년 이상 활동했다. 당시 당은 여성 공동정책위원장이 사퇴한 시점부터 남성 정책위원장의 직무를 정지시키거나 정책위원장 재선거를 실시하지 않았다. 

녹색당의 당헌 제6조를 원칙적으로 적용한다면, 당내 다양한 단위에서 여성 과반이 넘지 않았을 시, 해당 단위의 직무를 정지시키거나 재선거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총회를 열지 못하는 상황에서 활동 의사가 있는 당원을 설득하여 임시 운영위원장을 세우는 지역당이 있다. 원칙적으로 여성 50%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임시대표직을 수락할 수 없다면, 해당 지역당은 다시 운영위원회를 꾸릴 동력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녹색당에는 선거관리위원회, 교육위원회 등의 상설위원회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설위원회 구성중 여성 과반 원칙이 무너진다면, 해당 상설위원회의 활동을 정지시켜야 한다. 만약 당이 선거를 치루는 과정에 선거관리위원회의 직무가 정지되거나, 공직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의 필수교육을 주관하는 교육위원회의 권한이 정지된다면, 당의 주요 사업들도 덩달아 멈출 가능성이 있다. 

여성과반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유지하려면

의결 기구 구성원 중 여성이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당헌 제6조는 오랜 기간 여성의 정치적 활동을 가로막는 사회문화적인 더께를 헤집는 가치임이 분명하다. 이는 녹색당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확산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조항을 충족하기 어렵더라도, 충족시키기 위한 그 어려운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해당 과정을 좀 더 섬세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가령, 여성 후보가 없을 시, 해당 단위 구성을 포기한다면 이후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고 다시 구성을 시도해야 할지 등의 세밀한 조항이 필요하다. 또한 여성 구성원을 장기간 구하지 못할 시, 해당 단위를 계속 미구성 상태로 둘지 등에 관해서도 사전에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구성원의 사퇴 등으로 여성 과반이 깨졌을 시, 해당 단위의 활동이나 직무를 정지시켜야 할지, 정지시키지 않는다면 여성 구성원의 보궐 전까지 직무를 수행해도 괜찮은지 등의 규정도 필요하다. 그리고 해당 규정이 모든 단위에 적용되는 것인지도 더 구체적으로 정해두어야 한다.

마무리 하며

추첨제 대의원제도를 채택했지만,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구현될 것인지 준비가 부족했고, 여성 구성원이 50% 이상이어야 한다는 강력한 조항은 있지만, 그 조항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선택가능한 정무적 행위가 세밀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상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녹색당에서 12년간 진행한 실험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 실험을 시작하면서, 급진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가치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꾸는 것은 벅차 보인다. 다만, 이 삐걱거리는 실험을 실패라고 규정하기 이전에, 이 실험의 긍정적 의미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실험이 지속될 필요가 있을지 다양한 단위에서 논의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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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녹색당 당헌
  2.  녹색당 당헌
  3.  녹색당 선거관리위원회 공지: 녹색당 제7기 공동대표 선출선거 공고 종료
  4.  108차 전국위원회 회의자료
  5.  108차 전국위원회 회의자료
  6.  55차 녹색당 전국위원회 회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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