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인화된 정당 운동은 가능한가: 한국 녹색당의 도전과 곤경 | 이태영

『녹색당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 2010년대 새로운 정당 운동의 유산화』를 연재합니다. 본 연재는 2024년 10월 제주에서 ‘다른 정치의 본령'(이하 다정본)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대안정치공간 모색’이 공동 편집하였습니다. 다정본은 녹색당, 정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정당과 정치조직화에 관해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 글에 관한 의견 및 토론은 댓글 또는 teammosaek@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문 게재를 요청하시는 경우 검토 및 편집을 거쳐 게재할 수 있습니다.


1부. 녹색당 실험의 사회정치적 맥락

개인화된 정당 운동은 가능한가?: 한국 녹색당의 도전과 곤경

이태영

녹색당원. 서대문녹색당 운영위원장, 서울녹색당 정책위원장, 공동운영위원장,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등 당직을 경험하였다. 지금은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박사수료하고 공부 중이다.


녹색당의 약점이면서 어쩌면 허상인 어떤 자부심  

2012년에 창당해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온 한국 녹색당1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의 정당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특성은 녹색당원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당원들 스스로 이를 ‘약점’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이 특징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녹색당과 관련된 문서, 기록, 인터뷰 등에서는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강령에 적힌 한 문구를 들 수 있다. 강령에는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며, 여러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입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이 문장은 녹색당 강령에 문학적 생명력을 부여하며, 그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당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령을 읽고 감동해 녹색당에 가입했다는 사람 중 다수는 “떡갈나무 혁명”이라는 표현에서 고취감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이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많은 당원이 “떡갈나무 혁명”이라는 단어는 기억하지만, 그것이 “자유로운 사람들의 연합”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생태철학자 故 신승철 선생은 이 표현이 “녹색당이 연고, 학연, 지위,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성을 기반으로 구성된 자유인들의 연합”이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고 보았다. 그는 녹색당을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억지로 연합하는 조직도 아니고, 자유롭지만 고립된 개인들만의 집합도 아닌, 해방과 자유, 그리고 우애와 협력이 결합된 공동체적 구조”로 정의했다.2

물론 강령이 정당의 모든 현실을 설명하고 규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녹색당이 기존 정치 조직의 문법, 즉 신승철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연합하는 형태”와 다르다고 자부심을 가지는 현상은 단순히 강령의 문장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많은 녹색당원은 녹색당이 자신의 ‘생애 첫 정당’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고, 특정 조직의 배타적 지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정당이 아니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2016년 총선을 거치며 당원 수가 1만 명을 돌파했을 때, 이러한 자부심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다. 기존 조직에 속하지 않았던 개인들이 같은 가치를 공유하며 하나의 조직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은 당원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녹색당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 역시 이러한 자부심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전원추첨제 대의원제도가 대표적이다. ‘가장 보통의 민주주의’를 내세운 이 제도는 일반 당원 누구나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현실화한 사례로 평가된다.3

그러나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특성은 녹색당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녹색당원들은 쿨(Cool)하다는 인상을 준다. IT 업계 노동자와 같다는 비유를 들을 정도로, 누구도 타인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는 당원들이 자유의지에 따라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는 규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녹색당은 항상 리더십 부재라는 위기에 직면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리더십이 등장하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코어(Core)’ 조직의 부재와도 연결된 어려움이다.

더 나아가,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자부심 자체가 허구적일 가능성도 있다. 녹색당의 운영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핵심 활동 당원 중 상당수는 시민사회단체의 전업 활동가이거나 과거 진보정당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체 당원 중 소수에 불과하지만, 정당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녹색당이 기존 정치조직과 차별화된 새로운 연합체라는 평가는 사실에 근거한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허상의 측면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 자부심은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언제든 그 약점이 훨씬 부각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기반 위에.

곤경: 녹색당이라는 ‘정당’ 

녹색당은 기존의 정치조직과 다르며, 새롭게 연결된 개인들의 연합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부심은 녹색당의 운영 과정에서 점점 곤경을 야기하는 특성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명제는 바로 “녹색당은 정당이다”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반정당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녹색당이 ‘정당’으로서 경험한 현실 속에서 자부심은 점차 취약성으로 변모했다. 녹색당은 선거 평가를 거칠 때마다 권력의지를 고취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를 위해 일상적인 정당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는 녹색당의 10년 역사에는 일관된 경향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중 하나는 바로 ‘정당다운 정당’을 추구하려는 경향성이다. 2012년 창당 당시 작성된 녹색당 강령에는 녹색당이 ‘반정당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강령에 따르면 반정당의 정당이 지향하는 대안정치는 “기성정당과 같을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되었다.4 하지만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다.5

녹색당은 이 논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보다는, 사실상 선거에서의 승리, 즉 공직 진출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당대표 선거6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누구나 ‘원내진입’을 당의 목표로 내세웠고, ‘정당다운 정당’을 만드는 것을 자신의 임기 성과로 평가하기도 했다.7 2016년 총선 당시 “기어서라도 국회에 간다”8는 표현은 이러한 경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20년 위성정당 논란에서의 참여 여부와 당원 총투표 결과에 대한 해석 역시 이러한 경향성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녹색당의 10년은(적어도 2020년까지의 8년은) 원내진입이라는 목표가 강화되는 일관된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당다운 정당’이라는 지향과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개념이 통합적으로 논의될 여지는 없었을까? 만약 그러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정당 자체에 대한 새로운 담론을 촉진할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지향은 모호하게 유지되었고, ‘정당다운 정당’이라는 개념은 의회정치 진입을 목표로 하는 구체적인 방향으로만 활용되었다.

하지만 녹색당의 이러한 경향 속에서도 자유의지에 입각한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규범은 유지가 되었다. 이러한 규범은 녹색당의 자부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반복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하는 요소였다. 그래서 권력의지를 고취하자는 결의와 지역당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동일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권력의지를 고취하고 지역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코어와 밀도 있는 연결이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느슨하게’ 연결되어 정치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논의 역시 ‘느슨’한 상태에서는 어렵다는 역설을 마주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곤경을 제대로 이해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공동의 사유를 촉발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으로 사고 실험적인 질문을 제기해보려 한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녹색당의 규범과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의 목표와 운영 원리는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가? 만약 그렇다면 정당으로 기능하기 위해 이 규범을 어느 정도 포기하거나,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 정당이 아닌 다른 방식의 조직 실험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 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음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은 어떻게 정당이 될 수 있는가? 즉, 단적으로 뒤풀이를 하지 않는 모임이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으로 형성되고 재생산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정당운동으로서 녹색당이 경험하고 직면한 고유한 난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곤경: 개인화된 사회에서의 사회운동, 그리고 정당  

앞선 질문을 다루기 위해 잠시 ‘정당’과 거리를 두고 이야기해보자. 그러니깐 녹색당의 어떤 특성이 녹색당이 자부심이 되기도 하고 곤경을 야기하기도 한 현상은 녹색당이 정당이기 때문에 겪은 고유한 경험인가 하는 관점에서 논의를 이어가고 싶다.  

2010년대 이후 사회운동의 주요 특징은 연대가 임시적이고, 중심이 개인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미국의 월가 점령 시위, 이집트와 튀니지 등 중동에서 전개된 민주화 운동은 20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사회운동 중 일부로, 이러한 경향성을 보여준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운동,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세월호 ‘가만히 있으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촉발된 다양한 사회운동, 2016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 등 한국에서 주목받은 사회운동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이러한 사회운동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이전의 사회운동과 다르다고 여겨진다. 첫째, 집합행동의 성격이 중앙집중적인 조직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직접 참여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둘째, SNS 등 온라인 매체가 이러한 사회운동의 도구로 적극 활용된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월가 점령이 화제를 모으고, 중동 민주화를 트위터(지금의 ‘X’)와 페이스북이 가능케 했다는 진단이 등장한 이후, SNS를 통해 연결된 새로운 연대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낙관이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SNS는 세상을 바꾸기도, 세상을 갈라놓기도 좋은 도구였을 뿐, 그것이 사회변동의 경로를 특정하는 만능열쇠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변화한 사회운동의 성격을 둘러싼 비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변화한 집합행동의 양상은 중요한 논쟁거리를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조직적 차원의 어려움이 현실적인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9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개인화된 집합행동의 레퍼토리는 일시적인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의사결정 구조나 조직 구조, 동원 구조, 합의된 정치적 지향성, 공유된 정체성과 소속감 등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문제는 이제 ‘조직 없는 사회운동’이라는 새로운 문제로 확대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10 

그렇다고 개인화된 사회운동을 “동원에는 성공했으나 성과는 거의 없는 실패한 운동”11이라고 단정 짓는 것도 지나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향을 막연한 낙관과 지나친 부정이라는 이분법적 평가로 단순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 사이의 지점에서 이 현상의 의미를 도출하고, 최대한의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개인화된 사회운동을 기술문화적인 측면에만 국한해 이해한다거나 일시적인 문화현상, 혹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적 단계로 이해하기보다는 ‘개인화’라는 양상 그 자체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중요한 변수로 주제화해야 한다.12 

기존의 이해에 따르면, 개인화된 사회운동이 겪는 곤경으로 지적되는 의사결정 구조, 조직 구조, 동원 구조, 합의된 정치적 지향성, 공유된 정체성과 소속감의 문제13는 정당이라는 정치조직에서 더욱 부각된다. 이는 아직까지 정당에서 이러한 요소들이 ‘정당다움’의 핵심 가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 공간에서 정당의 역할은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제공하며 정치적 경합에 참여하고, 대의민주주의의 행위를 조직하고 매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정당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사회 이슈를 흡수해 정책을 구사하는 다중 의제 조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14 따라서 모든 정책이 마음에 들어서 당과 정치적 시민이 완전히 동기화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당원이나 유권자는 정치적·정책적 패키지 전반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당원이 되거나 투표를 한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종합적인 국가 운영 계획과 사회 변혁 기획을 제시한다. 설령 특정 이슈를 중심으로 한 단일 이슈 정당이라 하더라도, 정당으로서 표방해야 할 다양한 입장은 필연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여러 영역에서 입장 표명을 거부하는 정당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는 사회적·정치적으로 설득력을 지닌 정치조직으로 자리 잡기 어렵다.

이러한 특징은 ‘지속하고 지속되는 정치조직’이라는 정당의 본질을 뒷받침하며, 사회세력화를 포괄하는 정치세력화의 형식적 완결15을 성립시키는 근거가 된다. 따라서, 개인화된 사회운동에서 한계로 지적되는 부분들이 정당이라는 영역에서 더 큰 한계로 부각되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녹색당의 창당 과정이 바로 개인화된 사회운동의 경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녹색당은 특정 정파나 사회조직의 배타적 지지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조합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창당 초기부터 자부심을 가졌다. 1만 명이라는 크지 않은 당원 숫자가 녹색당의 동력이 된 것도 이 자부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당원들은 대부분 개인으로 존재했던 시민들이었으며, 이들의 모임은 당의 기세와 효능을 상징하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녹색당의 경험이 제기하는 피할 수 없는 질문 

그러면 정당은 이러한 사회운동의 경향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나는 어떤 대안을 수용하더라도, 개인화된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촉발된(촉발될) 사회적 토론에 정당이 더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정당과 사회운동의 관계는 정당을 어떻게 이해하든 중요한 주제다. 예를 들어, 녹색당 내부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회운동 정당이라는 지향 속에서 정당의 목적과 기능을 이해하는 경우, 정당은 곧 사회운동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사회운동의 변화된 성격과 그 함의를 충분히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는 정당을 사회운동에서 촉발된 사회적 의제를 의회라는 공간에서 대리하는 정치기구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사회운동의 변화된 양상은 정당의 성립과 지속성, 역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니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개인들의 자유의지에 입각한 개인화된 정당의 조직이 가능할까? 10여 년 녹색당의 경험을 토대로 직관에 의존해 이 질문에 답해보자면, 부정적으로 응답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녹색당의 경험이 결국 갈등의 개인화, 리더십의 부재로 귀결되어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진단은 충분한 진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녹색당이 정말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조직관을 갖고 있었을까 추가로 질문해 보면, 이 역시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을 강조하는 녹색당의 어떤 규범은 녹색당의 정치와 당 조직의 운영 과정에서 제대로 주제로 다뤄진 적이 없다. 그 규범은 문화적인 감각으로 작동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조직 방식을 배제하는 역할은 수행했지만,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는 관점으로 역할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부심과 약점 사이의 긴장은 공회전했고, 공회전하는 그 긴장은 짧은 이 정당의 시간에서 고정적인 변수가 되었다. 그리고 고정 변수가 된 공회전하는 긴장이 외화되는 방식은 윤리로서의 규범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녹색당의 그 곤경에 제대로 머물러 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뒤풀이 하지 않는 모임이 정당을 운영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그러니 뒤풀이 하자”고 귀결되거나 “그러니 정당 하지 말자”고 귀결되는 양자택일의 답변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뒤풀이 하지 않고 정당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이 등장할 수도 있다. 나는 이 질문이 녹색당의 경험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것에 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이렇게 질문을 연장하자고 제안하는 이유는 이제 진짜 이 질문이 중요한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모든 정치조직화 실험에 같은 질문이 제기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질문을 우회한 정치조직화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녹색당의 이른 경험을 제대로 회고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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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녹색당은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정치조직의 이름이고,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녹색당’ 실험이 있어 왔기 때문에 일반 명사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 이 글에서 사용하는 ‘녹색당’은 별도의 부연 설명이 없다면 2012년 창당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한국의 녹색당을 지칭한다.
  2. 서울 녹색당의 신입당원 교육을 위해 작성된 ‘녹색당 강령 전문 주해본’을 참고하였다. https://ecosophialab.com/%EC%B6%94%EB%AA%A8-%EA%B2%8C%EC%8B%9C%ED%8C%90/?mod=document&uid=36&pageid=1 (최종검색일: 2024.11.03.)
  3. ‘전원추첨제 대의원 제도’ 관련해서는 김범일의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룬다.
  4. 강령의 해당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공동체 돌봄과 살림경제, 협동과 연대의 경제 속에서 대안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며, 화석연료와 핵에너지를 넘어선 태양과 바람의 정당, 문명사적 전환을 만드는 녹색정당, 반정당의 정당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대안정치는 기성정당과 같을 수 없습니다.”
  5. 독일 녹색당의 경우, 2002년 베를린 강령에서 ‘반정당의 정당’이라는 지향을 삭제했다. 이는 베를린 강령의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된다. 베를린 강령을 통해 독일 녹색당은 ‘반정당의 정당’에서 탈각해서 ‘정당체계 내에서의 대안세력’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변경했으며, 민주주의 주제에 있어서도 풀뿌리민주주의를 중심적 가치로 표현하지 않고, 대의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변화를 경험했다(송태수, 2013: 45).
  6. 2020년 당헌 개정 전에는 전국당 공동운영위원장 선거.
  7. 제4기 전국공동운영위원장 후보자 전국 순회 간담회 기록 참고.
    (https://blog.naver.com/koreagreenparty/221369605860)
  8. YTN, 2016.4.11, “[뉴스정면승부] (정면인터뷰_신지예) 녹색당, 3% 고지 눈앞, 기어서라도 국회 진입할 것”
  9. 최재훈. 2015. 「온라인을 매개로 한 사회운동의 가능성과 한계」. 『사회연구』, 28: 69~114.  최재훈. 2017. 「집합행동의 개인화와 사회운동 레퍼토리의 변화」. 『경제와 사회』, 113: 66~99.
  10. 최재훈. 2017. 「집합행동의 개인화와 사회운동 레퍼토리의 변화」. 『경제와 사회』, 113: 66~99.
  11. 김용철. 2008. 「촛불시위의 배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 2008년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7~29.
  12. 이 글에서는 더 깊이 다루지 못하지만, 홍찬숙(2022)이나 윤세정(2024) 등 개인화라는 양상과 사회운동의 관계에 대한 성찰적인 글들을 참조하여 논의를 축적해 가면 좋겠다.
  13. 최재훈. 2017. 「집합행동의 개인화와 사회운동 레퍼토리의 변화」. 『경제와 사회』, 113: 66~99.
  14. 윤세정. 2024. 「다중 의제 사회운동 참여자의 집합 정체성과 미시적 연대 – 노동, 기후, 페미니즘 운동 사례에 대한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15. 이재영. 2013.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 레디앙.

<참고문헌> 

김용철. 2008. 「촛불시위의 배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만남」. 2008년 한국국제정치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7~29.  
박상훈. 2015. 『정당의 발견: 민주주의에서 정당이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후마니타스.
송태수. 2013. 「독일 녹색정치의 함의」. 구도완 등. 『녹색당과 녹색정치』. 아르케.
윤세정. 2024. 「다중 의제 사회운동 참여자의 집합 정체성과 미시적 연대 – 노동, 기후, 페미니즘 운동 사례에 대한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이재영. 2013.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 레디앙.
최재훈. 2015. 「온라인을 매개로 한 사회운동의 가능성과 한계」. 『사회연구』, 28: 69~114.  
최재훈. 2017. 「집합행동의 개인화와 사회운동 레퍼토리의 변화」. 『경제와 사회』, 113: 66~99.  
홍찬숙. 2024. 『한국 사회의 압축적 개인화와 문화변동 – 세대 및 젠더 갈등의 사회적 맥락』. 세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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