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 2010년대 새로운 정당 운동의 유산화』를 연재합니다. 본 연재는 2024년 10월 제주에서 ‘다른 정치의 본령'(이하 다정본)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대안정치공간 모색’이 공동 편집하였습니다. 다정본은 녹색당, 정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정당과 정치조직화에 관해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 글에 관한 의견 및 토론은 댓글 또는 teammosaek@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문 게재를 요청하시는 경우 검토 및 편집을 거쳐 게재할 수 있습니다.
1부. 녹색당 실험의 사회정치적 맥락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남긴 유산: 녹색당 정치 조직화 실험의 사회적 의미
현우식
정의당원.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의 반본질주의 정치학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담론과 이데올로기>, <커먼센스 인 커먼즈>, <다른 정치의 본령>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들어가며
이 글은 한국 녹색당에서 이루어진 급진적인 정치 조직화 실험과 그 사회적 의미를 조명한다.1 2012년 창당 이후, 녹색당은 ‘자유로운 개인(사람)들의 연합’을 지향하며 기존의 정당 및 정치 조직과는 다른 방식의 당내 민주주의 제도와 조직 문화를 만들어 왔다. 제도적으로는 100% 추첨 대의원제를 도입하였으며(2023년 당헌 개정 이후 50%로 조정), 당의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 시 여성 비율 50% 이상 할당제를 시행하고, 정기 당비 수입의 50%를 광역시·도당에 배분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와 더불어 기존의 남성 중심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평등한 조직 문화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지속해 왔다.2
이는 기존의 진보정당이나 사회운동 조직이 시도하지 못했던 급진적인 ‘실험’이었다. 그렇다면 녹색당에서 이러한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 실험이 향후 정치운동과 대안적 정치 조직화 운동에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이 글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며,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논의하고자 한다. 우선, 녹색당이 창당될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을 되짚어보며, 정치 조직화 실험을 가능하게 했던 주요 요인들을 살펴본다. 이어서, 이러한 요인들이 녹색당이 정치 조직으로서 부상하고 좌초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한 녹색당의 실험이 남긴 유산과 그 사회적 의미를 정리한다.
녹색당 창당의 사회적 맥락
일반적으로 녹색당의 창당은 녹색운동의 정치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이해된다.3 즉, 녹색당은 환경, 생태, 생명, 풀뿌리 운동 등 기존의 녹색운동이 정당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만으로는 녹색당에서 급진적인 정치 조직화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의 녹색운동이 탈권위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경향을 보여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녹색의 가치와 평등주의적 조직화 실험이 반드시 연결될 필요는 없다. 녹색운동이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형태를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로, 권위주의적이고 차별적인 방식을 통해 환경 보호를 실현하고자 하는 에코파시즘(ecofascism)을 들 수 있다. 이는 녹색의 가치를 지향한다고 해서 그 조직적 구현 방식이 자동적으로 평등적이거나 수평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별 명망가들의 노력이나 외부적 사건의 영향을 강조하는 방식으로도 녹색당에서 급진적인 정치 조직화 실험이 가능했던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녹색당 창당의 배경에 하승수 변호사와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등 일부 명망가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녹색당 창당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만으로는 녹색당이 왜 기존 정당과 차별화된 급진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 녹색당이 비교적 최근에 창당된 ‘신생’ 정당이라는 사실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을 수 있으나, 그 자체로는 설명이 어렵다. 이 문제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녹색당이 창당될 수 있었던 사회적 조건과 맥락을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녹색당이 단순히 개인적 노력이나 특정 사건의 영향을 넘어,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출현한 정당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녹색당의 창당을 ‘포스트민주화’라는 조건 아래에서, 대표되지 못한 사회적 요구들이 ‘녹색 정치’라는 이름으로 접합(articulation)4된 결과로 이해한다. 여기서 포스트민주화란 1987년 이후 형성된 민주화 체제가 민주주의 담론의 헤게모니적 규정성을 상실하며, 새로운 성격의 정치 체제로 이행하는 국면을 의미한다. 포스트민주화 체제는 보통 2008년 이명박 정부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 신보수주의의 등장을 기점으로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반독재 민주주의의 10년이 종료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민주개혁이나 독재체제의 민주화와 같은 시대적 과제가 한계에 부딪혔음을 시사한다.5
다르게 말하면, 포스트민주화는 1987년 이후 진보와 좌파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프로젝트(hegemonic project)가 더 이상 규정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헤게모니 프로젝트란 ‘사회’가 적대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고 전제하며, 기존 사회를 대체할 대안적 사회를 구축하려는 정치적 시도를 말한다.6 1987년 이후 한국 정치 진영에서는 사회를 독재 정권과 반독재 민주화 시민으로 구분하는 진보 진영의 자유주의적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우위를 점해 왔다. 동시에, 사회를 중도 자유주의 세력을 포함한 기득권층과 노동자·민중으로 나누어 보는 좌파 진영의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경합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이 두 프로젝트는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헤게모니적으로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7 이러한 맥락에서, 녹색당의 창당은 민주화 체제가 더 이상 대표하지 못하는 사회적 요구를 담아내는 새로운 정치적 시도로 탄생했으며, 기존의 민주화 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상상력을 확장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포스트민주화 국면에서는 기존의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대변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특히, 시민, 민중, 노동자들의 요구로 환원되기를 거부하는,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의 요구가 부상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2008년 촛불집회이다. 당시 집회에 참여한 주체들은 자신들을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정하거나 환원하려는 시도에 저항하며, 기존의 헤게모니 프로젝트로 통합되기를 거부했다. 집회에서 나타난 ‘깃발’로 상징되는 전통적 운동문화에 대한 거부와 ‘축제’ 형식의 집회는 이들이 대안적이고 새로운 조직문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러한 특징은 한국 사회에서 대중(masses)이나 다중(multitude)과 같은 새로운 정치적 주체의 등장을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다.8
포스트민주화 시기의 핵심 정치적 과제는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요구들을 어떻게 정치적 요구로 접합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녹색당의 창당은 이러한 정치적 과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녹색당의 창당 과정에는 풀뿌리 자치운동, 지방의 대안 농업 집단, 각종 생활협동조합, 그리고 「녹색평론」 읽기 모임 등 소규모 조직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주류 환경운동이 채택했던 기존의 활동 방식이나, 야권연대를 통한 민주적 정권교체와 같은 사회적 요구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모색했다.9 특히 녹색당 창당에는 특정 사회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많은 개인들이 참여했다. 이들 중 다수는 녹색당을 “내 생애 첫 정당”으로 선택하며, 녹색당의 창당 과정에서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여기에 몇몇 명망가들의 노력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외부적 사건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녹색당은 기존의 헤게모니 프로젝트가 담아내지 못했던 대표되지 않는 사회적 요구들을 ‘녹색 정치’라는 이름 아래 접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녹색당이 단순히 ‘녹색’ 정당을 넘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실험하는 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은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민주적 요구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로 인해 창당 초기부터 녹색당은 자신들이 기존 진보정당과는 다른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는 점을 명확히 강조했다. 기존의 진보정당들은 공식적으로는 인민주권론에 입각한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정당 엘리트들이 논의 과정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정파 간 갈등으로 인해 조직이 반복적으로 와해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에 반해 녹색당은 창당 초기부터 당원 주도형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개별 당원 각각이 주인이 되는 정치조직을 구축하려 했다.10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구호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요청된 것이며, 기존 정당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새로운 조직문화와 정치적 상상력을 실현하려는 시도를 담고 있었다.
이는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에서 ‘지역/풀뿌리’와 ‘여성/성평등’이라는 범주가 핵심적으로 강조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녹색당의 강령은 기존 기득권 정당과 대통령, 정부, 국회를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와 수도권 집중을 비판하면서, 권력이 지역과 풀뿌리 시민들에게 분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녹색당은 토호 세력에 의해 장악된 기존의 지역 정치를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당의 거버넌스 측면에서도 중앙당 중심의 전통적 구조를 과감히 탈피하고, 지역당에 의결권과 예산권을 급진적으로 분배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녹색당의 이러한 구조는 중앙당이 지역당의 상위 기구가 아니라, 지역당이 연합한 형태의 정당으로 자리 잡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접근은 지역과 풀뿌리 시민들이 정당의 주체로 자리 잡는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모색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성 대표성과 소수자 대표성의 문제는 기존 정치조직에서 규범적으로는 강조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에 반해, 녹색당은 당의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 시 여성 비율이 50% 이상이 되도록 제도화하며, 기존의 여성할당제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실험을 시도했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녹색당은 평등문화약속문을 통해 평등과 포용을 당의 중심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꾸준히 노력했다. 이러한 제도적·문화적 실천은 여성 할당제를 넘어, 녹색당에서 여성 후보와 정치인이 꾸준히 배출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녹색당이 ‘페미니즘 정당’으로서 일관된 정치적 행보를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기존 정당 질서 안에서 여성과 성평등 의제를 가장 꾸준하고 선명하게 추진한 정당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녹색당의 이러한 노력은 정치조직 내 성평등 문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기존의 성별 권력 구조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중요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녹색당 정치 조직화 실험의 성과와 한계
이제 이러한 급진적 조직화 실험이 녹색당의 부상과 좌초 과정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펴볼 시점이다. 녹색당이 정치권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시기는 2018년 지방선거로, 특히 여성 청년 후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는 8만 2,874표(득표율 1.6%)를 얻으며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이는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의 김종민 후보보다 높은 득표수였다. 제주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고은영은 3.5%의 득표율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3위를 차지했으며, 제주에서 녹색당은 4.87%의 정당 지지율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또한, 보수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경북 안동에서는 시의원 후보 허승규가 16.5%의 지지를 얻으며 지역 정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는 녹색당의 급진적 조직화 실험과 더불어 기존 정치 질서에 도전하며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 시기는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거대한 사회적 물결이 일던 시기였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신지예 후보와 ‘최초의 여성 (이주민) 도지사 후보’ 고은영 후보가 출마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녹색당이 꾸준히 평범한 개인들과 여성들의 정치를 바탕으로 한 “보통의 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경북 안동에서의 허승규 후보의 약진은 녹색당이 내세운 지역정치가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물론, 선거라는 특성상 후보 개인의 역량이 성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정치적 토양과 기회를 마련한 것은 녹색당의 조직화 실험이 낳은 중요한 결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흐름은 오래가지 못하고 장벽에 부딪혔다. 녹색당은 2020년 총선을 전후하여 당내 갈등이 심화되며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2019년, 당 내부에서 젠더폭력 그리고 평등문화 훼손과 관련된 사건이 제기되었고, 주요 당직자들이 직·간접적인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 문제는 SNS를 통해 두 공동운영위원장 간의 리더십 갈등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결국, 공동운영위원장 중 한 명인 신지예는 사퇴했으며, 다른 한 명인 하승수는 갈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선거대책본부의 직위도 맡지 않기로 했다. 녹색당은 이를 계기로 특별기구 설치, 조직문화 개선 토론회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조직적 해결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인 리더십 간의 갈등이 부각되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의 부재가 드러났다. 이 사건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표방한 녹색당이 실제로는 개인적 리더십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이는 녹색당의 급진적 조직화 실험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한계를 보이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은 또 한 번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이번에는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그 원인이었다. 2020년 총선에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간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제도를 악용하기 위해 거대 양당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서 정치개혁 취지에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위성정당의의 창당준비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한 일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는 녹색당의 대표로서 하승수가 당내 공식 의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연합정당 논의에 참여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당내 민주주의를 중시해 온 녹색당의 원칙과 배치되는 행동으로, 당원들 사이에서 깊은 실망과 분열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녹색당이 추구했던 급진적이고 평등한 정치 실험이 내적 갈등과 제도적 한계 앞에서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정당 내부 의사결정 구조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당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하승수 공동운영위원장은 2020년 2월 29일, 공동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후 녹색당은 입장문을 통해 “정치 전략적 목적의 명분 없는 선거연합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며, “당원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합의 없는 선거연합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발표하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2020년 3월 4일). 그러나 곧 녹색당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에 대한 당원 총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초 녹색당의 입장이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결정되었다는 당내 비판 때문이었다. 이 과정은 당 지도부의 대표성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으로 비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원 총투표는 첨예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기 위한 사실상의 유일한 민주적 대안으로 여겨졌다. 2020년 3월 16일에 진행된 당원 총투표 결과, 투표율 51.33%를 기록하며 찬성 74.06%, 반대 25.94%로 비례연합정당 참여가 최종 결정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이 기존 입장과 다르게 비례연합정당에서 녹색당을 사실상 배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20년 3월 17일,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념 문제라든지 성소수자 문제라든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의 연합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녹색당이 지키고자 했던 성평등과 소수자 인권이라는 핵심 가치와 완전히 상반되는 것으로, 녹색당은 민주당과의 연합정당 참여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녹색당은 3월 18일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하며, 선거연합정당 참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입장문에서 녹색당은 “민주당은 정당 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보다는, 폐쇄적이고 일방적으로 연합정당을 조직하며 독단적으로 소수 정당을 모집하고 전체 논의를 주도했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2주 안에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녹색당은 당원 총투표를 통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지만, 지도부의 판단으로 그 결과가 뒤집히는 사태를 맞았다. 이 과정에서 녹색당의 당내 민주주의 제도는 기대대로 작동하지 않았으며, 공동운영위원장 제도와 당원 총투표는 의사결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내 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부 개인들의 잘못이나 리더십 문제도 언급될 수 있다. 특히 갈등 국면에서 공동운영위원장과 지도부의 리더십 부족은 지적될 만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녹색당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며, 나아가 어느 누구도 녹색당 전체를 대표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이상 아래, 각자가 각자를 대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당내 민주주의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 속에서, 결국 녹색당의 총의를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당원 총투표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민주당의 배신으로 인해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이 사태는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이 현실의 복잡성과 갈등 상황 속에서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가 어떻게 제도의 작동을 저해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였다.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와 문화는 새로운 정치인들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고, 녹색당이 유의미한 정치 세력으로 주목받게 되는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내부 갈등 상황에서는 이 실험이 기대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은 대표성, 대의, 리더십의 문제에 직면했다. 녹색당이 추구했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은 다양한 무늬와 색깔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이상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 갈등이 심화되었을 때, 이 이상은 서로 다른 무늬와 색깔을 가진 개인들 간의 각축과 대립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였다.
2024년 열린 총선에서는 선거연합을 주요한 선거 전략으로 상정한 녹색당은 결과적으로 정의당과 선거연합정당을 구성하여 선거에 임했다. 이 역시 당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되었고, 투표율 55.01%, 찬성 83.64%, 반대 16.36%로 선거연합정당 참여안이 가결되었다. 녹색당이 선거연합을 추진하던 시기, 2020년 총선과 마찬가지로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정당들에게 위성정당 합류를 제안했고 녹색당 전국위원회는 이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더불어민주당과의 연합 거부를 요청했다. 이 과정은 녹색당이 직면한 정치적 딜레마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녹색당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으면서도, 총투표라는 민주적 방식을 통해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내부 갈등과 정치적 현실의 외부적 압력은 녹색당의 급진적 조직화 실험이 갈등 상황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다시금 드러냈다.
나가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남긴 사회적 유산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의 정치 실험은 향후 정치운동과 대안적인 정치 조직화 운동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 비록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였지만, 녹색당은 조직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들”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연합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기성 사회운동이 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하고, 거대 양당이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만성화된 현실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요구를 접합하려는 정치는 지속적으로 시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녹색당의 사례는 이러한 시도가 내부 갈등 상황에서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각축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이상은 역설적으로 당이 개인 리더십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개인 리더십은 애초에 취약한 기반 위에 있었으며, 당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효과적인 권위로 작동하지 못했다. 더욱이, 녹색당에서 현행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불신은 곧 당내 리더십과 거버넌스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이 각자의 정치를 펼치는 구조 속에서, 역설적으로 유일하게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당원 총투표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녹색당의 실험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기존의 정치 문법을 넘어 새로운 정치를 상상하려는 노력의 중요한 사례로 남았다. 이는 정치운동과 조직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과제를 남긴다.
알다시피, 현재 녹색당은 다른 진보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한 녹색당의 실험은 분명한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치운동과 대안적 조직화 운동이 녹색당이 부딪혔던 한계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쩌면 녹색당은 가장 급진적인 실험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 가능성과 한계를 누구보다 먼저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녹색당이 시도한 실험은 단순히 한 정당의 성공과 실패를 넘어,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녹색당의 실험이 남긴 유산을 새로운 정치운동의 동력이자 사회적 자산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각자의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녹색당은 분명 여러 의미에서 앞으로의 정치운동이 지속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과제들을 남겼다. 당장의 정치적 평가와 성과도 중요하지만, 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녹색당의 실험이 남긴 의미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녹색당이 부딪혔던 한계와 가능성을 통해 우리는 정치조직의 미래를 상상하고, 대안적 정치의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녹색당의 실험은 끝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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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필자는 녹색당원이 아니며, 녹색당의 내부 사정에도 밝지 못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쓴 이유는 녹색당의 사례가 단지 당원들만의 것이 아니며, 다양한 해석과 평가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대안 조직화 운동의 관점에서 녹색당을 다루는데, 이는 녹색당의 경험을 유산화하기 위해서는 정당법상 정당으로서의 녹색당, 녹색운동의 정치조직으로서의 녹색당과는 다른 측면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녹색당의 강령과 당헌, 당규, 평등문화 약속문에는 이런 노력의 흔적이 담겨 있다. 자세한 사항은 녹색당 홈페이지(https://www.kgreens.org/platform)를 참고하라.
- 이러한 관점의 연구로는 다음을 참고하라. 정하윤·신두철. 2012. 「한국 녹색운동의 정치제도화와 기회구조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46(4): 101-128, 민병기. 2016. 「한국 노동운동과 녹색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비교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접합 개념은 주로 이질적이거나 상반되는 요소들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의미와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컫는 데 활용된다. 연결의 우연성이 강조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 글에서는 포스트민주화 국면에서 여러 이질적인 요구들이 ‘녹색 정치’라는 이름으로 연결되는 것이 정치적이고 우연적인 과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용한다.
- 포스트민주화 체제와 관련한 대표적인 논의로는 조희연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조희연. 2013. 「‘수동혁명적 민주화 체제’로서의 87년 체제, 복합적 모순, 균열, 전환에 대하여」.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4: 137-171.
- 이런 시각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정치 이론과 전략을 따른다. 라클라우·무페. 2012.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이승원 옮김. 후마니타스.
-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전환 과정에서 제기된 사회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초래했다. 한국의 좌파적 헤게모니 프로젝트는 민주노동당이 파멸적으로 분당하면서 최종적 위기에 돌입한다. 모두 2008년을 전후해서 일어난 일이다.
- 2008년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새로운 저항주체의 양상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김연수. 2010. 「2008 촛불항쟁 담론 연구 : 인터넷 응집주체와 진보적 지식인의 담론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정하윤·신두철. 2012. 「한국 녹색운동의 정치제도화와 기회구조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46(4): 101-128
- 손우정. 2015. 「한국 진보정당 내부 민주주의 제도 연구: 민주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통합진보당의 사례를 중심으로」. 《기억과전망》 32: 247-292.
<참고문헌>
김연수. 2010. 「2008 촛불항쟁 담론 연구 : 인터넷 응집주체와 진보적 지식인의 담론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라클라우·무페. 2012.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이승원 옮김. 후마니타스.
민병기. 2016. 「한국 노동운동과 녹색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비교연구」. 충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손우정. 2015. 「한국 진보정당 내부 민주주의 제도 연구: 민주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통합진보당의 사례를 중심으로」. 《기억과전망》 32: 247-292.
정하윤·신두철. 2012. 「한국 녹색운동의 정치제도화와 기회구조에 관한 연구」. 《한국정치학회보》 46(4): 101-128
조희연. 2013. 「‘수동혁명적 민주화 체제’로서의 87년 체제, 복합적 모순, 균열, 전환에 대하여」.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4: 137-171.
녹색당 홈페이지(https://www.kgreens.org/platfor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