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의 실험과 가능성의 기록: 2010년대 새로운 정당 운동의 유산화』를 연재합니다. 본 연재는 2024년 10월 제주에서 ‘다른 정치의 본령'(이하 다정본) 주최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대안정치공간 모색’이 공동 편집하였습니다. 다정본은 녹색당, 정의당 등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모여 정당과 정치조직화에 관해 탐구하는 모임입니다.

※ 글에 관한 의견 및 토론은 댓글 또는 teammosaek@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문 게재를 요청하시는 경우 검토 및 편집을 거쳐 게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24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워크숍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지난 10월 녹색당과 정의당 등 정당활동 경험이 있는 연구자와 활동가 9명은 2박 3일 동안 정당과 정치 조직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이번 워크숍은 녹색당의 경험을 ‘유산화’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유산화’란 흔히 말하는 ‘자산화’와는 다른 개념으로, 녹색당의 경험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닌, 앞으로의 정당 및 정치 조직화 운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평가될 수 있는 사회적 유산으로 남기자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논의의 초점도 녹색당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있지 않고, 녹색당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정당과 정치 조직화 운동을 어떻게 새롭게 확장하고 재구성할 것인가로 모아졌다. 

우리가 녹색당의 경험에 주목한 이유는 이 사례가 동시대 정치 조직화 운동의 성취와 곤경을 잘 보여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녹색당이 기존의 진보정당이나 기성정당과는 차별화된 새로운 조직문화와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대의원 전원 추첨제, 공동대표제, 50% 여성할당제와 같은 혁신적인 제도들은 치열한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더불어, 이러한 제도들을 가능하게 했던 동시대 사회운동과 정치문화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논의 과정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표현 중 하나는 ‘자유로운 개인(사람)들의 연합’이었다. 녹색당의 강령에 등장하기도 하는 이 문구는 녹색당의 조직문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녹색당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핵심적인 키워드로 여겨졌다. 참여자들은 이를 통해 녹색당이 새로운 정치 실험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그 실험이 직면했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고민했다.

구체적인 평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갈리면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일부 참여자들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한 녹색당의 실험이 현실과 전혀 맞지 않았으며, 조직화와 리더십 문제에 있어서는 보다 전통적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참여자들은 녹색당의 실험이 여러 한계를 드러낸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의 정당과 정치 조직화 운동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조직화’라는 문제는 피해갈 수 없으며, 새로운 조직화의 방식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라고 보았다. 이와 같은 시각차는 공동작업 결과물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는 앞으로 이 글의 독자들과 함께 토론해 나갈 주제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워크숍에서는 각자의 정치 조직화 과정에서 겪은 ‘실패’의 경험, 정당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 그리고 주로 관심을 가져온 의제들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지역, 리더십, 여성, 페미니즘, 사회상, 선거 등 다양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각자의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주제들은 모두 한 번쯤은 스쳐 지나가며 고민하거나 어딘가에서 언급해 본 적이 있는 내용이었지만, 2박 3일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깊이 논의해 본 경험은 대부분에게 처음이었다. 어쩌면 워크숍의 가장 큰 성과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길게 대화해 보았다는 데에 있는 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관점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대화는 단순히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넘어, 각자의 경험과 고민이 연결되고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워크숍이 끝난 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는 일, 특히 특정 정당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녹색당원들은 녹색당원대로, 비당원들은 비당원대로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는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참여자들 각자의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에 글의 형식 또한 비교적 자유롭게 두었다. 개별 글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러 글들이 모여 전체적인 기획 속에서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우리는 이 글이 앞으로도 다양한 해석과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러한 해석과 평가를 통해 이 글은 더욱 풍성해지고, 새로운 의미를 더해 갈 것이다.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부에서는 녹색당 실험의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다룬다. 녹색당의 정치 조직화 실험을 동시대 사회운동과 정당정치의 조건 속에서 탐구하며, 그 경험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는지를 분석한다. 현우식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남긴 유산: 녹색당 정치 조직화 실험의 사회적 의미」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향한 녹색당의 실험이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그리고 그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어서 이태영은 「개인화된 정당 운동은 가능한가?: 한국 녹색당의 도전과 곤경」에서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직면한 어려움과 그로 인해 도출되는 쟁점들을 다룬다. 두 글은 공통적으로, 오늘날 정치 조직화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조직화’라는 문제가 피할 수 없는 핵심 과제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나아가 녹색당의 경험을 복기하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녹색당의 지난 12년을 되돌아본다. 여기서는 녹색당의 실험적 제도와 정책이 실제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김범일은 「녹색당의 실험: 추첨제 대의원과 여성 과반제」에서 실무자의 관점에서 녹색당이 도입한 실험적인 당내 민주주의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었으며, 어떤 문제점을 드러냈는지를 이야기한다. 정유현은 「정당으로서 녹색당의 도전과 리더십의 한계」에서 녹색당이 지난 12년간 시도한 다양한 도전들을 리더십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김형수는 「지역당의 여건, 반등의 가능성」에서 녹색당이 강조했던 지역당과 지역정치가 실제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조준희는 「녹색당의 대안적 사회상이 향하는 곳」에서 녹색당이 제시한 사회적 비전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 조직화 시도를 평가하며, 이 비전이 현재와 미래의 정치운동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논의한다. 2부의 네 가지 글은 모두 녹색당에서 당직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정당활동가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3부에서는 녹색당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담았다. 녹색당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각자가 느꼈던 감정과 고민, 그리고 이를 둘러싼 더 큰 질문들을 제기한다. 김우용은 「녹색당과 우리 진보 정당들이 만나야 하는 곳」에서 정의당원으로서 녹색당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과 함께, 앞으로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연대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김은주는 「녹색당에 대한 회고 그리고 질문」에서 녹색당과의 만남을 회고하며, 그 과정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질문들과 고민을 풀어놓는다. 이 글들은 1~2부와 달리 주관적 경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별적인 이야기를 통해 활동가 간의 연대와 정당의 역할이라는 보다 일반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개인적 소회는 녹색당의 경험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동시에, 진보정당 운동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후속 토론 내용을 담았다. 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녹색당과 관련해 추가적으로 논의가 필요한 두 가지 주요 주제를 발견했다. 첫 번째 주제는 페미니스트 정당과 녹색당이다. 구체적으로, 녹색당을 ‘페미니스트 정당’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다. 이 주제는 녹색당이 제도적으로 여성의 대표성과 정치 참여를 적극 보장해 왔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녹색당은 여성 할당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페미니스트 후보들을 배출했으며, 이는 녹색당의 페미니즘적 이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후보들이 정당 내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며, 여성의 대표성과 정치 참여를 보장하는 제도가 실질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논의의 출발점이었다. 결국, 녹색당의 페미니즘적 이상과 현실 간의 불일치 속에서 녹색당을 여전히 ‘페미니스트 정당’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첫 번째 주요 토론 주제로 떠올랐다. 이 논의는 단순히 정당 내부의 문제를 넘어서, 정치 조직화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고민하는 데에도 중요한 함의가 있다.

두 번째 주제는 정당의 목적과 목표, 기능이다. 이는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던 문제로, 단순한 조직의 형태를 넘어 정치조직화의 본질을 묻는 논의로 이어졌다. 이 질문은 곧 “정당은 반드시 선거에 나가야 하는가?”, “미래의 정치조직화는 정당이라는 형식을 고수해야 하는가?”로 구체화되었으며, 더 나아가 “우리 각자는 여전히 정당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가?”라는 솔직한 물음으로 연결되었다. 이 토론은 정당 내부에서 이루어졌다면 다소 허무하거나 자조적인 결론에 이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당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오히려 정당의 본질과 역할을 근본적인 수준에서 논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질문이 정당에 대한 회의적 시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조직에 대한 관성적인 사고를 넘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왜 정당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미래의 정치조직화가 반드시 정당이라는 틀에 갇힐 필요가 있는지를 재검토하며,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정치조직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이 글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확장하고 새로운 논의를 촉발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녹색당의 경험은 바로 그러한 질문을 확장하기 위한 하나의 사례로 다루어졌다. 우리는 이 글이 단순히 녹색당의 실험에 대한 정치적 평가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의 정당과 정치 조직화 운동을 위한 소중한 유산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유산화’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작업이다. 이 글이 더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 속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5년 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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