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권 너머를 상상하기
도시계획학을 배워보겠다고 나서 처음 들었던 강의에서, 교수님이 ‘재산권의 보호’를 도시계획의 핵심 목적이라고 설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내용들은 기억에서 흐려졌는데 그 설명만은 아주 선명합니다. 꽤나 인상 깊었나 봅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그 설명 이후로 도시계획 뿐 아니라 다른 학문, 정책 도구들을 볼 때도 그게 사유재산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시키는지 고민하며 바라보게 된 정도니까요.
그렇게 바라보다보면 실제로 많은 제도에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포함되어 있단 걸 알게 됩니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건 현대 국가의 존재 이유 중 하나이고, 당장 헌법에서도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헌법 제23조 제1항)고 쓰고 있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는 사유재산제 위에 서 있습니다. 개인 소유를 전제로 한 법과 제도, 그리고 그것이 지탱하는 경제 질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타인과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나만의 소유물이 인정되는 사회가 곧 개개인의 노-력을 불러왔고, 나아가 문명을 발달시켜왔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유재산권이 다른 권리들, 심지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압도하는 권리로서 행사되는 장면도 목격하게 됩니다. 때로는 불평등, 기후위기 등 직면한 문제에 맞서는 대안 정책을 가로막는 가장 견고한 장벽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과연 사유재산은 ‘당연한 것’일까요? 그 기원과 작동 방식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무엇을 배제하고 있을까요? 사유재산권 너머의 세계에서는 온전한 ‘내 것’이 없어져버리는, 100% 국가 소유의 세계만이 있을까요? 가장 견고한 이 벽에 균열을 낼 대안적인 소유 체계는 현실에서 가능할까요? 결국 돌고돌아 사유재산제일까요?
『디클로져 de-closure: 사유재산권 너머의 세계 상상하기』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사유재산제의 구조와 논리를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그 너머에 가능한 다른 사회적 질서와 삶의 방식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깔끔한 연재물이 아니라 스터디 노트를 만드는 기획
이 기획의 제목인 ‘디클로져 (de-closure)’는 ‘닫힌 것(closure)을 되돌린다(de-)’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조어니까 사전 찾아보지 마세요😉). 공유지를 사유화했던 인클로저(enclosure)에 대한 반전의 상상이며, 사유재산권 중심의 체제를 다시 열어보는 스터디 노트 프로젝트입니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이번 기획의 컨셉은 ‘중구난방’, ‘차곡차곡’ 입니다. 잘 정제된 기획으로 깔끔하고 명쾌한 길로 가는 것도 좋지만, 정해진 길 없이 ‘소유’, ‘재산권’이라는 키워드에 관한 생각들을 두서 없이 모아보고, 거기서 작게나마 상상을 해보려고 합니다. 기획의 무게보다는 가벼운 발걸음이 필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디클로져』는 칼럼, 문헌 요약, 개념 정리, 사례 탐색 등 형식의 제한 없이 사유와 실험을 차곡차곡 축적해 나갈 예정입니다. 연재물이라기보다 스터디 노트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휘갈겨 쓴 스터디 노트가 아니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정리는 할 예정입니다.
사유재산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대표적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땅’이니만큼 땅,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회사, 지식, 정보 등 오늘날 문제가 되는 모든 소유의 형태를 열어두고 쌓아나가겠습니다.
무거운 기획을 일부러 벗어버린 만큼, 정해진 기간은 없습니다. 어쩌면 느리지만 아주 오래 지속될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발행 주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기 연재가 아니더라도 오래 품어온 관심사인 만큼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정도의 리듬은 유지하려 합니다.
이 기획은 열려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품고 있는 분이라면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연재가 아니라 ‘스터디 노트’라는 기획이 무엇일지, 앞으로 공유할 이야기들을 살펴보시고 언제든지 문을 두드려 주세요.
다음 글부터는 자유분방한(?) 형식의 콘텐츠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가겠습니다. 사유재산이라는 ‘닫힌 세계’를 다시 여는 초장기 무기획 스터디 노트 프로젝트 ‘디클로져’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