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파고드는 정치와 도시의 미래

2025년 대선, 거대양당 후보들은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지하를 파는 일에는 한목소리를 냈다. 이제는 선거 단골 키워드가 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부터 고속도로나 철도 지상구간 지하화 공약은 후보 이름을 가려놓고 보면 누구의 것인지 알기 힘든 수준이다. 지난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GTX는 A, B, C 노선을 넘어 F노선까지 공보물에 등장했다. 철도 지하화는 선거의 주요 정책 키워드였다. 동부간선, 테헤란로, 언주로, 화곡로, 강변북로, 내부순환로, 분당수서고속화도로, 수도권순환고속도로 등 이름 좀 들어봤다 싶은 도로들은 죄다 지하화 대상에 올랐다.

지하를 파는 약속은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개발과 속도, 광역화를 이야기하는 순간, 지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제시되고 있다. 지하 공간을 복합개발하고, 환승센터를 만들고, 지하도로를 뚫는 계획은 도시 문제를 해결할 만능키처럼 반복된다. 내년 지방선거를 조심스레, 조금은 과장을 섞어 예상해보자면 지하화는 ‘부동산’과 함께 공보물을 채울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왜 계속 지하를 파겠다고 하고, 우리는 왜 계속 지하로 내려가려 할까. 


마찰 없는 공간, 지하의 유혹

정치인들이 지하로 내려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상은 여러모로 복잡하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도 기존 시설물이 가득하고 소유관계와 보상 문제도 복잡하다. 당장 눈에 보이니 개발 찬반 민원도 상당하다. 부정적 외부효과를 줄이는 데 주력해 온 현대 도시계획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최소화한다는 자기 존재 목적에 따라 주변에 피해가 되는 것들, 이를테면 도로나 에너지 시설, 소각장 등 각종 기반시설을 지하로 넣기 시작했다. 성장 동력이 다한 ‘늙은 도시’의 부동산 자본은 지상의 부동산 가치 상승을 위해 지하를 판다. 즉, 지하공간은 정치인들에게는 마찰 없는 정치의 영역이고, 기술관료와 ‘업계’에게는 이미 포화한 도시의 마지막 프런티어다.

우선 지하 개발의 필요를 뒷받침하는 주요 요인으로 언급되는 토지 보상 문제를 살펴보자. 지하 공간의 보상 문제는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 소유권이 토지의 ‘상하’에 미친다는 민법에 따른다(민법 제212조). 지하도 원칙적으론 소유권자의 소유물이란 것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도시철도법이나 각 지자체 조례 등에 의하여 지하 깊이에 따라 보상 수준이 달라진다. 가령 ‘한계심도’라는 것을 정해두고 그 이상의 깊이에서는 소유권자의 토지 이용 가능성이 급격하게 떨어지니 보상의 수준도 낮춘다거나, ‘입체이용저하율’이라는 산식을 만들어 지상의 가치보다 낮게 산정하는 식이다. 참고로 서울 고층시가지의 경우 지하 40m를 한계심도로 규정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깊이 팔수록 보상 규모가 줄어든다.

지하 개발의 보다 근본적인 유인은 ‘팽창’의 동학이다. 수직적 팽창은 수용 가능 인구를 넘어선 도시가 팽창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는 인프라 같은 기능적 팽창을 넘어 갈 곳 없는 도시 자본의 팽창을 위한 발버둥이기도 하다. 지하 개발이 벌어지는 상부공간의 부동산 가치를 올릴 수 있고, GTX나 지하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자본이 투자될 수 있는 범위를 더 외곽으로 넓히기도 한다. 자칫 균형 개발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광역 교통시설들은 중심지(도심, 강남)를 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과 자본의 중심지 종속을 강화한다.


지하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

대부분의 지하 개발은 고비용 프로젝트다. 앞서 토지보상 규모가 줄어든다는 유인을 이야기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지하 개발은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아서 공공 재정으로 모두 충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일부 개통한 GTX-A의 경우 3조원을 상회하는 프로젝트였고, 이어지는 B, C노선은 A노선보다 더 많은 사업비를 필요로 한다. 직진성(지하 깊은 곳에서 굴착하니 직선으로 팔 수 있다는 의미)과 공법 개량 등을 들어 시공 비용이 적다고 하지만, 실제 프로젝트에서는 지하공간의 불확실성 등으로 공사비 증가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한국의 지하화 프로젝트들에 적지 않은 영감을 준 보스턴의 빅딕(Big Dig)이 당초 산정한 공사비의 5배가 넘는 비용을 지출한 것은 유명한 사례다.

때문에 대부분의 지하 개발은 민간투자사업에 의존한다. 2021년 개통한 서부간선지하도로는 서서울고속도로 주식회사를 사업자로 하는 민자사업이었고, GTX 노선들과 동부간선 지하화 등은 민자 구간과 재정 구간의 혼합 방식이 주로 채택된다. 대규모 지하 개발 프로젝트는 분명 단기적으로 주민에게 이동 편의 등 편익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공공 자산을 민간 자본의 수익 창출 공간으로 전유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민간투자사업에서도 공적 자금이 일정 비율 이상 투여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보이지 않는 개발

지하 개발의 또 다른 특성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땅을 파고 들어가니 물리적으로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각종 전문용어와 공학적 지식, 불투명한 정보공개의 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측면도 있다. 지하 개발은 복잡한 보상액 산정 기준부터 굴착 공법, 지하수와 지반 안전성 등 지상 개발에서는 덜 신경 써도 되었을 전문 지식을 동반한다. 지하 개발과 관련한 토론회나 민원 대응에 있어서 관할 기관이 다양한 공법을 꺼내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단언하는 장면을 수 차례 목격해왔다. 하지만 대심도 공사 중 인명 사고, 지하 공사가 유발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수층 변화와 그로 인한 싱크홀 사고가 매해 반복되는 것이 현실이다.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하리란 간편한 발상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피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불투명한 정보공개도 문제다. 서울시는 올해 초 연이은 싱크홀 사고에도 집값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지반침하 지도 공개를 거부한 바 있다. 최근 주요 지역의 지하 공동(빈 공간)을 조사한 지표투과 레이더(GPR) 지도를 공개했지만, 조사범위나 조사방식의 한계로 해당 지도로는 실제 위험을 인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필자 역시 서부간선지하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18년 경 공사현장의 지하수 관련 현장점검 결과와 지하수 수위 측정 데이터 공개를 서울시에 요청한 적이 있다. 지하수위는 땅꺼짐과 관련한 중요 정보일뿐더러, 서부간선지하도로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에서 지하수 유출수량을 측정하라고 권고한 바도 있던 터였다. 하지만 현장점검 결과는 내부 검토 중에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되었고, 지하수 유출수량 데이터는 현장 사무실에 방문해서 열람하라는 친절한(?) 조치가 내려졌다. 첨단 공법이 총동원되는 공사에 있어서 핵심 데이터가 종이 장부로만 존재한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급변하는 도시와 지하 개발

지하 개발이 정치인들의 공약으로 남발되어선 안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시의 회복력 때문이다. 무분별한 지하 개발은 도시가 급격한 변화를 맞았을 때 다시 정상 상태로 돌아오기 위한 능력을 저해한다. 지하에, 그것도 40m 이하 깊은 곳에 터널을 짓고 구조물을 설치하면 그것은 곧 반영구적 시설이 된다. 지상의 구조물처럼 도시 변화, 기후 변화에 따라 쉽게 수정할 수 없는 비가역적 구조물이란 의미다.

기후도 급격히 변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도, 그리고 그 사람의 수도 급격하게 변하는 시대다. 자연환경적으로나 사회환경적으로나 도시는 급변하는 환경에 맞는 회복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이른바 극한호우가 일상이 되었고, 그 말인 즉슨 지하 안전을 좌우하는 물흐름의 변동성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강남으로, 도심으로 향하는 대심도 교통 인프라를 깔고 있지만 주 5일, 9 to 6 노동이 보편적일 거란 단정은 누구도 할 수 없고, 언제까지고 고용 현장이 강남과 도심권에 집중되어 있을 거란 보장도 없다. 무엇보다, 인구가 줄고 있다. 지하에 매몰된 도시는 상황이 변했을 때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지하 개발은 도로 등 인프라를 지하에 감추고 그 위를 공원으로 꾸미면서, 마치 도시를 생태적으로 만든다는 명분으로 추진된다. 또, 지상의 삶과 지하수층에 영향을 안 주기 위해 더 깊이 파내려가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당장의 당선이나 부동산 가치 유지가 아니라 도시의 미래와 안전한 삶을 생각한다면 도로를 감추는 게 아니라 없애고, 이동을 빠르게 하는 게 아니라 이동하는 거리를 줄이고, 지하가 아니라 지상의 보행로에, 주거환경 개선에 자금을 투입하는 게 회복력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 아닐까.


‘지하의 무주지’와 도주하는 정치

‘terra nullius’라는 개념이 있다. 라틴어로 ‘무주지’, 즉 주인 없는 땅을 뜻하는 말이다. 이 개념은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정복과 점유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실제 그 땅에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무언가가 있더라도 정복자의 기준에서 ‘가시화’,’문명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복자의 점유를 합리화해왔다.

호주에서 활동하는 지리학자 Melo Zurita는 이 개념을 가져와 ‘sub terra nullius’, 즉 ‘지하의 무주지’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지하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인간이 사용하고 정복하고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가 퍼져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날의 도시 개발은 지하를 비어 있는 공간처럼 상상한다. 그래서 그곳을 거리낌 없이 팔고, 파고, 나누고, 자산화한다. 하지만 지하는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사상자가 발생하고 수 천명이 피난해야 했던 신안산선 터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인들은 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하로 내려가자 말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그럴 것이라 짐작해본다. 물론 필요하면 지하를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지하를 활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드시 지하 개발의 회복력과 공공성에 관한 깊은 토론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성찰 없이 지하를 파자고 부추기는 건 위험한 개발이자 위험한 정치다. 정치가 지상의 갈등과 미래를 회피하고 지하로 숨어든 결과, 안전과 공공성도 묻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 썸네일: 서울특별시 건설알림이 영동대로 복합공간 개발 공정사진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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