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정당’을 고민한 세 번의 저녁
– 정당 공부모임 <온고지신> 후기
조준희 | 정당 공부모임 <온고지신> 이끔이
“온고지신”, 옛 것을 익혀서 새 것의 단서를 찾자
정당은 언제나 논쟁적인 주제다. 어떤 이는 “정당의 시대”를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정당의 위기”를 말한다. 더 이상 사회변화의 유력한 경로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수단이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엇갈리는 평가만큼이나 정당은 늘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
<모색>은 그동안 ‘정치조직화’라는 키워드를 붙잡고 워크숍, 연재 시리즈, 집담회 등을 이어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묻는 자리에서 정당은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다만 이전까지의 논의가 주로 “지금 우리가 속한 정당”이나 “최근 한국 정치의 정당”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해보기로 했다.
2025년 9월, 세 차례에 걸쳐 열린 정당 공부모임 “온고지신”은 해외 정당의 경험을 직접 들여다보는 시도였다. 첫 번째 “온고지신”에서 다룰 사례는 시사점과 자료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영국 노동당과 모멘텀, 스페인의 포데모스, 미국의 군소정당 사례를 선정했으며, 해당 사례의 정당들이 사회적 흐름과 어떻게 만나는지 살펴보고 그 경험 속에서 우리의 질문을 확장해보고자 했다.
1회차 – 주류 정당 속 진보정치의 굴곡
첫 번째 시간은 ‘주류 정당 속 진보정치의 굴곡’이라는 주제를 영국 노동당의 사례로 풀었다. 방대한 노동당의 역사를 1900년대 초 사회주의 지향을 담은 강령 4조의 제정과 토니 벤을 중심으로 한 7~80년대 당내 좌파의 경험, 신자유주의를 수용한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체제, 급진좌파로서는 이례적으로 당권을 잡는 데 성공한 제레미 코빈의 부상과 축출로 이어지는 좌우 경합의 렌즈로 들여다봤다. 코빈의 지지기반으로 등장했던 당내 급진좌파 조직체 ‘모멘텀’의 운영 방식과 성과, 한계도 살폈다.
학습에 이어진 토론에서 참여자들은, 당내 경합이 당의 민주적 운영과 정책 발전에 기여하면서도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징계 남발 등 위계적 방식의 축출로 이어지는 문제가 공존한다는 점을 짚었다. 특히 당권 획득이나 당원 결속력 강화 등 ‘당내를 향한 조직화’와 국가 정권 획득이나 더 많은 시민의 유입을 목표로 하는 ‘사회를 향한 조직화’를 분리해 사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흥미로웠다. ‘모멘텀’ 사례를 살펴보면서는,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도부 일부가 꾸리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계파’가 아니라 지역별 모임을 중심으로 하는 ‘당원그룹’으로 존재했다는 점을 들어, 강력한 지지기반 없는 당내 경합은 그저 당 상층부에 국한된 경쟁에 불과하고, 그래서 당내 경합 그 자체에 대한 긍정, 부정보다도 지지기반 구축이 동반되었느냐가 핵심이라는 점에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뤘던 것 같다.
2회차 – 좌파 포퓰리즘과 정당
두 번째 시간은 스페인의 포데모스 사례를 통해 ‘좌파 포퓰리즘과 정당’이라는 주제를 함께 공부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좌파 포퓰리즘’이란 키워드가 한국의 정치, 사회운동에서도 유효한 전략으로 자주 제시되지만 정작 그것이 실제 구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기회는 꽤 소중했다. 참여자들은 포퓰리즘, 그리고 좌파 포퓰리즘의 간략한 개념 논의를 살펴본 뒤 포데모스의 역사를 훑었다.
2014년 창당한 포데모스는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자들)’라는 광장의 열기에서 탄생하고, 창당 핵심 멤버들의 이탈, 주류 정당과의 연정에 이르는 압축적인 역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는 사회 운동과 정당 운동의 딜레마, 하나의 제도로서 운영되는 정당연합과 선거연합, 포퓰리즘 전략의 주요 요소인 ‘리더’를 둘러싼 고민까지 한국 사회와 겹쳐보아도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많았지만, 시간 관계상 심층적으로 다루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웠다.
흥미로운 포인트가 더 많아서일까, 1회차를 지나며 공부모임 자리에 대한 익숙함이 생겨서일까. 2회차에서는 참여자들 간에 더욱 적극적인 대화가 오갔다.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포퓰리즘 전략을 두고서는, 그것이 오히려 정치의 본질이라 굳이 별도의 ‘전략’으로 삼을 수 있겠냐는 의견부터 경합적 구도 설정 없는 대안적 정치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냐는 본질적인 논의가 이어졌다. 필자는 여전히 경합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2회차에서 등장한 ‘경합적 구도가 꼭 필수인가’라는 질문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다.
그밖에도 ‘그들’에 맞서는 ‘우리’를 설정할 때, 그것이 이미 정해져있거나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끊임 없이 재구성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의견, 기성 정당을 비판하며 등장한 포데모스가 기성 정당의 대표격인 사회주의노동자당과 연정에 이르는 걸 보면서 포퓰리즘이 조직화, 동원의 전략으로서는 유효하지만 통치 전략은 또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흥미로웠다.
3회차 – 양당체제 속 군소정당
세 번째 시간은 ‘양당체제 속 군소정당’이라는 주제로, 미국의 사례를 살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강력한 양당제 속에서도 수많은 군소정당이 존재하는 미국, 그 중에서도 사회당, 공산당, 녹색당의 사례를 주요 시사점에 따라 간략하게 살펴봤다. 미국 최대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사회당은 급격한 쇠락 요인을 중심으로 살펴봤고, 1919년 창당 후 매카시즘 광풍과 소련 붕괴를 거쳐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공산당은 3~40년대 연대의 폭을 대폭 넓혔던 대중 전선의 결과에 관해서 살펴봤다. 오늘날 미국의 제3당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녹색당은 90년대 당내 갈등, 2000년대 이후 이른바 스포일러 효과(표 분산 효과)를 중심으로 살폈다.
또한 정당이 아닌 정치운동 조직으로서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탄생과 오늘날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 후보의 선거운동에 관해서도 간략하게 공부했다. 주로 민주당의 후보로 입후보해 제도권 입성에 성공하는 이들의 방식은 양당제 속 유의미한 정치적 영향력을 펼치기 어려운 군소정당들의 사례와 대별되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였고, 동시에 ‘정당 아님’이라는 특징에서 오는 우려도 보여줬다.
한국 역시 양당중심적 정당 체제에 놓여 있기 때문인지, 3회차는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며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늘 ‘사표’ 프레임으로 공격 받는 한국 군소정당의 현실에서 지지를 이끌어내는 요소는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에서는, 당선되지 않더라도 정치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추동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의견, 그런 정책적 효능감조차 미미하더라도 소속감이나 정체성 등 정서적 요소도 크게 작용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또한 DSA 사례와 관련하여, 정당이 여전히 유효하냐는 질문과는 별개로, 이념이나 방법론 등을 기준으로 멤버쉽을 공유하는 비정당 정치조직의 존재가 각 정당에서 활동하는 대안적인 정치인들에게 꽤 든든하고 필요한 기반이 될 수 있겠다는 의견에 꽤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후기 – ‘치트키’가 아닌 ‘여는 말’로서의 케이스 스터디
모색으로서도 처음 시도해보는 작업이었다. 정당 케이스 스터디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지, 그리고 해외 정당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한국에서의 대안정치를 모색하는 데 얼마나 유의미한 기획일지 고민 속에 일종의 파일럿 개념으로 홍보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감사하게도 홍보 시작 이틀만에 정원을 채워 출발할 수 있었고, 매 회차 소중한 의견을 많이 나눠주신 덕분에 서로 배우는 공부모임으로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고민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해외 사례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한국의 대안정치 모색에 도움이 될까? 라는 질문 말이다. 세 차례의 모임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당연하게도, 각 정당 사례마다 그 정당이 위치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선거제도의 영향, 노동조합 등 주요 행위자의 태도, 특정 이슈 민감도 등 각 사례의 주요 변곡점에는 그 국가의 특수성이 꽤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해외 사례를 살필 때 한국 정당운동의 위기를 해소할 치트키를 찾아내겠다는 욕심은 적절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상기하게 된다.
더 중요한 한계는 직접 경험이 아니라 학술자료와 언론을 거쳐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점에 기인한다. 가급적 인터뷰나 소셜미디어 상의 논쟁 등 최대한 ‘날 것’의 기록도 함께 찾아보려 노력했으나, 아무래도 대부분의 자료들은 정당의 ‘큰 성공’, ‘큰 실패’에만 주목한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정치조직화의 현장’이 어떠했는지 생생하게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당장 공부모임에서 살펴 본 영국노동당의 코빈은 그 스스로가 탄탄한 지역구 기반을 다진 정치인이었고, 바로 지금 돌풍의 주역인 DSA 회원 조란 맘다니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주거권 활동가였다.
그럼에도 이번 공부모임은 그런 한계들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각 사례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정당 운동의 흐름을 이해하고, 정치조직화라는 정당의 본질을 확인했던 건 대안정치 모색을 위해서도 꽤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가령, 당비 납부 당원 중심의 정당, 지역에서 전국으로 수렴하는 의사결정 방식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정당이란 틀 중 무엇 하나 당연한 것이 없으며 얼마든지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세계 곳곳의 정당 역사와 오늘날의 행보를 살펴보며 얻은 성과였다.
또한 무조건 추종하는 건 지양해야겠지만, 해외 사례들은 미처 몰랐던 우리 주변의 다양한 계기점들, 이를테면 거대양당의 경쟁구도에 포섭되지 않는 대중적 욕구,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지역모임이나 부문 운동 같은 것을 만나기 위한 참고자료로서 분명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모여 정당이란 주제로 1~2시간씩 떠들 수 있었던 그 자체가 가장 큰 의미가 아니었을까.
<모색>에서는 앞으로도 정치조직화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기획이 이어질 예정이다. 정당 공부모임 역시 어떤 형태로 시즌2를 맞이할 지 아직 미정이지만, 정당을 주제로 한 무언가를 계속해서 꺼내놓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히 약속드릴 수 있겠다.
정당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정당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정치적 가능성을 꿈꾸고 또 조직해나갈 수 있는가를 묻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가 그랬듯이 참여자분들께도 세 번의 저녁이 그 질문을 넓혀가는 작은 계기점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함께 공부하는 시간과 마음을 흔쾌히 내어주신 여덟 분의 참여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덧붙이는 책들
정당 공부모임에 참여했거나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몇 권의 책을 추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대부분은 공부모임 읽기자료 제작에 참고하거나 소개해드린 책이며, 학술자료는 제외했습니다.
-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2019). 장석준 지음. 서해문집
- 미국 공산주의라는 로맨스(2024). 비비언 고닉 지음. 성원 옮김. 오월의봄
- 이재영의 눈으로 본 한국 진보정당의 역사(2013). 이재영 지음. 이재영추모사업회 엮음. 해피스토리
- 코빈 동지(2016). 로자 프린스 지음. 홍지수 옮김. 책담
- 듣도 보도 못한 정치(2016). 이진순, 와글 지음. 문학동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