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의 동력과 폭력, 그리고 용산: 『도시의 새로운 프런티어』

※ 썸네일 이미지는 도시 재개발의 폭력성을 그린 그림책『파란집』(이승현)에서 가져왔습니다

따라서 프런티어의 이미지는 단순히 장식을 위한 것도, 순진무구한 것도 아니며, 상당한 이데올로기적 무게를 담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노동계급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가난한 세대를 내몰며, 동네 전체를 부르주아 집단 거주지로 전환시키는 한, 프런티어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고 합리화 한다. 빈민과 노동계급은 ‘비시민’으로, 영웅적인 경계에서 그릇된 방향에 서 있는 야만인이자 공산주의자로 간단히 치부된다. – 44쪽-

16년 전인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재개발 당시 보상대책에 반발해 농성 중이던 철거민에 대한 강제진압이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6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아현동, 장위동 등 도시 곳곳에서 유사한 비극을 목격합니다. 어떤 사회적 비극이 발생하고 나면 늘 “재발 방지”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시설이나 안전 규제의 강화일 수도 있고 행정 구조의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잔혹한 도시 개발에 의한 비극의 뒤에는 재발 방지는커녕 오히려 쫓겨난 사람들은 불법행위자로 인식되고, 약탈에 가담한 자들은 당당하게 이익을 취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당시 진압을 지휘했던 이는 참사 이후 승승장구해 지금도 국회에 앉아 있습니다.

용산참사는 자본주의 도시가 어떻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배제하고 축출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그 “재발 방지”는 결국 도시의 공간이 누구를 위해,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구조를 깨뜨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닐 스미스의 『도시의 새로운 프런티어』입니다. 지리학자인 닐 스미스는 자본주의 분석에 공간의 개념을 삽입, 이른바 자본주의적 공간 연구의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학자입니다. 1996년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도시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본질을 밝히고,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도시를 장악하며 사람들을 축출하는지 분석합니다.

프런티어와 보복주의로 본 젠트리피케이션과 폭력

닐 스미스의 관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제시하는 두 가지 개념, 즉 “프런티어”와 “보복주의 도시”를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의 소위 서부 개척 시대 ‘황무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 프런티어라는 개념은 단순히 경계 지역이라는 그 사전적 의미를 넘어, 공간을 약탈하는 행위를 진보를 위한 걸음으로 정당화하고 낭만화하는 미국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서부의 황무지였던 프런티어는 자본주의 도시에서 낙후한 구도심, 레드라이닝1 구역 등으로 재현되면서 도시의 특정 공간들을 정복하고 표백해야 할 대상으로 만듭니다. 이는 지극히 미국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권력과 자본의 공간 생산(약탈)을 잘 나타내는 논리 구조가 됩니다. 아마 책을 읽은 독자들은 스스로 미국식 프런티어 정신은 낯설다 하더라도 스미스의 논리가 낯설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공간을 황무지로 보고 개발해야겠다는 논리는 이른바 무주지(주인 없는 땅, terra nullius), 유휴공간, 저이용 토지, 우범지대 등 제각각의 이름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등장하며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스미스는 도시의 프런티어를 정복하는 과정을 단순히 경제적 절차로 보지 않고, 일종의 “보복주의”가 작동하는 것으로 봅니다. 스미스는 보복주의(revanchist)를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파리코뮌 등 진보운동에 패배한 이후 우익세력에게서 발견되는 민족주의적이고 호전적인, 일종의 반동적 정치운동이라고 설명합니다. 진보세력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거나 진보세력이 망쳐놓은 질서를 회복한다는 인식이 중요합니다. 

이를 이어받아 보복주의 도시란, 도심에 남아 있는 가난한 계층, 퀴어, 노동자, 이민자 등 소외된 이들이 ‘부당하게’ 점유한 공간을 ‘정당하게’ 탈환해야 한다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관용도 없는 도시의 경향을 의미합니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 구 노량진 수산시장의 상인들부터 화단 설치에 밀려나는 노숙자, 주택재개발 지역의 주거 약자 등 보복주의 도시가 겨냥하는 대상은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그(※줄리아니 뉴욕시장)는 뉴욕시 안에서의 구걸 행위뿐 아니라 노숙자들이 자동차 창문을 닦아주고 돈을 요구하는 행위를 불법화하는 계획을 즉각 발표했다. … . 공공장소에서 노숙자들을 내쫓기 위한 경찰의 교전은, 노숙자의 광범위한 활동을 도시 근린에서 ‘삶의 질’을 해치는 행위로 범죄화하기로 한 줄리아니의 결단이라는 측면에서 대체로 정당화되었다. – 370쪽-

자본주의 도시의 동력: 지대격차

책의 또 다른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지대격차(Rent Gap Theory)”입니다. 지대격차론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떻게, 왜 발생하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틀입니다. 스미스가 1979년 논문을 통해 제시한 이래, 지대격차론은 지금까지도 젠트리피케이션과 자본의 도시공간 재구성을 설명할 때 소환되는 개념입니다. 간략히 소개하면, 스미스는 특정 지역의 현재 지대와 잠재적 지대 간의 차이가 커지면 자본이 해당 지역으로 유입된다고 분석합니다.

예컨대, 서울의 낙후된 지역이 재개발 대상으로 선정되고, 고급 주거단지로 변모하는 과정은 지대격차를 기반으로 합니다. ‘업자’식으로 표현하자면, 입지도 좋고 주변에 큼직큼직한 공공개발도 예정되어 있는데 현재는 그 땅의 임대료, 판매 품목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현저히 낮고, 그래서 지금의 기능을 없애고 새로 개발했을 때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는 곳이 바로 ‘기회의 땅’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규제의 적용과 철폐, 도시계획, 나아가 보복주의적 공권력까지 국가의 역할이 작동하면서 그 시작과 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저마다 떠오르는 공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자칫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습니다. 애초에 스미스도 젠트리피케이션 구조의 도식화를 위해 제시한 이론인데 그걸 이 글에서 한 번 더 추리다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조금씩 다른 경향을 보이는 각국의 사례들, 도시정부와 금융의 역할, 국지적 스케일부터 전지구적 스케일까지의 구조 등을 풀어 설명하고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지대격차가 아닌 다른 요인들, 이를테면 문화적 요인 등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설명하는 이론들이 그 뒤에 많이 등장한 것도 사실인데, 기회가 되면 이와 관련한 책들도 나눠보겠습니다.

개발이 지나간 자리에 누가 서있나

보복주의 도시의 구호는 우파 포퓰리즘의 구호와 비슷합니다. 내가, 혹은 내가 속한 사회가 누려야할 것을 누군가에게 빼앗겼다는 발상입니다. 그런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요즘이라서 일까요? 오늘날 공간을 지키는 투쟁에 나선 이들을 바라보는 언론이나 여론은 더욱 차갑습니다. 떼 쓰는 세입자들, 공공공간 불법 점유자들, 냄새나고 위험한 사람들. 그리고 건물주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시선, 즉 비판하거나 시기하면서도 나도 언젠간 건물주가 되고 싶다는 인식까지 맞물리면서 보복주의 도시라는 경향은 더욱 강화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도심재개발부터 뉴타운 광풍, 큼직한 공공부지 개발 등을 겪으면서 당장 내 삶의 터전이 곧 프런티어가 될 수 있고 내가 보복주의의 대상자가 되어 쫓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더 명확해졌습니다.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자리에는 매매가 30억을 훌쩍 넘기는 초고층 주상복합이 서있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할 그런 공간이 되었습니다. 결국, 지금의 개발의 뒤에 누가 도시에 남을 수 있는지, 누가 도시를 누릴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1. 레드라이닝은 미국의 금융기관에서 특정 인종 혹은 민족 밀집지역에 대출이나 보험 등 금융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높은 금리나 서비스 비용을 요구하는 지역을 표기하기 위해 지도 위에 빨간 선을 그었던 것으로, 인종차별이나 소득불평등이 도시공간에서 금융이라는 도구를 통해 적나라하게 구현된 실재적이고 상징적인 개념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불균등발전(2017). 닐스미스(최병두 외 옮김). 한울

사라진 마르쿠제 – 젠트리피케이션과 축출에 관하여. 톰 슬레이터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2023, 이매진)에 수록

파란집(2010). 이승현. 보리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기사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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