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부동산에서 시작된 권력: 트럼프 가문과 부동산 국가

※ 격주 발행하는 <도시의 문장들>, 오늘은 그 번외편으로 짧은 토막글을 남깁니다(썸네일: 사진: Unsplash의 Miltiadis Fragkidis).

The Trump family saga shows the progression of real estate in relation to planning over time: first from opportunists (like Friedrich) who capitalized on planners’ work; then to builders (like Fred) who were directly financed by the state; and finally to tycoons (like Donald) who starved the state before seizing it. -155쪽-

(*다소 의역) 트럼프 가문의 이야기는 부동산이 도시계획과의 관계 속에서 발전해온 양상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도시계획을 이용해 기회를 포착한 기회주의자(프리드리히 트럼프)로 시작했고, 이후 국가의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통해 성장한 건축업자(프레드 트럼프)로 이어졌으며, 마지막으로 국가의 공공 자원을 약화시키고  이를 장악한 거물(도널드 트럼프)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취임사 한 문장 한 문장에 반동과 퇴행을 담고 있었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란 사태, 법원 침탈에 관한 뉴스를 보는 와중에, 포퓰리즘과 반지성주의를 등에 업은 트럼프의 경악할만한 취임사를 듣는 지금이 마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뜬금 없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트럼프 월드라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아실 겁니다. 여의도에 가장 먼저, 1999년에 지어진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트럼프 월드는 대우건설이 짓고 트럼프 오거니제이션과 브랜드 네이밍 제휴를 맺은 경우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트럼프 가문이 부동산으로 일어선 재벌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2기 행정부 출범을 보며 떠오른 책은 사뮤엘 스타인(Samuel Stein)의 『Capital City: Gentrification and the Real Estate State』입니다. 이 책은 트럼프 1기였던 2019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저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지리학자이자 도시계획가로 자코뱅, 어반 어페어, 가디언지 등에 기고를 해왔다고 합니다(링크).

저자는 이른바 ‘부동산 국가(real estate state)’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탈산업화 이후 도시에서 부동산이 어떻게 핵심 자본으로 부상했는지, 그 과정에서 도시계획을 비롯한 공공 정책이 어떻게 기여하고, 종국에는 공공 정책이 어떻게 부동산 자본에 종속되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그 사례로서 트럼프 가문이 부를 일궈온 과정을 조명하는 데 책의 한 챕터를 할애합니다. 트럼프 가문의 부동산 사업 역시 그들의 사업 역량 덕분이 아니라 철도, 교량 등 공공 인프라 개발, 주택 모기지 정책이나 군용 부지 개발, 그리고 세제 감면이나 규제 완화 같은 공공 정책에 편승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자칫 트럼프가에 한정된 예외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부동산 자본이 나름의 공익적 목적을 내세우는 공공 정책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례이자, 우리 주변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입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밈이 있죠. 그런데, 이미 돈이 많던 도널드 트럼프가 정치, 그것도 대선이라는 큰 판에 들어간 건 단순히 그가 괴짜(너무 선한 표현이지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가문이 부를 쌓아온 역사에서 정치의 역할을 정확히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물론 이런 이유로만 설명할 순 없지만, 저자가 제시한 부동산 국가라는 개념 안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사건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트럼프의 정치는 ‘부동산 국가’라는 개념으로만 다루기에는 너무 광범위한 해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함의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부동산이 공공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상식에서 한 발 더 나가 ‘부동산 국가’라 칭할 정도로 부동산 자본의 이해가 정치의 모든 맥락에 개입하고 있다는 데 까지 주장을 가져가는 점, 그리고 도시계획이라는 기술적인 행위가 ‘부동산 국가’ 형성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고발 혹은 자기고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읽을 이유가 있는 책입니다.

번역서가 없는 책이고 저도 영문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기에 <도시의 문장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간결하게 쓴 얇은(!) 책이라 번외편을 통해 소개합니다. 트럼프 가문의 이야기 외에도 부동산이 어떻게 공공 정책을 망쳐놓는지 궁금한 분들, 자본주의 도시에서 대안적 도시계획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분들, 그리고 뉴타운 광풍부터 소위 ‘둔촌주공 구하기’를 거쳐 온 ‘부동산 국가’ 한국이 건설업계 줄도산과 장기 저성장 등 앞으로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비판적으로 지켜보는 분들께 권합니다.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기사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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