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서울의 약속(마지막화)

서울시민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분수가 아니라 더 많은 공공주택, 더 많은 교육기회, 더 안정적인 보육 시설, 더 따뜻한 노후입니다. 이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보적 변화, 이제껏 서울에 없었던 진보시장의 탄생이 필요한 때입니다.
– 책날개(노회찬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언문 발췌)

오늘은 ‘약속’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해봅니다. 지난주 가장 큰 화제는 조란 맘다니의 뉴욕시장 당선이겠지요. 맘다니는 승리 연설에서 담대하면서도 상식적인 약속들을 열거했습니다. “우리는 임대료를 동결하고, 빠른 무상버스를 도입하고, 보편적 아동보육을 실현할 것”. 그리고 그가 “도시는 당신의 것”이라며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말은 문자 그대로는 당연해 보이면서도 그동안 도시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이 꽉물고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다시 방구석으로 돌아와서, <도시의 문장들> 마지막 책으로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까 책장 앞에서 한참 고민해봤습니다. 신간들도 있었고, ‘모빌리티’나 전환적 도시계획처럼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책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집어 든 책은 100페이지를 조금 넘는 팜플렛이었는데요(얇아서 집어든 건 아니에요…). <도시의 문장들>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노회찬의 약속 – 서울, 2010년 6월』1입니다. 짧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이 책은 보통의 교양서, 학술서가 아니라 ‘예비후보자 공약집’으로 분류되는 책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2010년 6월 열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의 예비후보자 공약집입니다. 재선을 노리던 오세훈과 민주당 한명숙 그리고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 등이 출마했던 바로 그 선거입니다. 공직선거법에는 대통령과 지자체장 선거에 한하여 ‘예비후보자 공약집’이란 이름으로 선거공약집을 일반 도서처럼 제작, 판매할 수 있는 규정이 있습니다. 선거기간 우리가 우편으로 받아보는 ‘선거공보’와는 다른, 말 그대로 판매가격과 도서번호(ISBN)가 박힌 ‘책’으로 말이죠.

지방선거 공약집이란 것도 결국 약속에 관한 책이겠지요. 이 책에 담긴 약속 중 몇몇은 지금 시점에선 뜨거운 이슈가 아니거나 덜 급진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모든 공약을 하나하나 소개하거나 찬반토론할 필욘 없기도 하고,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오늘의 서울에 비춰볼 때에도 유효한 약속들이 여전히 많다는 점입니다. 슬픈 사실이기도 합니다. 뉴타운 광풍 직후인 2010년, 노회찬 후보는 뉴타운 전면 재평가와 공공임대 확충을 이야기했지만 2025년 재건축·재개발 패러다임의 큰 변화는 아직 오지 않았고, 오히려 ‘평균 아파트값 10억 도시’ 서울의 주거안정성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2010년 노회찬 후보는 한강운하와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 백지화를 이야기했지만 지금 우리는 한강버스와 노들섬 개발의 본격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최근 오세훈 시장이 세운상가 자리(세운4구역)에 140미터 초고층 빌딩을 지으려다 국가유산청에 발목 잡히며 화제가 되었는데, 바로 그 세운상가 이야기가 2010년에도 이슈였단 걸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습니다.

한편, 공약집의 가치는 내용뿐 아니라 구성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관행적인 정책 영역 분류(주거, 교육, 복지 등)를 어느 정도는 따르되, 모든 분야를 망라하려는 강박 대신 우선순위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카테고리를 설정했습니다. 또한 ‘한강’이나 ‘광화문’처럼 공간을 매개로 카테고리를 구성한 발상은 정책을 도시의 공간 경험과 연결하고, 정책 칸막이를 넘어 총체적 계획을 만든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자주 참고했던 발상이기도 합니다.

2010년 선거 당시 노회찬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3%. 거대한 정당 후보들 속 미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굉장히 큰 숫자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이죠. 새로운 서울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비전과 말걸기 방법을 담은 이 책도 그저 선거홍보물이 아니라 ‘다른 도시’를 품고 있는 씨앗이 아닐까 합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는 급조된 비전과 후보자 용비어천가를 담은 출판기념회용 책들이 아니라 진보적 도시정치의 씨앗이 움트는 약속들이 담긴 팜플렛들을 만날 수 있길 기다려봅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 런던플랜-런던의 공간발전 전략(2006). 런던광역시(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진보정치연구소 옮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1. 『 노회찬의 약속 – 서울, 2010년 6월 』(2010.5.). 노회찬,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지음. 레디앙. ↩︎

<연재를 마칩니다>

총 10권의 책을 소개하면서 <도시의 문장들>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제 역량의 문제로, 또 매번 바쁘게 글을 썼던 탓에 부끄러운 글들이 대부분입니다. 부족한 글이나마 클릭해서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론 더 잘, 자주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닌데 ‘연재’라는 굴레에 제발로 걸어 들어간 덕분에 어찌어찌 열 권의 책을 다시 읽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도시의 문장들> 마지막 책으로 뜬금없이 선거공약집을 고른 이유는 사실 분명합니다. 도시를 둘러싼 저 스스로의 관심이 지적 호기심이나 취향의 영역을 넘어 실천의 언어로 나아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더 많이 돌아다니고 읽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남았는데 틈틈히 좋은 책들은 개별 칼럼 방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기사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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