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가져오는 정치 – 읽고, 그리고, 계획하는 진보정치의 미래 작업

※ 이 글은 7월 24일 게시한 “진보정치와 ‘풍요’에 대한 메모”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일본 녹색당의 전신 조직은 ‘미도리노 미라이(みどりの未来)’, 우리말로 옮기면 ‘녹색 미래’였다. 일본 정치를 잘 모르지만 이 이름만큼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녹색’만큼이나 ‘미래’를 앞세웠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미래는 진보정치에 더 가까운 언어다. 지금과는 다른 미래, 즉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노동시간이 줄어든 사회, 풍요가 모두에게 돌아가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 미래라는 말은 빅테크와 산업정책, 보수와 우파의 언어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미래산업, 미래도시, 미래먹거리 같은 말은 넘쳐나지만 그 미래를 누가 소유하고 결정할지보다, 얼마나 더 큰 경제와 산업을 만들 것인지가 앞서 이야기된다.

진보정치는 미래보다 위기를 말하는 데 익숙해졌다. 기후위기, 불평등, 지역소멸, 돌봄위기,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위협. 그만큼 우리가 직면한 위기는 크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분명 진보정치가 말하는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는 말 속엔 “그렇다면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미래의 씨앗이 들어 있다. 잘 드러나지 않거나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미래를 둘러싼 결정은 이미 곳곳에서 내려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어디에 투자하고 어떤 기술과 산업을 키울지, 토지와 전력과 물을 어디에 배분할지는 앞으로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바꾼다. 한번 만들어진 산업과 도시의 구조, 기술과 제도는 이후의 선택지를 넓히기도 하고 좁히기도 한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미 씨앗을 가진 진보정치가 미래를 정치의 영역으로 다시 가져올 필요가 있다. 미래를 다시 정치의 영역으로 가져오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미래의 권력관계를 읽고,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을 그리고, 그곳까지 갈 정치적 경로를 만드는 일을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보려 한다.

읽기: 이대로 가면 어디에 도착하는가

첫 번째는 미래를 읽는 일이다. 가장 익숙한 방법은 현재의 추세를 앞으로 연장해보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이 계속된다면 지역의 병원과 대학, 교통은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가 지금의 속도로 늘어난다면 전력과 물, 노동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이미 큰 흐름이 된 것뿐 아니라 아직 작은 변화도 살펴야 한다. 이를 미래연구에서는 ‘호라이즌 스캐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직 큰 추세로 포착되지는 않지만 앞으로 중요해질 수 있는 변화의 신호를 계속 찾는 작업이다. 일부 노동조합에서 AI 도입의 찬반을 넘어 알고리즘의 정보공개와 노동자의 공동결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기술을 둘러싼 새로운 노동정치의 신호일 수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갈등이 입지 문제를 넘어 전력과 물을 누구에게 우선 배분할 것인지의 문제로 발전한다면 그것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다. 작은 마을에서 협동조합이 마을 경제의 일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면 그것 역시 ‘아름다운 예외 사례’로 넘기지 않고 미래를 가늠할 중요한 신호로 읽어야 한다.

여기서 진보정치의 미래 읽기는 일반적인 산업 전망과 달라야 한다. 산업 전망이 무엇이 얼마나 성장하고 줄어들지를 묻는다면, 진보정치는 질문을 하나 더 던져야 한다. 그 변화로 누가 더 많은 결정권을 갖게 되고, 누가 위험과 비용을 떠안게 되는가. 인공지능이 몇 개의 일자리를 대체할지만이 아니라 노동과정에 대한 결정권을 누구에게 옮기는지, 데이터센터가 얼마나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하는지만이 아니라 전력이 부족할 때 누구의 사용을 우선할지를 물어야 한다. 진보정치가 읽어야 하는 것은 기술과 산업의 미래만이 아니라 권력 관계, 소유 관계의 미래다.

발견한 추세와 작은 신호들을 서로 다르게 조합해 여러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그려보면, 놓치지 말아야 할 쟁점과 미리 준비해야 할 선택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운동 조직에서 흔히 해온 ‘정세전망’도 넓게 보면 이런 미래 읽기의 한 형태일 것이다. 다만 장기적인 변화의 신호를 꾸준히 수집하고, 복수의 미래를 의식적으로 검토하는 작업까지 체계적으로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그리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두 번째는 비저닝이라고도 불리는, 대안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최근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기관지 《Democratic Left》는 「Imagining the Next 250 Years」라는 기획을 시작했다. 노동과 돌봄, 주거, 기후, 기술, 헌법 등 여러 영역에서 ‘완전히 민주화된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자는 기획이다. 중요한 점은 이 상상을 DSA의 정치 프로그램인 ‘Workers Deserve More’와 연결한다는 것이다. 미래상은 현실과 떨어진 공상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한편 비저닝 작업에서는 때로 좋은 미래보다 망한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2019년 서울시와 서울연구원은 2040 도시기본계획을 준비하면서 「서울이 망하는 길」이라는 시민포럼을 열었다. “좋은 서울은 어떤 곳인가”보다 “어떤 서울이라면 실패했다고 말할 것인가”라고 물을 때 우리가 지키려는 기준이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도시 인프라를 유지하는 노동자는 정작 그 안에 살 수 없는 서울, 기후재난을 피할 능력이 소득에 따라 갈리는 서울, 직장에 가기 위해 1시간 30분을 이동해야 하는 서울. 왜 그런 모습을 실패라고 생각하는지 묻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기준도 선명해진다.

비저닝 작업에서는 반드시 미래를 생활의 모습으로 가져오는 과정이 필요하다. 평등사회나 생태사회라는 이름을 붙이고 거시적인 구조를 그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회에서는 임대차 계약 만기일이 가까워지면 어떤 고민을 할까. 아이나 노인을 돌볼 일이 생기면 누구의 시간이 사용될까.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땐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사람들은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실패해도 무엇을 잃지 않을까. 지금의 불안이 미래에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하루 사는 모습은 어떨지 그려보는 일이다.

이것은 단지 미래를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한 작업만은 아니다. ‘주거 공공성 확대’보다 소득 중단이 발생해도 집을 잃지 않는 사회, ‘돌봄의 사회화’보다 가족 중 누군가 아프다고 한 사람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는 말이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더 분명하게 보여줄 때가 있다. 미래를 그리는 일은 곧 새로운 정치의 언어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일이 하나의 고정된 청사진을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래를 읽을 때 여러 가능한 미래를 상정하듯이, 미래를 그릴 때도 하나의 완성된 정답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가 강력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와 지역·협동조합의 자율성을 키우는 미래, 첨단기술을 공적으로 통제해 풍요를 확대하는 미래와 소비와 에너지 사용을 줄여 다른 풍요를 만드는 미래는 모두 진보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그림으로 공개적으로 다투는 것 자체가 진보정치의 자산이 된다.

계획하기: 누가, 어떻게 그곳에 갈 것인가

세 번째는 현재와 미래 사이에 길을 놓는 일이다. 원하는 미래부터 정한 뒤 그곳에 도달하려면 무엇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거꾸로 찾아오는 방법을 ‘백캐스팅’이라고 한다. 2045년에 누구나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체제를 원한다면, 2040년에는 국공유지 비율이 얼마가 되어야 할까. 그것을 위해 2035년에는 무엇을 구축해야 하고, 지금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내려오면 장기비전과 당장의 정책 사이에 있던 빈 공간이 보인다.

백캐스팅만으로 전환의 모든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서 현재까지 매끈한 화살표 하나를 긋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전환에서는 기존 제도와 새로운 제도가 오랫동안 공존하고 충돌한다.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는 동안 화석연료 산업의 노동자와 지역경제는 계속 존재하고, 공공주택이 늘어도 자산 중심의 주택시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새롭게 만들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줄이고 없앨 것인지, 그 과정에서 누가 손실을 입고 누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지까지 그려야 한다. 전환의 로드맵에는 새로운 제도의 성장뿐 아니라 기존 체제의 축소와 퇴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다루는 계획도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누가 이 변화를 만들 것인가. 정책 목록만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집단이 변화를 원하고 누가 저항하는지, 누구와 누구의 이해를 연결할 수 있는지, 새로운 정책이 어떤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의 로드맵에는 목표와 정책, 예산과 일정이 들어가지만 정치의 로드맵에는 갈등과 동맹, 조직과 세력의 변화가 들어가야 한다. 정책에는 시행계획이 필요하지만, 정치에는 그 정책을 가능하게 만들 세력의 계획도 필요하다. 앞선 글에서 미래를 그리는 작업이 ‘정당’의 작업이라고 말한 까닭도 대부분 이 때문이다.

미래를 가져와야 한다

정부와 기업도 오래전부터 추세 전망, 호라이즌 스캐닝, 시나리오, 비저닝, 백캐스팅 같은 방법을 사용해왔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기 위해 어떻게 사용하는가다. 성장률 대신 권력의 이동을 읽고, 기술과 시장뿐 아니라 주변부의 갈등과 작은 사회적 실험에서 변화의 신호를 찾아야 한다. 미래를 그릴 때는 제도의 이름뿐 아니라 사람들의 시간과 두려움, 결정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려야 한다. 로드맵에는 정책뿐 아니라 갈등과 동맹,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까지 들어가야 한다.

미래정치는 우울한 현재를 잊기 위해 선택하는 도피처가 아니다. 미래를 함께 그리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는 요구를 하나의 정치적 방향으로 묶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주거권과 노동시간 단축, 기후정의와 지역돌봄, 민주주의가 각각의 정책 목록이 아니라 같은 사회를 향하는 서로 다른 길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이해관계가 조금씩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가고 싶은 목적지를 공유할 때 더 넓게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금의 세계를 조금 덜 나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투쟁이 함께 기대할 수 있는 미래를 만들고, 그 미래를 현실 쪽으로 끌어오는 정치가 필요하다. 미래를 다시 진보정치의 편으로 가져와야 한다.

이 글과 모색의 작업

모색이 매일 발행하는 ‘모색레터’와 정책 데이터베이스인 ‘난제 프로젝트’ 역시 이런 문제의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모색레터가 매일의 사건 속에서 변화의 흐름과 작은 신호를 축적하는 작업이라면, 난제 프로젝트는 하나의 사회문제를 둘러싼 정책·제도·사례와 논쟁을 모아 앞으로의 대안과 백캐스팅 경로를 그릴 재료를 쌓는 작업이다. 아직 미약하지만 모색에서 미래를 계속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소하
소하

정당, 도시정치, 도시정책에 관심을 두고 이런 저런 작업을 합니다.

기사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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